일시 : 2003. 7. 6 03:45∼10:00(13Km, 6시간)
산행구간 :
빼재(920)-수정봉(1,050)-덕유삼봉(1,254)-소사고개-삼도봉(1,250)-대덕산(1,290)-덕산재(640)
날씨 : 흐리다가
이슬비 이후 폭우
대간 하는 날인데... 회사에서 초복 맞이 보신이 행사를 고기리 계곡에서 개최한다고 해서 원래 좋아하기도 하고, 주요 구성원이라 주최하는 동료 직원이 몇 번을 구슬리는데... 좀 경건한 산행에 음식이지만 아무래도 안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간신히 거절하고 집에 오니.. 오랜만에 동네 모임이 있단다. 원래 같으면 술들 한잔하는 분위기인데 다들 나를 배려하느라 9시 정도에 모임을 파하며 무사 등반을 기원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부리나케 집에와 얼려놓은 떡과 물병 등을 챙기고 백현 정류장에 나가니 지난번 하현달이 오늘은 약간 가냘픈 상현달이 되어 머리 위에 비추고 있다. 이 시간에 항상 같이 만나는 낚시 가는 아저씨가 배 나온 게 그야말로 인격인데.. 등산하는 사람 중에는 배나온 사람은 없다. 정시에 도착한 버스에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대장님으로부터 간단한 산행개요를 듣는데... 처음 7시간에 2개 봉우리라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다보니 슬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고도표에 보니 1,250에서 600까지 갔다가 다시 1,300까지 오른다.
휴게소에서 우리 동기생 중 한번도 안 빠지다가 집안 상으로 지난번에 빠지셨다는 이순자 여사님이 다리를 다쳐 전다. 본인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등산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03:45 빼재.. 빼어날 秀, 수령, 전에는 경관이 빼어났던 모양인데... 이제는 백두대간의 훼손지로 꼽히는 곳이다. 오늘도 별을 볼 수는 없지만..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신풍령 휴게소에서 도로를 건너 건너편 사면으로 바로 올라치는 데... 몇 일 전 비가 온 탓인지 대간길이 이곳 저곳 물길이 되어 있는데... 대간이 물을 건너도 되나?.. 시작부터 경사도 경사지만 잡목이 무성한 게 진행이 쉽지 않다. 잠시 수정봉에 오르니 잡목은 계속되지만 숨쉬기나 경사는 조금 수월하다. 오늘따라 이대장님이 전체의 일정을 맞추느라 천천히 속도 조절을 하니 일행이 모두 한 줄로 진행하는데... 뒤로 돌아보니 해드랜턴의 불빛이 구비구비 늘어서 있고, 능선 왼쪽 잡목사이로 상오정 마을의 불빛이 언듯언듯 스친다. 아직도 어둑어둑한데... 우리가 지나는 곳마다 사람이 새들을 깨우고.. 새는 아침을 깨운다.
< 싸리 꽃과 운해>
된새미기재에서 호절골재로 오르는 길은 잡목 사이로 전혀 경치를 조망할 수 없지만 군데 군데 바위길에는
좌우로 전망이 환상적인데... 특히 거창쪽은 구름바다가 운해를 이루어 몇 몇 봉우리가 섬으로 환상의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먼동이 틀려고 하는
하늘에는 붉은 빛까지 감돌아 자연의 베푸는 최대의 경관을 만끽하는 거 같다. 늘 오는 산이지만 아름다운 일출과 운해, 안개와 비까지 그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음에 감사와 함께 숙연할 따름이다.
<거창의 운해>
05:25 삼봉산(1,254) 오늘 산행하는 삼봉산과 대덕산은 주변의 능선과 어울림이 없이 삼봉산에서 바라 본 대덕산이나 대덕산에서 바라본 삼봉산 모두 가운데 소사고개를 시점으로 600∼700미터 올라있는 상태로 산 전체를 조망하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더구나 거의 산 중턱까지 조금이라도 밭을 일구려는 농부들의 노력으로 산은 많은 부분이 개간되어 있는데... 그러나 어쩌랴 산을 제 모습으로 보존하는 것이 지고의 명제지만 저이들도 삶을 이루기 위한 터전으로 닦은 것을... 좁은 농토뿐이 없는 우리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수밖에... 여전히 거창쪽은 계곡 골골마다 운해가 깊숙히 드리워진 바다고 반대편 무주 설천쪽은 산봉우리에 엷은 구름이 걸린 또 다른 자연의 조화이다. 설천이면 변변한 스키점프대 하나 없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 2001년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 개인전, 단체전에서 메달을 따낸 무주 설천고가 있는 곳이다... 장하다. 요번에 평창에 유치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 다음번에 우리 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한다면 그 후배들이 뜻을 이루어 내리라...
여기부터 무룡산까지를 덕유산이라고 한다는 데, 이제 우리는 덕유산도 벗어나게 된다. 순간 순간은 힘들었지만 어느덧 덕유산까지 마치고
나니 더욱 더 대간 완주의 의지를 다짐해 본다. 산행을 마치고 이 글을 쓰면서 KBS에서 새로 시작하는 '여름향기'라는 드라마를 덕유산에서
찍었다고 해서 자세히 보았더니 삿갓재에서 무룡산으로 오르는 넓은 계단길이 전체적으로 잡혀있었고... 이선생님이 사진으로 잡아 주셨던 백암봉에서
귀봉, 지봉, 대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능선이 나오는 순간 내가슴도 덩달아 쿵쿵거리는 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안녕!!! 덕유산...
삼봉산... 세 개의 봉우리를 지나 암봉과 함께 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그냥 급경사가 아니고 거의 한시간 동안 650을 떨어지게
된다. 더구나 미끄러운 죽탕 길에 간간이 돌길까지 있어 돌이라도 발뿌리에 채여 구르면 위험한 길이다. 이 길은 삼봉산 마지막 봉우리 암봉을
내려서며 90도로 오른쪽으로 틀면서 내려와야 하는데... 일전에 선배 대간꾼이 홀로 산행을 하면서 오른쪽을 놓치고 무심코 직진 능선으로
내려갔다가 상오정 부근까지 갔다는 글을 읽었는데... 전문 대장님들이 없었다면 충분히 그럴 만 하겠다. 더구나 이 내리막을 다시 대간금을 이으려
올라온다면 .... 나는 못한다!!!
순간적으로 주변에 가스가 차며 시계가 뿌옅게 변하는데 우리가 그 구름바다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많이 내려왔다는 증거... 이제
대간은 고랭지 배추밭의 한 켠을 따라가고 있다. 경사가 많은 밭의 제일 아래쪽을 걸으려니 얼마 전 내린 비로 땅이 질척거려 완전히 진흙
투성이... 뒤에 오는 일행이 비가 온다와 안 온다로 아이스크림 사기 내기를 했다는데 한 두 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많은 비는 안 와야
할텐데... 다 내려오니 무주 무풍과 거창 고제를 연결하는 소사고개다
06:40 소사고개, 체면 불구하고 정상 도로변 배수로에 앉아 떡이랑, 음료수랑 한 개씩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이대장님은 내가 주는 떡은 싫다 하고, 이리 저리로 빵을 돌리고 있다 나도 한 개 받아먹었다... 전에 여러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그게 힘들어 한판 크게 오르고 내리는 등산이 그립다고 했는데... 여러 봉우리도 힘들지만 포장도로까지 내려왔다 다시 오르려니 이 또한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없다. 대간 쉬운 곳이 없다 하더니 다시는 산행계획서의 시간이 짧다는 둥 그런 말에 현혹되지 말고 항상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하겠다.
소사고개는 시작부터 선두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차례가 되니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는 가시나무... 김과장님과 스틱과 발로
가시를 제끼고 겨우 몸을 빠져나가는데 손이며 옷이며 가시에 긁힌다. 겨우 빠져 나오니... 뭐야!!! 시작만 그렇지 산비탈로 이어지는 농가
도로가 나오네... 우회길이 있지만 그래도 가시 대간길이 제 길인데 그래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길이 이토록 험한 모양이다.
시골 마을이지만 넓은 고랭지 배추를 하는 집이라 승용차 한 대에 소형트럭 두 대, 경운기까지 차가 네 대나 된다고 윤대장님이 농담을 하신다. 집앞에서 U턴을 하다시피 산으로 들어가는 가 싶더니... 이제는 아주 밭을 내려고 그러는 지, 도시의 아파트 공사 현장같이 드넓은 산을 블도져로 밀어놓았다. 이 정도면 생계 차원이 아닌 듯 하고, 어디가 대간금인지 구분도 없지만 그래도 선등자들께서 가냘픈 가지에다가 표식기를 걸어 놓았다. 고마운 분들이다. 뒤에 오시는 마루 클럽의 최대장님께서는 계속 지형이 달라졌다며 탄식을 하시는데... 이분은 항상 걷기도 힘든 길을 비닐봉투 하나 가슴에 차고 귤껍질이며 비닐 등 등산객이 무심히 버리는 쓰레기를 주우며 가시는데... 나도 언제나 저런 경지에 오르나 하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이제부터 삼도봉까지는 죽었다고 각오하라는 최대장님의 말씀에 그렇지 않아도 다 내려온 산을 오르기가 힘이 드는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는데... 성삼재의 잡목이 심하다고 했지만 그때는 쉬운 거고 오늘은 하루종일 잡목과 뒤엉킨 싸리가 얼굴과 손으로 밀고 나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엉망이다. 특히 이곳의 싸리는 강원도의 빗자루 만드는 쭉쭉 뻗은 싸리가 아니라 구불구불 엉킨 싸리라 진행이 더욱 힘들고 이런 싸리는 처음 보았다며 김과장님도 연신 희안해 하신다. 어느 정도 올라왔나 부다. 건너편의 삼봉산이 얼축 비슷해 보이며 운해의 바다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새벽부터 3시간 가까이 운해의 바다위를 떠 다니는 기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바다 밑 용궁까지 다녀온 거지... 구름속으로 내려갔다 왔으니...
08:10 초점산 삼도봉(1,250) 지리산의 삼도봉에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갈리고 이곳에서 경상남북도와
전라북도가 나뉜다. 대간은 이제 경상남도와도 작별이다. 오늘은 삼봉산에서 덕유산과 삼도봉에서 경상남도와 헤어지는 이별 산행인데... 이는 곧
새로운 시작과의 만남을 의미하리라... 오늘부터 새로 만난 경상북도와는 태백에 이르러 강원도로 들어 설 때까지 오랜동안 대간길을 함께
하리라... 삼도봉에서 좌로 튼 대간은 위에서 볼 때도 대단한 위용의 잡목숲으로 대덕산까지 이어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몽글 몽글한 숲이지만
실상은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단지 희미하게 줄 하나가 이어진 듯 한 곳으로 대원들의 모습이 슬쩍 비치는 게 길이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삼봉산>
8:45 거의 대덕산(1,290)에 도착하기 직전 헬기장에서 잠시 무거운 몸을 쉬어 본다. 하도 잡목 숲을 헤치느라 더 힘이 든다. 나무가지와 잎에 있는 물기를 온 몸으로 쓸고 가니 색에 매달려 있는 핸드폰 지갑 속에 핸드폰이 물에 바보가 될 까봐 머리 수건으로 감아서 앞 가방에 넣어 놓았다. 바로 대덕산을 넘어 이대장님이 경고했던 너덜지대의 하산길이다. 앞서 삼봉산 하산길에 하도 질려서 엄청 겁을 먹었더니 그래도 아까 보다는 수월하지만 길은 1,300에서 640 덕산재까지 내리막이라 만만치가 않다.
9:20 얼음골 약수터... 한참을 내려오니 산 중턱에 약수가 있다. 육십령 전 깃대봉 아래 장군샘보다 훨씬 물맛이 시원하다. 나중에 덕산령에 내려와 지도에 보니 샘 부근에 폭포도 있다고 되어 있으나 보지 못했다. 이제 하산길은 소나무 숲이다. 나무에도 격이 있는가? 싸리나 산죽이 있는 길은 진흙길이다. 사람이 다니기도 힘들지만 물기가 있으면 미끄럽기가 이만 저만이 아닌데... 소나무 숲길은 솔잎이 쌓여, 길이 그렇게 품위가 있을 수가 없다.
10:00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덕산재.. 폐허가 된 주유소와 매점이 을씨년스럽기만 한데... 부지런히 빗물 내려오는 골을 막아 손이며 신발의 흙이며 닦아냈다. 매점에는 온갖 쓰레기가 잡다하니 버려져 있고 누가 치우질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다 나같은 산행객들이 그랬다고 생각하니 공동의 책임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점심으로 먹다 남은 김치찌개 국물은 마땅히 버릴 곳이 없어 비가 온다는 핑계로 풀숲 속에다 버렸다. 반성한다. 내가 남들처럼 음식을 준비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을 부지런함도 없으니 앞으로도 가능한 한 휴게소에서 매식이 가능하면 사먹어야겠다.
이제 비는 억수같이 내린다. 절룩거리는 동기생 이 여사님도 무사히 하산하셨다. 대단한 정신력이다. 돌아오는
차에서는 어느 샌가 김과장님이 참외를 한 박스 사셔서 앞사람부터 2분당 1개씩 돌렸는데... 제일 뒤 몇 분은 참외가 부족해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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