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39구간(미시령-진부령/신선봉)

마운차이 2005. 7. 22. 14:50

일시 : 2004. 11. 7 02:30~10:45 (14.3Km, 8시간 30분)

산행구간 : 미시령(767)-825.7봉-상봉(1,239)-신선봉(1,204)-대간령(641)-마산(1,052)-진부령

날씨 : 청명한 가을


  월남 이상재 선생이 “매사에는 有始有終이 있다”고 했다. 선생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법’이라는 의미에다가 '始終一貫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무리까지 잘 하라'는 의미일 게다. 2003년 4월 5일 주촌 가제마을을 시작으로 계획에 없던 향로봉까지 거쳐 총 40회 구간을 국토의 등줄기를 내발로 살피고 이제 갈수 없는 나머지 우리 산하를 바라보면서 마무리하는 자리에까지 와있는 것이다.


집안일로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루를 보내고 쏟아지는 잠을 겨우 1시간 정도 달래고 대간 마지막 구간 출발에 앞서 재원씨의 초청으로 저녁 7시부터 남대문 구 시경옆에 모여 전야제를 거행한다. 출발 첫날부터 빠짐없이 행로를 같이 한 이선생님, 김과장님, 이여사님에 문대장님과 중간부터 열심히 참여해온 재원씨 이외의 몇몇 대원이 모여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분위기는 벌써 대간 마치고 뒤풀이 하는 자리인데... 실로 지난 1년 7개월이 뒤돌아보며 감회가 새롭다.


동대문 출발지.. 지리산 출발부터 꾸준히 대간에 참여하시다가 근 한달여의 투병생활로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신 백사장님이 나오셨다... 병원에 계실동안 문병도 못가보고 죄송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마중을 나오신 것도 아니고 직접 산행은 못하지만 버스로나마 마지막까지 대간을 마무리 하시겠다는 의지로 진부령까지 같이 하시겠단다...대간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을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02:30 미시령(767) 마무리의 시발점.. 불 꺼진 휴게소에 준비를 마친 대원들이 산행을 시작하려 휴게소 앞에 모여 있는데... 공단 직원들이 산행을 제지한다. 오늘 산행 구간 중 절반 정도인 미시령에서 대간령 구간이 입산 통제구간인 것이다. 이대장님이 나이 지긋한 직원과 일행의 통과를 상의하는 중에 대원들 일부는 벌써 산으로 들어갔고 이를 지켜보던 젊은 직원이 길을 가로막고 산행을 제지한다. 마침 내 앞을 막길 레.. 산림청에서 발행 받은 산림지도요원증을 꺼내 통제구역의 출입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설명을 하는 사이 대부분의 우리 대원들은 산으로 들어섰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점봉산 구간, 황철봉 구간 그리고 이곳 신선봉 구간 모두 산행시마다 실랑이가 벌어지니, 새벽 잠 안자고 산행에 나서기도 힘들지만 산행을 통제하는 공단 직원 눈 피하느라, 실랑이 하느라 더 신경이 쓰인다.


    맑은 밤 하늘가득 별과 달이 우리의 갈 길을 비춰주고 있다. 나무 없는 황량한 능선 길에 바람도 없이 포근한 길을 잘도 올라간다. 오늘은 설악산도 안녕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50분정도 오르니 넓게 닦여진 야영장, 용대리쪽 발아래로 굽이져 내려가는 미시령 도로에 자동차 불빛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다.


03:35 전망대 지도상의 825봉인가? 전망이 참 좋다. 지난번에 지나왔던 황철봉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지난번의 우리처럼 누군가가 네발로 낑낑거리며 걷고 있으리라...  대간에서 가장 가까이서 보는 대도시라 그런지 속초의 야경이 장관이다. 특히 학사평에서 속초로 이어지는 길과 척산온천에서 속초항으로 가는 길은 모두 직선이라 바둑판처럼 이어지는 가로등의 불빛이 마치 비행기 활주로는 보는 것 같다 야경이 환상이다. 이 야경은 신선봉까지 계속해서 볼 수 있었다.

 

04:00 상봉(1,239) 오늘의 상봉 이름은 상봉이다. 암릉 정상에 돌탑을 쌓아 두었다. 밝은 날이었으면 전망이 그만일 봉우리인데... 밤이어도 속초의 야경이 기가 막힌다. 속초에서 시작해서 눈 닿는 하늘 끝까지 별들의 잔치... 달빛은 덤이다. 상봉의 내리막은 암릉 직벽... 줄을 잡고 조심스레 내려오니 너덜이 시작된다. 그럴테지... 쉽게야 보내 줄라구...이대장님 뒤를 따라 하산을 하는데... 계속되는 너덜에 길이 어딘지 헤메다  잠시 배낭을 너덜에 걸치고 하늘을 쳐다보니 굿바이 별똥별이 대간 무사완주의 축하비행을 보여준다. 길기도 하지! 그 틈에 얼른 가족의 건강을 기원!!! 하고 너덜이 끝나는 지점에서 키 높이 진달래 군락을 헤치고 길을 찾았다.


04:45 화암재.. 너덜이 끝난 안부.. 이대장님이 일행을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속초쪽으로는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창건한 금강산 화암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신선봉을 오르기 위해 숨을 고른다. 오늘 구간의 특색은 바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울창한 나무와 숲이 귀하다. 화암재에서 신선봉 오르는 길도 잡목만 무성하고 나무도 위로보다는 옆으로 기어간다.


05:05 신선봉삼거리.. 신선봉 오르막이 두 갈래로 나뉘며 왼쪽으로 늘보 표시종이가 길을 가리치고 있다. 오른쪽은 신선봉 정상으로 가는 길인데... 아직 어두워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왼쪽이 대간길인데... 바로 옆에 암릉을 끼고 내려간다. 여기서부터 대간령까지 한 시간이상 계속해서 길은 아래로 떨어진다. 1,200에서 600으로 한 시간에 해발 600을 내려가는 길이니 이 길을 오르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겠다. 잡목 터널을 따라 거대한 평원이 이어지고 있고 아직도 속초의 야경은 환상을 자아내고 있다. 연이틀 새벽 3시에 일어나 잠이 부족해서인지... 걸으면서 존다. 예전에 보병생활을 하던 친구들이 몇일 행군을 하면 자면서 간다고 하더니 내가 그 짝이다. 더구나 해가 뜨기 직전이라 사람의 기운이 최저의 상태이고 컨디션도 엉망이라 기계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는 거의 무아(?)의 경지.. 신선봉을 지나며 대간 신선들이 무사히 인도하는 덕택에 걸어가고 있을 따름이다.  

 


06:15 대간령(641, 큰새이령) 예전 같으면 방 구들하기 좋은 편편한 바위들이 깔려있는 안부에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나만 그러는 줄 알았더니 영관씨도 약간 맛이 간 상태로 쓰러진다. 바람이 없다고는 하나 영도에 가까운 기온이라 새벽 추위가 보통이 아니다. 잠시나마 눈을 붙이려 하지만 땀까지 식으니 견디기가 힘들다. 대간령은 고성사람들이 걸어서 한양 갈 때 넘던 길로 소간령을 지나 용대리로 향하던 길이었다. 소양강의 상류 미륵천의 발원지로 이 물은 한강까지 이어진다. 이곳에서 미시령까지 입산을 통제하는 지역이라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있다. 민가가 가까운지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부여케 날이 새며 사방이 밝아 온다.

<오른쪽이 상봉 왼쪽이 신선봉>


07:00 암릉 전망대... 대간령에서 오르는 암릉 전망대는 경사가 만만치가 않다. 50분정도 꾸준한 오름길을 발만 보며 오른다. 그래도 날이 새니 몸은 훨씬 견딜 만하다. 전망대의 경치가 압권이다. 진행 방향으로 10분 정도 조금 더 진행하면 좀 더 높은 전망대가 있으나 재원씨가 점방을 차려버렸고 좀 더 진행하다가 일출을 노칠 것 같아 진행을 멈추었다. 바위 위 제일 전망 좋은 곳에 일출을 기다린다.

                                                           <송지호와 동해바다>

     발아래 송지호와 동해바다가 잡힐 듯이 보이고 속초에서 고성에 이르는 해안선이 죽 이어지고 있다. 7시10분 그 위로 하늘이 붉게 물들며 대간 마지막 구간의 일출이 시작된다. 대간을 시작하며 수정봉 능선을 따라 황산벌에서 첫 번째 일출을 본 이후로 천왕봉의 일출과 덕유산의 일출을 거쳐 마지막 구간까지 일출을 보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다 조상님들의 은혜가 발복해서 이루어진 일이요.. 각 구간마다의  수많은 대간 지킴이 귀신들이 이쁘게 굽어 살피 사... 이루어진 일이라 감사하지 않을 수 가 없다. 대간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마루금에 자리 잡은 묘지를 지날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 여쭙고...  각 산신각 지날 때에도 예의 차리소서!!

    10여명의 일행이 둘러앉았다. 재원씨와 영관이형의 작품으로 고등어 보일드에 소주로 대간주가 시작되었다. 사방이 탁 트인 암릉 정상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한잔 하는 이 순간은.. 그냥 나는 자연과 하나이다.  환상의 날씨 속에 해가 오르니 사방이 수려한데... 상봉에서 신선봉 지나 한 시간 이상 떨어져 대간령을 지나고 이곳까지 이르는 대간 준령이 장하고 우리의 목적지 진부령에서 시작된 군 작전도로가 칠절봉을 우회해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멀리 금강산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다가와 있다. 특히 여기부터 병풍바위봉으로 좌로 틀었다가 우로 확 틀며 마산봉에 이르는 갈지(之)자 능선이 장쾌하다. 병풍바위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너덜을 끝으로 이제 너덜과도 작별이다.

 


08:50 병풍바위봉... 미시령에서 이곳에 이르도록 활처럼 품고 있는 소간령과 주변 능선이 굼실 굼실 춤을 추고 있다. 멀리 마산봉이 가릴 거 없이 키 작은 잡목 군락으로 탁 트여 있고 우리 대원들이 모여 있는 것이 손에 잡힐 듯하다. 무전기를 통해 이제 하산을 시작한다는 윤대장님의 목소리도 들리는데... 마지막 순간에 윤대장님의 공식 막걸리를 먹지 못해 못내 아쉽다.

<향로봉과 금강산>


90:15 마산(1,052).. 군 통제구역인 향로봉을 제외하고 우리가 갈수 있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 이제 향로봉은 눈앞에 와 있고, 아직 눈은 없지만 알프스 스키장의 이국적인 콘도와 흘리가 빤히 보인다. 특히 이곳은 대간의 마지막을 알리는 파이프 대간종이 매달려 있어 이 종을 3번 울려야 공식적으로 대간의 마무리가 된다는 데.... 너도 나도 한 번씩 종을 쳐본다. 가로로 된 종 걸이 통속에 철근 종채(내 문중 항렬 이름이다)가 숨어 있어 이것으로 대간의 마지막을 알린다. 땡! 땡!! 땡!!! 이제 종치고 막 내렸다.

 

 


10:20 알프스스키장 도착. 마산봉 내리막은 스키장 슬로프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온다. 마지막 부분은 리프트를 따라 내려가 콘도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알프스스키장이 지금처럼 대단위 콘도가 조성되기 이전인 1981년 김성곤이란 족장이 하이디의 집을 만들어 놓고 조그마한 스키장을 운영하던 시절 지금 집사람과 처음 스키를 배우며 추억을 만들었던 장소이다. 지금 그 당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렇게 넓게 보이던 스키장 슬로프에 눈이 없으니 조그만 한 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사단이 발생했다. 콘도에 도착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 길 따라 진부령까지 마무리를 했어야 하는데... 콘도 뒤 잔디밭에 앉아 놀미 놀미 놀고 있으니 처음 대원들은 벌써 진부령에 도착했고 마음이 바쁜 늘보 누군가가 버스를 몰고 알프스 스키장 까지 올라와 대원들을 전부 버스에 타라고 성화다. 아무리 바쁘고 마루금이 군 부대와 마을로 훼손되었다고는 하나 마지막 진부령까지 걸어야 되는데... 다된 죽에 코 빠뜨리기도 아니고 이게 뭔가? 고집을 부려 혼자 걸어갈까 몇 번 망설이다가 그래도 기왕에 인간성과 성격 좋기로 소문(?)난 나로서 꼬치꼬치 따져가며 까탈을 부리기도 그렇고....그냥 버스에 오르고 말았다. 다음에 스키 타러 오면 그때 마루금을 밟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