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4구간(육십령-삿갓재/서봉, 남덕유산)

마운차이 2005. 7. 22. 13:08
일시 : 2003. 5. 18 03:35∼11:10(14Km, 7시간 35분)
산행구간 : 육십령(700)-할미봉(1,026)-장수덕유산(서봉, 1,510))-남덕유산(1,507)-월성치(1,240)-삿갓봉(1,410)-삿갓재대피소(1,280)-황점
날씨 : 해 없이 맑다가 9시부터 해 나옴

보름이 이틀 지났지만 거의 둥그런 보름달이 오늘의 장도를 축하하는 듯 하다. 오늘은 학교 동창인 병건이가 동행을 했다. 그쪽 대간팀은 현재 속리산을 가고 있는데 늦둥이 수림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육십령부터 참석하지 못해 마침 이곳을 가는 우리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제는 버스하고도 궁합이 맞기 시작해 백현정류장에서 10분 정도 기다리니 우리 버스가 도착한다. 전에는 한시간도 넘게 기다리기도 했는데 많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우리 산행에 동참한 이익수 대장님이 반갑게 맞이하고 간단한 산행설명을 하는데 당초 동엽령에서 용추계곡으로 하산해서 무주 안성으로 가기로 했는데 안성에서 동엽령까지의 하산과 다음 산행의 진입이 너무 힘들어 삿갓재에서 거창땅 황점으로 하산키로 했다고 양해를 구한다. 지도상으로 보면 거의 2시간 이상 단축된 것 같고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오늘따라 고속도로 사정도 원활해 덕유산 휴게소에는 1시간 넘게 여유가 있었고, 육십령에 도착해서도 처음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 맨손 체조하고, 몸 풀고 해도 3시30분이다. 월요일인가 주중 예보에 일요일날 비온다고 해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예보가 틀리기를 기원했는데 정말 날씨가 좋을라나 보다.

03:35 평소보다 30분 일찍 산행을 시작한다. 서울에서 올 때 그렇게 커다랗던 휘엉청 보름달이 저 멀리 조그마해졌고 그나마도 뿌옇게 달무리가 진게 별도 잘 안보인다. 함양쪽 육십령휴게소에서 장수쪽 육십령 휴게소방향으로 올라가니 정상 오른쪽으로 골재장이란 팻말이 있는데, 낮에는 골재 채취하고, 다듬는 쇳소리가 저번 산행 때 깃대봉 전부터 소음이 어마어마 했는데 지금은 밤이라 인부도 자고 골재장도 잔다. 너무 조용하다. 그 위로 대간 진입로가 보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특히 오늘부터는 덕유산 자락이 시작된다. 육십령(700)에서 우선 할미봉(1,026)까지가 첫 번째 구간에서 예전 같으면 하도 초입부터 호흡이 가빠 강아지 모양 입을 벌리고 헉헉하며 호흡을 했는데... 첫 구간은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않고 코로만 호흡하기로 하고 작정해 본다. 마침 발 밑이 주촌에서와 같이 소나무 숲 구간이라 미세한 먼지가 해드랜턴의 불빛을 받아 춤을 춘다. 대간의 먼지야 그냥 먹어도 문제될 게 없지만 그래도 호흡고르기 시작이다.
비교적 소나무 숲으로 순하게 올라가던 오르막에 언듯 언듯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입을 다물고 오르니 왠일인지 콧물이 계속해서 줄줄 나기 시작한다. 할미봉 부근은 온통 바위 투성이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보조 자일이 매달려있고 한사람씩 통과하려니 대열이 지체된다. 특히 내리막은 경사도 급하면서 바위틈이 좁은 곳도 있어 겨우 한사람씩 진행하는데... 겨울산행중 눈속에 보조자일이 덮힌 상태로 얼어 붙어 고생했다는 산행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정말 어려웠음을 짐작해 본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별빛대신 영롱하게 빛나고 새벽기도를 알리는 마을 교회의 스피커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데 이곳도 이제는 종소리가 아니지만 그래도 평화롭다. 대간은 오른쪽으로 휘감아 돌면서 희미하게 퍼지는 새벽어스름 사이로 오늘의 하이라이트 장수덕유산 서봉과 남덕유산의 장엄한 자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수직고도 500미터를 올라야 한다.

05:50 완전히 세상이 밝았다. 언제나 느끼지만 이 시간은 밤사이의 휴식에서 깨어나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이라 그렇게 신비로울 수가 없다. 특히 아침을 알리는 수많은 새들의 합창은 대간하는 또 하나의 재미를 느끼게 한다. 경상남도 교육 연수원인 덕유교육원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부터는 교육원의 교육생들이 자주 등산을 하는지 길이 완전히 대로로 넓어진다. 계속해서 10분정도 진행하니 헬기장이 나오고 15분정도 더 올라 무명봉에 도착했는데 전망대 바위라 불릴 정도로 사방의 조망이 좋고 바로 발 밑에 덕유교육원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글로 쓰니 담담하지만 여기까지 오르기가 죽다 살아났다 입은 저절로 벌려져 헉헉거리는데 멀리 월봉산 너머로 손톱처럼 살짝 솥아 오르는 일출이 섹시하기까지 하고 확연하지는 않지만 운해가 엷게 끼여 전망이 환상적이다. 어디에서나 느끼지만 땀흘려 오르는 능선이에서 맞는 고마운 바람은 속까지 씨--원해지는데 아직은 새벽이라 약간 한기를 느끼게 한다.

06:50 마치 고남산이나 봉화산에서 처럼 장수 덕유산도 웅장한 자태를 멀리서부터 보여주고는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한 구비 또한 구비를 서너 번 치른 후에야 오늘의 상상봉 장수덕유산(서봉 1,510)에 도착했다.

<장수덕유산, 서봉>

앞으로 쌍둥이처럼 남덕유산(1,507)이 버티고 있고 이제까지 지나온 할미봉 능선이 저만치 아래로 보인다. 1,500이 높기는 높은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덕유산 자락이 조망되고 장수, 무주, 거창쪽의 산과 계곡들이 뚜렷하게 잡힌다. 언제나 처럼 윤대장님한테 받아 마신 막걸리가 그야말로 꿀맛이다. 전체적인 일정이 다른 때 보다 수월하고 후미가 바로 뒤에 따라오는 관계로 다같이 진행하자며 이대장님이 선두를 출발시키지 않는 바람에 25분이나 쉬면서 주변을 볼 수 있었다 멀리 용추계곡과 안성도 보이고 앞으로 가야하는 삿갓봉 능선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07:15 한참을 쉬었더니 이제 온몸에 힘이 생기고 제일 힘든 봉우리를 했으니 이제부터는 이보다야 더 힘들겠냐 싶은게 마음까지 안정된다. 서봉의 내리막길은 철계단으로 시작된다. 쓸데없이 내려오며 헤아려보니 137개.. 평소에는 이런 짓 잘 안 했는데 그래도 몇 자 적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해봤다. 남덕유산은 대간길에서 비켜나 있어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도 올라가기로 하고 갈림길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놓고 스틱만 치고 가는데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남덕유산 정상>

07:52 남덕유산 도착.. 앞에 보이는 팻말은 국립공원 지역에서 조난이나 그밖의 비상시에 구조대나 관리사무소에서 현재의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일정구간마다 구간 식별 번호를 부여해서 설치해 놓았는데 이제까지의 산행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 육십령에서 덕유산으로 들어오면서 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08:30 남덕유산에서 완만히 내려가는 대간은 황점으로 떨어지는 바랑골과 장수 양악송어양식장으로 떨어지는 토옥동 계곡을 잇는 월성치(1,240)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삿갓골재와 황점은 삼각형으로 어느 곳으로도 황점으로 하산이 가능하다. 이제부터는 오늘의 마지막 이벤트 삿갓봉.... 삿갓봉은 멀리서 보면 정말 삿갓처럼 원뿔모양의 봉우리인데 중간에 전망대 바위 능선을 오르면서 바로 눈앞에 삿갓봉이 잡히듯이 보이길레 수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삿갓을 오르면 그 뒤로 또 삿갓이 있고 그 뒤에 또 이러기를 서너번, 왠 삿갓이 이렇게 많은 거야? 투덜투덜

09:20 드디어 진짜 삿갓으로 오르는 삼거리다. 슬쩍 올려보니 숨이 탁 막힐 정도로 경사가 대단하고 6시간정도 걸은 상태에서 더구나 마음을 흔드는 유혹은 우회도로가 있다는 거다. 갈등.. 먼저 가신 김과장님과 이선생님은 안보이고 병건이가 전에 삿갓봉을 올라간 적이 있다며 우회한단다. 나는 어떻든 올라가야 할텐데... 에이 씨... 하며 혼자 오르기 시작하니 의리의 친구가 같이 가 줄까! 하며 따라붙는다. 고맙다!!! 10분정도 오르는데 10시간은 가는 분위기다 삿갓봉 정상(1,418)에는 산악회 일행이 여럿 올라와 있고 일부는 우회도로로 지나쳤다가 삿갓재쪽 방향에서 되집어 올라오기도 한다.

10:00 대간길 능선이에 1999년 6월에 개장했다는 삿갓재휴게소 도착. 모던한 모습이 이쁘장하게 지어졌다. 먼저오신 과장님이 왜 이렇게 늦었냐며? 의아해 하시면서... 순간 스치는 불길한 예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신은 지금 나를 기다리며 삿갓재를 우회한 것을 후회하고 계셨는데 우리는 삿갓봉을 하고 왔으니... 다음 기회에 삿갓봉하기 전까지는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거 같다.

<삿갓재 휴게소에서 ...>


삿갓골재(1,280) 바로 아래는 깃대봉 아래 장수샘 처럼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더 시원하고 좋은 것 같다. 이제부터는 대간을 벗어나 하산인데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고 좋은 건 당연지사... 하지만 작년 수해의 흔적이 계곡 곳곳마다 상처로 남아있어 아쉬웠다. 하산하면서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건 1시간이 넘게 이 길로 하산한 후 다음 산행에는 이 길을 올라와야 삿갓재부터 대간이 이어지는데 대간길 가는 거 보다 황점에서 올라오기가 더 죽을 맛일 거 갔다며 미리 겁부터 먹어본다. 그래도 계곡에 배낭 벗어놓고 땀흘린 얼굴에 세수도 하고 머리수건도 빨고 나니 정신도 개운해지고 좋다.

내려올수록 계곡은 깊어지고 설악산 비선대에서 와선대로 이르는 큰바위 계곡처럼 넓은 소가 깊이를 알 수 없을 거 같다. 내려오는 1시간 하산길도 수월하지는 않는데.. 이제나 저제나 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내려오는 차에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다 왔다는 느낌이 들고 11시10분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황점에 도착했다. 버스도 보이고 막걸리집도 보이고 안도하는 마음이다. 참고로 지난번 중재에서 하산하여 중기마을에서는 얼마나 오지인지 가게도 하나 없어 후발대가 도착하는 두시간 동안 차에서 쫄쫄 굶은 괴로운 기억이 있어 이제는 하산하면 마을에 가게가 있나 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