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유럽

2000유럽

마운차이 2005. 7. 22. 15:51
 

독자여러분의 우뢰와 같은 성원 속에 엉아의 유럽여행이 성공적으로 마쳐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유럽여행을 간략히, 시간 나는 대로 연재코자 하니 많은 성원 바랍니다.

첫날


미리 말한 대로 도착지 뮌헨은 독일중에도 구 바이에른 공화국의 주도로 일상적으로 우리가 아는 게르만 민족이 아니고 바이에른의 독창적인 문화를 따로 유지하고 있으며, 자존심이 세고 약간 게르만을 무시하는 분위기임...

뮌헨에 가는 가장 좋은 코스는 대한항공으로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것인데 우리 나라의 폭발적인 유럽여행으로 인하야 ..., 가까운 스위스 쥬리히 표도 없고 파리 표도 없고 바다건너 런던까지 할 수 없이 가서 다시 독일행 국제선으로 으...

런던까지는 약12시간

서울에서 1시 출발하여 중국베이징, 고비사막, 바이칼호 우랄산맥, 모스크바, 암스테르담, 독일을 지나 런던의 히드로 공항까지 도착하니 오후 6시, 2시간 지나 8시30분에 독일행 갈아타고 1시간30분 더가서 1시간 시차 조정하니 뮌헨도착 11시

창기가 와줘서 고맙다고 반갑게 맞이해 주니 여행의 피로가 삭 가시고 아우토반으로 집까지 30분 마누라에 애들까지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고

첫날 독일맥주에 맛을 들이며 서울에서 가져온 선물을 개봉하는데 아뿔사 병건이가 짐칸에 실었던 삼겹살구이용 돌판이 와자작...세 동강이 나있고 (제일 먼저 가져오라고 부탁한 건데....)

회포를 풀고

다음은 이틀째 일요일


뮌헨에서 가까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접경지방을 티롤이라고 하는데 이 티롤지방의 독특한 유럽문화는 각 층의 창문마다 꽃을 가꾸워 만발하게 하는데 그 모양이 워낙 이쁘고 장관이라 첫날 분위기를 압도했고 그런 이쁜 집 마당에 넓은 하얀 파라솔 밑에서 호수를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애들 뛰놀고 맥주한잔 하니 가히 서양신선의 경지라 아무 데도 안가고 이러고만 있고 싶더라고...

그곳에 테렌쎄라는 호수가 있었는데 나중에 스위스 쪽에 가니 그런 호수가 지천이더만 처음 보는 광경이라 아주 뿅 갔지  모타뽀드 빌려  1/10정도 도는데 1시간 걸리드라고...

독일말로 'SEE'를 쎄로 읽는데 우리말로 '호수'란 말이야 함부르크와 같이 부르크 들어가는 지명은 우리말로 --진--포, 등과 같은 군사진지의 이름이고...

더구나 뒷 편 산에 올라 바라보는 테렌쎄는 장관이더라고

테렌세를 나와서 다시 뮌헨으로 와서 넓은 공원으로 갔는데

그곳이 그 유명한 악토버 페스티발이 열리는 곳인데 그 축제는 독일이 자랑하는 맥주축제로 수 만명이 앉아서 맥주를 먹고 이야기하며 즐기는 곳인데 엉아가 간 공원도 일요일이라 그런지 수 만명은 안돼도 수 천명은 되겠더라고,  8명쯤 앉는 군대 사병식탁 같은 곳에 마주 앉아서 맥주를 놓고 마시며 잡담을 하는데 와---- 장관이지 그런 무리가 숲속이 이곳 저곳 여러곳이 있더라고 엉아가 있던 곳을 중국탑이 있는곳인데 10층정도 되는 탑이 층층이 브라스밴드가 연주를 하고, 등등 박수를 치는데 독일은 연주가 끝나니까 개들까지 컹컹거리며 반응을 하더라고 내참, 더러워서

그런데도 한놈도 취해서 게걸거리거나 비틀거리는 놈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취해서 비틀거리면 누군가가 신고를 하고(주로 할머니들)경찰이  연행해가서 병원에서 강제로 위 세척시키고 그런다 더라고 엉아도 엄청 조심했지

참 맥주는 '바이스비어' 란 것이 엉아한테는 제일 좋던데 막걸리 누룩 맛이 나면서 맛이 일품이더라고....이 맥주가 9월 축제의 공식 맥주라나...

그날 창기가 하는 일의 독일파트너 사장의 딸이 아버지 일을 도우며 창기와 같이 일을 하는데 미카엘라라고, 우리 왔다고 공원에 와서 안내를 하더라고 한데 독일사람들이 어지간하면 다 영어를 잘 하는 거야... 그래 창기가 고맙다고 자기 집에 내일 초대해서 한국음식하고 삼겹살을 굽겠다는데--- ( 비행기에서 깨졌잖아 ---)

그날 밤 병건이와 엉아가 순간접착제로 게르마늄 솥뚜껑 붙인다고 쑈를 했지

참고로 다음날 불에서 30분 버티다가 다시 깨지더라고

2일째

아침에 아우토반으로 한시간 반을 달리는데

보통 180 이고 좀 밟으면 210 K 특이한 게 아무리 달리다가도 자기 뒤에 차가 오면 무조건 하위차선으로 비키는 거야... 속도가 무제한이니까 더 달리는 차가 뒤에 오면 무조건 비켜주는 거지 그래도 도로전광판이 교통상황에 따라 100 , 80 이 나오면 20K 한도 내로 120, 100 이내로 바로 속도를 죽이는데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큰일나겠든 데 엉아 올 때까지 사고를 한 건도 못 봤어.... 오토바이도 200 으로 다니는데도 말야 한시간 반에 오스트리아 국경 도시 '짤브부르크' 도시전체가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그 중에서도 도레미송으로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 찍은 미라베 궁전과 시내 전체를 관망 할 수 있는 호엔 짤즈부르크 성은 정말 환상... 

참고로 유럽을 갈 때는 그 장소가 나오는 영화를 몇 번 보고 잘 기억해 두면 나중에 정작 그곳을 볼 때 흥미가 배가되는 것 같고(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미리 골라 둘 것)

간단하나마 지리와 그 장소에 얽힌 역사를 미리 알아두면 정우 같은 애들에게 설명하며 잘난척 할 수가 있을 것 같아. 모든 설명은 짤즈부르크가 독일어권이라  독일어로 되어있고 교통표시판도 독일어 이외에는 영어표기가 일체 없어 영어병기에 익숙한 나로서는 당황스럽더라구...그래도 궁하면 다 통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저녁에 손님을 초대해놔서 부리나케 돌아와서 맥주도 한 짝 사서 냉동고에 넣어놓고,  아침에 주문해 놓은 삼겹살을 사러가는데 창기가 독일어로 삼겹살을 못해 그냥 돼지고기를 달라고 했다는데... 또 우리 나라 삼겹살 두께로 슬라이스를 할 라면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다나...

아무튼 싸주는 데로 가져와서 구워보니 삼겹이 아니고 살코긴데 기름은 하나도 않 나오고 고소한 맛 대신 퍽퍽하기만 하더라고, 창기 마누라한테 죽도록 욕 얻어먹고 맥주를 먹는데, 한국과는 달리 슈퍼에서 나와 술 파는 곳이 따로 있는데 병이 제일 잘 생긴 것으로 한 짝 샀는데 -----

미카엘라의 남자친구가 엘리안(?)인가 독일놈인데 우리는 벌써 맥주를 잘 먹고있고 ---, 맥주를 주니까 , 다른거 없녜, 그래 왜 그러냐니깐 이 맥주는 무 알콜이래 쯧쯧--- 어째 맹탕이다 했더니, 창기 또 마누라한테 죽었지

술을 잘 안 먹는 놈이라 사본 적이 없는 거야 독일 놈이 잠깐  나갔다 오더니 유명한 걸루 한 댓가지를 섞어 사 왔는데 보통6도에서  독한 건 9도 짜리 도 있고 쓴 거를 여러 잔 먹으니 취기가 오르는데 덕분에 엉아가 미카엘라 한국에 오면 구경시켜 준다고 했는데 술 바람에 일거리 하나 만들었지


3일째

아침에 일어나  렌트카 회사에 가서 창기가 미리 예약을 한  차를 빌리는데 벤즈는 너무  부담스럽고 혹시 긋기라도 하면 수리비가 많고 BMW는 창기(523)꺼 있으니가 해 볼 수 있고 해서, 아우디 A6로 했는데 2500CC 에 디젤 엔진인데 전혀 디젤의 떨림을 느낄 수 없고, 힘이  왁 느껴지는데 으와 4단 변속을 90정도에 하고 5단 변속을 110-130에서 하는데 조금만 변속에 신경 쓰면 오토를 따라갈 수 있더라고 ..... 기름도 싸고 연비도 좋고 (참고로 독일의 휘발유는 우리 나라처럼 비싸고 1리터에 1,200정도, 렌트 비용은 하루 차 값은 4만원으로 너무 싼 데 선진국답게 보험료가 한 5만원정도 부담이 크고, 그 중 전체의 17%는 우리가 외국인이라 비행장에서 출국 시 돌려주게 되어 있음)

다음은 스위스로 , 뮌헨에서 2시간 정도 가면 오스트리아 국경이 나오는데 (짤즈부르크 가는 반대 방향으로) 독일은 그렇게 잘 관리된 아우토반을 유럽전체가 사용하면서 무료로 하는데, 한 20K 정도 오스트리아 통과하는데 통행료를 받는 바람에 창기가 오스트리아 놈들은 순 도둑놈이라고 엄청 투덜거리더라고 왼쪽으로는 유럽에서 제일 작은 나라인 리히텐슈타인 공화국이 있고 독인 전체가 드넓은 평원이라면, 오스트리아부터 산이 시작되는데 한 15분가니까

드디어 스위스

스위스는 아예 1년 도로사용료를 한번에 내라고 하는데 .....독일이 정부 지출을 통해 국민부담을 최소화한다면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모든 관광객에게 비용을 부담시켜, 국가의 부를 유지하는 것을 볼 때, 독일의 국력을 가름 할 수 있었다.

스위스는 거의 우리 나라 정선이나 태백정도를 연상하게 하는데, 거의 산정까지 초원이 깔려있고, 그 중간 중간에 집이 한 채씩 있는데.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할아버지와 살만한 집들이 계속 있어 정우한테 설명하기 좋았지. 모든 길은 호수를 따라 가게 했고, 거의 터널을 통해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호수 건너편에서 볼 때 반대편 길을 볼 수 없게 해 놨더라고

쥬리히를 지나 드디어 스위스 알프스에 들어가는 입구 루체른 유럽의 도시가 다 그렇지만 호수 주변에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놓고 한가하게 보드 타고 수영하고 이쁜 건물 앞에서 맥주 마시고...., 게다가 시내 한 복판을 알프스의 빙하 녹은 물이 넓은 호수를 지나 개울로 흐르는데 물이 맑기가 우리 나라 내린천 상류에 홍천 내면의 개울물처럼 맑더라고...

마침 우리 나라 사람이 운영한다는 'Tourist호텔' 이 이 개울을 끼고 있는 데, 물 흐르는   전망이 그야말로 국가 대표야. 창기가 미리 예약을 해 놨는데 아침 1끼씩 주고 2인실 100 스위스 프랑(우리 돈으로 7만원정도), 3인실 140프랑, 4인실 170프랑 정도이니 유럽의 물가를 감안하면 합당한 가격인 것 같아.

드디어 방은 잡았고 정우랑, 현도랑(병건이 아들), 동의랑(창기 아들) 하도 수영하자고 해서 호수 가에 수영도 할 겸, 저녁도 먹고, 루체른 시내 구경도 하고 한 바뀌 돌았는데, 스위스시계 파는 건물 입구에 한국말로 안내된 것을 보니 국력(?) 을 실감할 수 있었고 특히 스위스 프랑을 바꾸지 못해 딸라를 썼는데 1:1.5 하던 것이 1:1.7로 딸라 쓰는 재미가 죽이더라고(미국놈들 빵기리 포함 엄청 좋겠드만)

호수가에 수영을 하는 동안 옷 벗은 여자들 구경하는데 다 보이는 나무 뒤에서 수영복 벗고 속옷 입고 영 쌍것들인데 영미 몰래 안보는 척 하면서 다 봤지!!!

독일이나 스위스나 여름 한 철 해가 보이고, 가을부터 스산해지며 날씨가 안 좋은데 예네들은 좋은 날씨만 보면 사죽을 못쓰고 벗고 해에 굽는 거야...

물이 너무 차 오래는 못하고 호텔에서 안내해준 한식당 '아리랑'을 찾아가는데 그날 따라   '휴가중', 아니 유럽놈들 이라고 엉아가 왔는데 휴가라니 하며 중국식당을 경찰한테 물어 찾아가니 오늘이 루체른 장날인지 또 '휴가중' 아마 한국놈이랑 떼놈이랑 같이 휴가를 갔나.....

할 수 없이 맥도날드에 갔는데 애들 햄버거와 음료수,  맥윙 몇 통에 맥주 댓 잔 먹으니 1,200프랑 우리돈으로 십만원이야, 물가가 비싼걸 느끼며 맥주가 확 깨더라고..... 배도 고프고

엉아가 누구냐?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고 호텔로 돌아와 비장의 무기인 라면을 끓여 먹을라고 준비한 블루스타에 라면을 끓이는데 한참 끓다가 가스가 다 된거야, 예비는 없고 비상상황에 시간은 10시가 넘었고, 부리나케 퇴근하는 한국인 호텔 사장한테 부탁해서 마저 끓이고, 계란까지 얻어 넣고, 그래도 한국인답게 안면몰수하고 잘 먹고 냉장고가 없는 방이라 화장실 세면기에 찬물 틀어놓고 긴급으로 차게 한 맥주까지 마시고 잘 잤지...

아 위대한 한국인이여..... 

4일째

오늘은 유럽의 지붕, 알프스의 정상 융프라우에 가는 날이다. 약간 곱슬한 밥에 콩나물 밥 해 먹을 때 뿌리는 양념 간장을 곁들여 아침을 먹는데 그런 데로 먹을 만 했다. 거기에다가 햄과 치즈를 곁들인 빵과 요구르트 버터, 잼, 그리고 시리얼 등 제법 갖추어진 식사였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호수와 터널에 연한 도로를 한시간 30분 정도 달리니 드디어 알프스의 관문 '인터라켄' 멀리 만년설에 덮인 융프라우가 높은 산에 가려 손톱만큼씩 간혹 보이고 관광의 도시인만큼 말이 끄는 마차가 관광객을 싣고 다니고.......


슬슬 마음의 흥분이 시작되는데...  아침에 호텔주인이 말하기를 낮이 길어서 충분히 다녀온다고 해서 느긋하게 다니려고 했는데 기차역에 가보니 아뿔사, 한시간 정도 타는 줄 알았던 등산열차가 편도 2시간 30분 벌써 12시인데 12시30분 기차를 타고 정상에서 한시간 정도 머문다 해도 4시10분 기차는 타고 와야하고 다 내려오면 거의 7시 루체른 가면 9시 벌써 마음이 바빠지게 된다. 등산열차는 3단계로 갈아타는데 첫 단계는 일반열차로 40분 정도 이동해서 그란덴 발트에서 산악열차로 갈아타고 산악열차는 기존 철도 레일 중간에 미끄럼 방지용 톱니레일이 한 줄 더 있는 형태인데 30-40도의 각도를 올라가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크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시작하는 두번째 등산열차부터는 아이거, 융프라우가 눈앞에 확 다가오면서 세상에 이런 장관이 있다니..., 병건이가 저는 사진에 담고 나보고는 캠코더에 담으라고 핸드캠을 나한테 맡겼는데 엉아는 그저 넋을 놓고 보느라고 멍한 상태

사진이나, 엽서, 달력에서 보던 알프스의 절경을 이렇게 눈앞에 놓고 보면서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여..... 군데군데 집들은 티롤풍으로 창문마다 꽃으로 장식을 하고 있고 삼삼오오 젖소들이 풍경을 맞추고 , 길을 따라 늙은 부부가 간단한 쌕을 메고 트레킹을 하고 일부는 산악자전거를 타고, 아! 이곳에서 저처럼 한 일주일 머물러도 너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더욱 가관인 것은 세번째 갈아타는 역은 해발 2,400 미터인데 (참고로 백두산이 2,744 한라산이 1,950) 출발 후 길이 바로 암반 속으로 들어가 종점인 융프라우 요후 역(3,454m)까지 계속 암반 속으로 가는데 아! 우리 나라는 제사상에 생선머리를 동으로 해야하니 서로 해야하니 하고 사색과 당파에 정신이 팔릴 때 이들은 자신의 나라를 자연의 파괴를 최소화하며 이런 대 작품을 남겼구나 생각할 때 정말 괴롭드라고...

더구나 1,000m를 암반 속으로 올라가면서 그 속에다 2개의 역을 만들고 넓은 광장을 만들어  유리전망대로 수 만길 낭떠러지와 빙하, 만년설을 구경할 수 있게 해 놨으니 아! 자연의 혜택과 인간의 노력이 이 사람들을 후세에까지 풍요로울 수 있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너무나 부러웠다.

드디어 3,400 융프라우 요흐, 기차가 갈 수 있는 최고 높은 역까지 왔다. 평소 그렇게 튼튼하다고 자부하던 내가 머리가 혼미해지고 허벅지 근육이 당기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아! 이게 '고산병'이구나  하는 생각이 실감되는데 내 참, 박정우와 박영미는 팔팔한게 나만 쪼다되는 분위기야

얼마나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지 융프라우 열차는 독일, 프랑스, 영어, 이태리, 일본, 아 한국어방송까지 하는 거야... 감동 그동안 우리 나라 노인네들의 깃발 유럽여행과,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으로 뿌린 돈의 효과가 확실히 나는 거지


정상에서는 이제부터 설벽 장비를 갖추고 만년설을 등반하는 팀, 안전지역 내에서 스키를 타는 팀, 완전히 설국인데... 이곳에다 기차 내리는 곳에서 엘리베이터로 100m를 수직 상승하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고 알프스 주변을 바라보게 해놓기도 했고, 빙하 속을 파서 얼음 굴을 만들고 그 속에다 온갖 얼음 조각을 해놓고 조명으로 멋을 내기도 했고 여러 가지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드라고... 그 중에서도 빙하가 흘러내리는 빙하의 강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작품임에 틀림이 없었음.

더구나 현지 교포 얘기가 자기는 네 번째 인데 한번도 정상이 이처럼 맑은 날은 못 보아서 섭섭했는데 우리는 첫번에 이렇게 구름 한 점 없는 광경을 보게 되어서 너무 부럽다고 할 때는 정말 기분이 트더졌는데 병건이 말이 자기네 애들 풀어서 그렇게 했다고 해서 고맙다고 했지(근데 그 시간에 애들이 다 스위스로 오는 바람에 한국에는 통제가 안돼 홍수에 폭우에 난리가 났드만)

정상에서 1시간은 턱없이 시간이 모자라는데 4시 10분 기차를 놓치면 5시가 넘어가므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2,400미터 역으로 내려오니 고산증세가 싹 가시는데 ... 신기함과 함께 7,000m를 무산소 등정과 14개봉 완등을 이룩한 우리 나라 산악인들이 새삼 존경스럽드라고

근데 희한하게 우리가 내려오니까 모든 봉우리마다 구름이 감싸기 시작하는데 병건이 네 애들 고생 많았겠드라!!!.

내려올 때는 조금씩 다들 피곤한데 기차마다 만원이라 발 디딜 틈이 없는데 맨 앞 칸에 한 칸이 통채로 비워있어 일가족이 낙낙거리며 내려오는데 차장이 오더니 일등칸이라 차비를 더내라고 하길레 우리가 누구냐 ? 왠만하면 입장료 내는 곳은 안가는 우리가 더 내기는, 전부 일어서 뒷 칸으로 간다고 하니 차장이 어이가 없었는지, 애들을 보면서 그냥 앉으란다. 덕분에 편하게 다리 뻣고 잘 내려왔지... 역시 스위스 애들은 착하기도 하지...

다시 인터라켄으로 내려와 옛날 창기가 가 봤다던 한인식당으로 갔는데 IMF 때 망해서 없어졌다고 해서 일본식당에 앉았는데 그 너머로 낙조에 붉은색으로 물든 융프라우의 절경이... 아!, 융프라우는 마지막까지 한 개라도 더 자신의 절경을 엉아에게 보여주려고 하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생각했지.

부리나케 저녁을 먹고 엽서 몇 장사고, 루체른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올 때 고속도로가 있는데 구 도로로 마을 구경을 하고 와서, 갈 때는 고속도로로 가기로 했는데, 입구를 못찾아, 창기차 네비게이션(위성에서 길을 안내) 따라 이동하는데, 병건이가 산 지도에 지금 가는 길이 고속도로 접속이 안 된다고 창기에게 우기다가 창기 차가 고속도로를 찾는 바람에 병건이 쪽팔리고 독일기술의 우수함을 또 한번 알게 되었지

루체른에 도착하니 밤 10시, 호텔 앞을 흐르는 강 옆에 하얀 색 커다란 파라솔이 이쁜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흥분을 이야기하며 또 하루를 보냈다. 이제 온 날 보다 갈 날이 적게 남았는데 아까워서 어떻하나.....


5일째

오늘은 스위스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가는 날. 어제와 대동소이한 아침을 잔뜩 먹고 독일로 가는 길에 휘센이란 곳을 들리기로 했는데 이곳에는 우리가 어릴적부터 디즈니랜드 시작할 때, 익숙히 봐온 일명 디즈니 성의 모델이 됐다는 노이슈반쉬타인 성에 있었다.  독일어로  '노이'는 새롭다는 말이고 '슈반'은 백조 '쉬타인'은  돌이라는 뜻이므로 우리 나라 관광안내 책자엔 '백조의 성'이라 했더라고 어제 융프라우 등정도 있고 또 오늘 3시간 정도 스위스에서 오느라 애들도 힘들고 해서 걸어서 30-40분 정도 걸리는 성까지 호사스럽게 마차를 타고 편하게 올라가는데 마부 옆 앞좌석에 좌우를 보고 있자니 이놈의 말이 꼬랑지를 척 들더니 커다란 소보로 빵 만한 것을 서너 덩이  그대로 엉아 눈앞에 길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거야, 속으로 생각하기를 독일놈들 마차 밑에 조그마한 천으로 받침대를 만들면 이렇게 깨끗한 길바닥에 버리지 않을 텐데 했는데, 웬걸 산 위에서 내려오는 오토바이 보다 조금 큰 기계가 롤러로 그것을 쓸어서 닦는 거야, 야 ! 과연 독일놈들 이구나 했지, 생활에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 인간이 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거지... 하루 이틀에 됐겠어 어디...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성 앞에  넓다란 호수가 있고 뒤에 산이 있는데, 이런 경우 독일놈들은 반드시 호수반대편에서 호수  위에 성을 함께 볼 수 있게 해놨고, 또 산 위에서 성 뒤로 호수가 보이게 전망대를 해놨는데 이곳은 특이하게도 성 뒤로 한 200-300m 정도 높이 되는 계곡에 50m 거리의 다리를 놓고 그 다리 위에서 성과 호수를 함께 볼 수 있도록 해놨는데

박영미 다리위로 갔다가 벌벌 떨고 내려오는데 고소 무슨증인가 라는데 엉아 잡을 때는 깃발날리고, 융프라우에서도 제일 멀쩡하고, 비행기도 잘 타는데 그건 무서워하더라고 박정우와 엉아는 끄떡없었지...

넓은 호수, 아름다운 성, 높푸른 하늘, 그리고 하늘에 점점이 박힌 오색의 패러글라이딩, 그림 그 자첸데. 독일놈들 즐기는 것도 철두철미 한 게 자전거를 타더라두 헬멧은 필수고, 그 더운 여름날 고속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도 검정색으로 헬멧, 장갑, 장화, 가죽점퍼와 바지 등을 갖추고 타더라고, 캬라반이라고 자동차 뒤에 숙소 달린 차를 매달고 거기에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매달고, 여행지를 옮겨다니는 모습이 엉아는 제일 부러웠는데, 언제 그거 사냐(?????)

점심에는 이태리 피자 집이었는데 성 앞 호수 기슭의 풍광 좋은 곳에서 맛있는 피자를 영미는 제일 잊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얘네 들은 음식점 안쪽에다 다른 곳과 밀폐되게 해놓고 간단한 놀이기구를 만들어 애들이 놀 수 있도록 해놨는데 애들 땜에 어른들 식사가 방해받지 않기 위함으로 애들에게도 좋은 것 같아, 뛰어다니지 말라고 눈 안 찢어도 되고....  

저녁에는 뮌헨시내 중심가 한인식당 '아리랑',  광부아저씨와 간호사 아줌마가 남아서 하시는 곳인데 우리의 슬픈 과거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분들이 이제는 완전히 자리잡고 사시는 걸 보니 어딜 가도 우리의 근면함이면 통하는 것 같아, 연신 뭐라도 더 줄라고 애쓰시는게 고맙기도 하고 한 이틀 스위스가서 제대로 된 우리 음식을 걸렀는데 완전히 포식하고 속도 다스렸지.....



6일째 

점점 유럽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씩 익숙해지는데  아침부터 뮌헨시내도  구경할 겸, 고호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다는 미술관에 박영미가 꼭 가봐야 한다고 해서 시간을 냈는데... 엉아는 미술에  그다지 조예는 없지만 중 고등학교 때 국 산 사 자 음 미 실, 오만가지 과목을 하면서 미술시간에 시험 볼라고 외웠던 고호, 고갱, 마티스, 칸딘스키, 피카소 등 시험답안에 썼던 사람들의 그림 진품이 장르별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야! 미술을 전공하는 다솔   엄마가 와서 봤으면 정말 좋아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일부는 제국주의 히틀러가 전 유럽을 점령하면서 가져다 놓은 것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정리했구나 생각을 하면 프랑스가 우리 외규장각 도서를 다 쌔벼다 놓고 돌려주니, 안주니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쉽게 주지 않는 것이 생각나더라고 

주마간산이라도 미술관 구경을 마치면서 왠지 유럽의 깊은 곳의 일부를 본 것 같아 감회가 새롭더라고... 또 그 한 켠에는 그 그림들을 엽서, 달력, 복사판들과 각종 화구들을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도 잊지 않고 구색을 맞춰 놨길레 또 한번 감탄했지...

엊그제 짤즈부르크에 갔을 때 모짜르트의 생가를 가봤는데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서 잠깐 느겼던 그 당시의 감회와 영화 속에 장면들이 실제상황처럼 기억나는 게, 왜 유럽인들은 누구의 탄생지 누구의 살던 집하고 고이 보존하는가 했더니 역사의 자취를 고스란히 남겨놓고 그 속에서 오늘을 이어가는 그네들의 전통의식을 알 것 같기도 하더라고.

미술관을 나와 가장 번화한 뮌헨시청을 가봤는데 대충 유럽 중에서도 독일은 거리나 건물들이 실용적이면서 둔탁했는데 시청건물은 현란함의 극치를 보는 듯 했어, 5층 정도에 서울시청 두 배정도 되는 건물에 창문마다 섬세한 조각으로 멋을 내고 시계탑에서는 하루 두번 인형이 나와 시간을 알리며 춤을 춘다는 데 직접 보지는 못하고 서있는 인형만 보고 왔지,  마침 점심시간이라 근처 사무실에 비즈니스맨들이 쏟아져 나와 넓은 광장 카페에서 간단히 점심과 맥주 등을 마시며 얘기하는 게 활기에 넘쳐 보여 좋았다.

오후에는 창기가 준비한 하이라이트 유럽에서의 라운딩, 뮌헨주재 대한무역진흥공사 관장이라는 송 아무개와 창기 나 병건이 넷이서 뮌헨 근처에 있는 회원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데 야! 이게 꿈이냐, 생시냐, 독일에서 골프를 치게 되다니.....

첫 티샷이 푸른 초원으로 그림같이 나가는데 우와 골프자체보다 분위기에 취해서 아무생각도 없더라고, 창기가 서울식당 노인네한테 채를 빌려 창기 꺼와 함께 두 셋트로 세 명이 치고 있는데 우리 뒤에 팀이 채 없이 치면 안된다고 프론트에 일러서 진행요원이 오고 난리가 났는데 다행이 고물 채를 하나 빌려주는 바람에 다행이 라운딩을 계속 할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안맞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죽을 쉈지, 공은 한 10개정도 잃어버리고 .... 그래도 아무렴 어떠냐 유럽 전지훈련인데... 송관장은 처음에는 삐걱 하더니  한 90개정도 치나봐 잘 치더라고

골프를 마치니 저녁 7시정도, 아! 사탕을 다 까먹고 손바닥에 껍데기만 쥐고 있는 심정으로 허탈해 지는데, 마지막 밤의 만찬을 위해 중국요리집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밤에 마침 결혼식이 있는 거야, 별 구경을 다하고, 창기가 아주 신경 써서 메뉴를 준비했는데 엉아는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바이스비어만 계속 비워댔지..

그렇게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은 깊어갔다.....    

드디어 오는날

꿈만 같던 일주일을 보내고 이제 간다고 생각하니까 오만 곳에 힘이 쭉 빠지는 게 아무하고도 얘기하기도 싫더라고.. 일주 내 맥주 퍼먹어도 아침에는 항상 엉아가 1번으로 일어나 몸단장하고 새로운 곳을 보는 맛에 설레였는데 말이야

그래도 대단한 창기가 마지막으로 결단을 내리고 데려다 준 곳이 '다하우 수용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함께 독일인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곳으로 히틀러의 인종청소를 위해 화학공장이던 곳을 수용소로 개조했는데, 그 속에는 그 당시의 숙소, 작업장들을 그대로 보존해 놓고

있었고, 특별전시실에는 나찌의 잔학상을 사진과 영화로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곳을 보고 있자니 나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일들인데도 찌릿하는 전율을 느낄 수 있더라고

뮌헨 옆 창기가 사는 곳과 가까운 곳인데 이곳 주민들은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천형으로 생각한데... 애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클 수 있도록 조심하고 초등학교 6학년이나 되어서 세상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알려주는데 대신에 그때는 철저하게 자신의 조상들의 만행을 아이들에게 알려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거야

독일이나 일본이나 전체주의 국가가 개개의 국민들은 친절하고 착한데 집단의 힘으로 만행을 저지르는 자신들을 경계한다고 나 할까? 어느 관광지보다도 느낀바가 더 많은 것 같아

이것으로 독일에서의 모든 관광일정을 마감하고 집에 오니 12시 창기는 얼른 양복 갈아입고 1시에 뮌헨공항에 도착하는 LG 전무일행을 영접하러 공항에 가는데

마지막까지 배려해준 창기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말로 무어라 표현 할 수가 없더라고, 나중에 조금이라도 꼭 신세 갚을 날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집에서 공항 가는 창기 배웅하고 나머지 식구들과 창기네 집에서 첫날 아침에 설레이는 마음으로 올라갔던

집 뒤의 성에 올라가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바이스비어 한잔하고 치즈 케익 먹고 정말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려오는데, 창기 마누라 은경씨가 마지막으로 입 속이 개운해야 한다며 고맙게도 라면까지 끓여주니 잘먹고

고마운 창기네 식구들 은경씨, 동의, 지수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뮌헨공항으로 와서 5시에 영국항공으로 다시 영국 히드로 공항으로 와서 장장 5시간을 기다려 대한항공을 타니 입구에 각종 신문이 즐비하고, 이륙하자 마자 김종진이 9시 뉴스 하는 것을 녹화했다 보여주는데 너무 반갑기도 하고 이제 정말  유럽을 떠나는구나 하는 게 감회가 새롭드라구....

이제 서울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일해야 되는 시간

다음에는 빵기리한테 꼭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