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에서의 아침!
가이드가 우리를 놀려먹느라 중국식 인사법을 소개 해 주는데... 얼마 전까지 만 해도 윗사람에 대한 우리의 아침 인사가 진지드셨습니까! 요즘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한다. 중국에서는 그 인사가 ‘18로마’로 우리말로 표현하면 욕이 된다. 재미붙인 가이드가 연신 나를 빗대 ‘박따꺼 18로마!’를 외쳐대는데...으으! 이따꺼 18로마!, 안따꺼 18로마! 다들 한마디씩 하며 버스는 웃음판으로 변했다.
우리가 먹은 40도 중국술이 같은 종류가 어디는 100위안, 어디는 20위안, 공항 면세점은 70위안 등 값이 천차만별이다. 결국 싼 건 가짜!! 진짜건 가짜건 40도의 이 술은 기름지고 좋은 안주와 먹어야 하는데...우리는 버스에서 진미채 같은 것으로나 식사 시간이라도 상추쌈 같은 것으로 독한 술을 먹으니 소화기관이 버티질 못한다. 거기에 잠까지 부족하면 몸이 감당하질 못하고 명치부분이 체한 것 처럼 불편하게 되는데... 결국 김 세너장이 고속도로에서 버스를 세우고 토하고 말았다, 저녁에는 김실장이 소화가 안되는 듯한 불편을 호소했다.
도문!
지도상으로 우리나라 가장 북쪽지역인 온성과 마주하는 중국의 국경 도시이다. 두만강을 보러 이곳을 들렀는데...두만강이 딱 물 많을 때 탄천만 하다. 이곳도 몇 일 비가 내렸는지 누런 황톳물에 노젓는 뱃사공 대신 모터 보트에 우리 일행을 태우고 위로! 아래로! 다니는데...우리의 관심은 오직 북한 땅, 젊은 병사가 빤히 보인다. 우리가 쳐다보니 얼른 나무 뒤 수풀로 몸을 숨긴다. 마음속엔 만감이 교차하는데...이를 알길 없는 유람선은 모터 소리만 요란하다.
광장에 있는 커피 전문점에서 여자분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데...커피 내리는 방식이나 Take-out 해주는 컵이나 우리랑 다를 게 하나도 없고 값도 우리랑 비슷하다. 북한 국경을 따라 용정으로 이동하는 내내 좌로는 점점 더 폭이 좁아지는 두만강과 높은 곳 까지 개간하고 있는 산비탈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드넓은 옥수수의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또 한 번 대단한 것은 백두산 구석구석 뿐만 아니라 드넓은 만주벌판 어디에서도 핸드폰이 가능하도록 다 깔아 놓았다 다시 한 번 놀랄뿐이다.
용정!
우리민족 해방사에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역사의 도시,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6개시중 우리도 5개의 시를 거쳐 왔다. 으아스럽겠지 만, 첫 날 고속도로에서 내려 이도백하로 향할 때의 도시가 돈화시 였고, 백두산을 마치고 연길로 향할 때의 중간도시가 화룡시, 그리고 오늘 우리의 일정이 연길, 도문, 그리고 용정시, 러시아 국경쪽의 훈춘시만 못가보았다.
모두 마음속으로 선구자를 부르면서 우리의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하며 말 달리던 그때를 생각해 본다. 용정의 대성중학에는 헤이그 밀사 이상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지은 민족시인 윤동주, 그리고 문익환 목사 등 많은 민족의 지도자에 대한 자료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는데....문득, 이곳이 중국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아쉬웠다.
해란강을 건너 일송정은 버스에서 만 구경하는 ‘차창관광’ 말도 재미있게 지어놨다. 차로 한바퀴 흭 돌며 끝이다.
(산 오른쪽 조그만 정자가 일송정)
연길!
연변 조선족 자치구의 대표도시, 우리 중국동포들의 마음의 고향, 한국에 와 고단한 삶을 지내고 돈을 벌어 연변에서 한국사람들에게 당하 듯 한족들을 돈으로 부리며 산다는 전형적인 소비도시.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부르하통하강 주변으로 이들의 부를 상징하는 아파트들이 우리 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방송 접시를 하나씩 달고 즐비하게 줄지어 있고 사방에는 음식점과 노래방이 이어져 있다. 그나마 예전에는 1년 벌어 장만했다는 아파트가 이제는 3년, 5년 걸려야 살 수 있고, 떨어져 있는 가족들의 많은 문제점이 급속하게 가족의 해체로 이어진다니 이들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광고탑 그림자에 해를 피하는 참깨 산 사람들)
연길에서는 이제 집으로 돌아 갈 준비를 하는데...부부가 많이 왔고, 다들 살림꾼들이라 참깨며, 산나물이며 한보따리씩 샀는데...집에 와 어머님께 선물이라고 내 놓으니 중국산이구먼! 하고 무시하는 듯 하더니 그래도 품질이 좋은 편이라고 좋아라 하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