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구간(사치재-중재/고남산, 월경산)

마운차이 2005. 7. 22. 13:04

일시 : 2003. 4. 19 04:00∼11:00(7시간)
산행구간 : 사치재-697봉-시리봉-복성이재-봉화산(920)-광대체-월경산(980)-중재
날씨 : 전 구간 비

금요일부터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속으로 이렇게 기쁠수가 없다. 오늘 비가 내리면 요번 대간산행은 물오른 새잎들과 만개한 철쭉의 대장관이 되리라, 물론 봄비는 몇 일간 계속되지 않고 그치니 산행일은 화창한 봄날을 기대하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너무 나갔나?
금요일 저녁에 그친 비가 토요일 오후부터 실실 다시 내리기 시작하더니 산행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주룩주룩 내리는 게 이건 봄비가 아니다. 어제부터 이틀간 내리고 있으니 아침 산행시간에는 개어 있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와 함께 평소에 겉에다 입고 다니는 등산용 쉐타는 비에 젖으면 차에서 곤란하니까 얇은 쿨맥스 티 하나 입고 약속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약속 시간보다 약간 미리 나와 한 시간을 빗속에서 차 기다리며 떨었더니, 몸이 으실으실 하고 컨디션도 최악인데, 그래도 버스에 오르니 대원 거의가 고스란히 보이는 게, 이 비에도 각자 대간의 완주를 다짐하는 것 같아 나도 새삼스레 맘을 다잡아 본다.

04:00 오늘의 출발지인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 옆 사치재, 혹시나 비가 그칠까 하는 바램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우비에 배낭커버를 씌우고 우중산행 준비를 잠깐 한 후 차에서 내리니 비가 온몸으로 쏟아지고 처음부터 697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능선은 이제는 뒤는 없고 앞으로 전진만이 있을 따름이다. 697봉에 이르는 길은 두 번의 산불로, 온통 검은 나무등걸을 이리 저리 피해 가는 형국인데... 일부지역에서는 아직도 매케한 탄 냄새가 코를 찌르는게, 두 번째 난 불이 95년이라 하는데 한번 불이 나면 10여 년이 다 가도록 이렇게 냄새까지 상처가 남는 건지, 아니면 2주전에 저녁뉴스에 사치재에 불이 났었다고 했었는데 이곳이 또 불이 났다면 벌써 세 번째로 이곳이 대간의 불을 다스리는 곳인가?


비가 오는 캄캄한 길을 한 시간 정도 진행하니 697봉이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빗속에서도 보이고 남원의 불빛도 보인다. 길이 능선에서 갑자기 떨어질 때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비상경계령이 뒤로 전달되며 앞에서는 어쿠하는 비명이 줄을 잇는다. 3일째 내리는 비로 철쭉 능선이 내리막 길이 완전히 미끄러운 죽탕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저렇게 미끄러운 길에 넘어지면 순간적인 충격에 허리가 다칠까 무섭고, 낼 아침 온몸이 쑤실텐데 하면서 나도 주저주저 조심한다. 그래도 어느 대원을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다. 오 마이 갓!! 겨우 내려온 길에 우마차 길이 나오면서 새맥이재 인가 보다. 겁먹고 조심조심 주춤거리다 앞뒤로 일행과 완전히 떨어져 혼자 겨우 길을 헤메고 있는데... 대간을 하면서 많은 묘지를 보게된다.

나보다 먼저 대간을 하고 있는 학교 동기 병건이의 말에 의하면 대간하다 묘지를 만나면 정중하게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잘해야 무사히 대간을 마무리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길 있는 대로 큰길로 나있는 우마차 길을 따라 몇 걸음 진행하다가 앞에서 일진광풍(?)이 나에게 불어닥치니 무심결에 얼굴을 뒤로 돌렸는데 아뿔사!! 대간 표식기가 왼편 소나무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 아닌가, 아! 귀신들이 나를 돕고있구나 하면서 뒤에 사람이 올 때까지 서 있다가 불을 비춰주고 오는데.. (너무 무협지 쓰나?) 귀신의 도움까지 등에 지니 겁날게 없다. 그 담 부턴 묘지만 보이면 얼른 인사를 하는데... 묘지..정말 많다. 새맥이제에서 사리봉까지는 급격한 경사로 관목 숲에서 벗어나 소나무 숲길을 걸어가니 훨씬 걸음이 편하다.

나중에 일행을 다시 만나 혼자 지나온 얘기를 했더니 다들 웃었는데 마침 30분정도 떨어진 후발대에서 새맥이제에서 길을 못 찾고 더 지나, 비닐 하우스까지 진행했다고 다급한 무전이 날아왔다. 저런! 평소에 묘에 인사를 잘 안 했나! 앞으로는 인사 잘하라고 얘기 좀 해줘야 하겠다. 이제까지는 장난이다. 시리봉부터는 철쭉에 싸리나무까지 가세하고 옷이며 손이며 마구 잡아당기는데 스틱을 치고 갈 자리조차 없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 오는 게 금방 날이 샐 모양이다. 그래도 이제 날이 새니 훨 나은 거 같지만 사방이 온통 가스라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하얀 세상이다. 이런 비를 는개라고 했나? 안개가 모여 가는 비가 되니 분위기는 좋은데 안경이 물이며 입김으로 도저히 쓸 수가 없어 차라리 벗어버렸다.

06:10 아막산성, 백제와 신라가 쟁탈전을 벌였다는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옛날에는 이곳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던 군사적인 교두보였던 모양인데...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봉화산까지 중에서 거의 800고지 제일 높은 곳으로 주변의 경관이 좋다. 내려오면서 보니 쌓아올린 석축의 모습이 확연히 들어 난다.

06:30 복성이재, 함양으로 가는 경계의 아영땅과 장수의 번암땅을 연결하는 고개로 자세히는 얼마간의 간격으로 세 개의 고개가 장수쪽으로 모여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영쪽 성리마을이 흥보의 고향이라는데 나는 그저 걷기에 바빠 문안도 못 드린다. 그래도 제비가 박씨는 나한테 주라고 기원해 본다. 하산하면 로토복권 이나 한 장 살까!!! 비가 오는 관계로 배낭 커버에 배낭 열면 물에 젖을까봐 2시간 30분을 걸어 참고 왔드니 허기가 지고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배낭을 열고 떡에 초골렛을 나누어 먹었다. 이제 다시 산을 오르는데 왼쪽으로 10여분 이상 대규모의 목장이 철조망을 치고 길을 나누는데 그래도 오르막길에 소나무 숲길이라 진행이 수월하고 걸을 만 하다. 한참을 진행하니 어디에서 컹컹하며 큰 개 짓는 소리가 나는 게 치재 마을이 나온다. 이곳까지 오면서 서울에서는 철쭉이 만개하기 시작 해, 너무 기대하는 바가 많았는데 내가 너무 건방을 떤 나머지 철쭉은 아직 하나도 피지 않았고 이제 꽃봉오리가 막 피려는 시점이라 그것에나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눈오는 날이나 새벽 서리가 많은 날 설화가 기가 막히듯 꽃이 막 피려는 가지마다 물방울이 맺힌 게 그 또한 장관인데 그걸 수화라 불러야 하나, 그냥 물꽃이라 해야 하나?

<물꽃>


철쭉과 싸리나무 군락을 지나고 이제는 거대한 억새밭이 나온다. 갑자기 길을 가는 대원들이 좌우로 들어갔다 나오곤 하는데 안경을 벗은 나로서는 눈에 뵈는 게 없는데, 드릅이다. 이제 막 피어 나오는 애기 손바닥만하게 먹을 만치 피어 난 드릅을 따느라 연신 바쁘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드릅 찾고 빠른 걸음으로 따오는데는 김과장님이 대표선수, 그 덕에 뒤따라 가면서도 여러 개 얻어먹을 수 있었는데... 짙은 향이 기가 막히는데 데치지 않아 좀 센 거 같다, 초장도 그립고...

08:10 드디어 봉화산(920) 한 10분전에 오른 봉우리가 봉화산인 줄 잘못 알고 실망하며 다시 걸은 10분은 완전히 고문 같았다. 뿌연 가스 틈에서도 이헌모 선생님이 카메라를 꺼내고 대간 표시와 봉화산정상 표시비를 배경으로 한 장 찰칵..

 

그리곤 이어지는 정상파티, 회장님이 막걸리 두 병을 꺼내시고 정산주를 권하는데 두말없이 한잔 받아먹고 기분 띵호와. 이제 오늘의 최고봉 월경산을 향하여 출발. 억새 밭을 지나 이제는 산죽이 능선으로 이어지며 왼발은 전라도, 오른발은 경상도를 넘나든다. 내게 내린 이 비도 왼발로 흐르는 비는 전라도 섬진강으로 오른발에 내리는 비는 경상도 낙동강으로 흐르리라..

 

이제까지 스틱이 푹푹 들어가는 진흙길에서 챙 챙 소리가 나는 바위길이 시작이다. 그것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 함양 백전쪽에는 천길 바위 낭떠러지가 무섭다. 봉화산에서 944봉까지 얌전하게 가던 길이 혹시 이대로 만만하게 월경산까지 오르면 너무도 고맙겠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상상을 한 게 죄였다 그때부터 바위길이 심한 경사로 광대치까지 떨어지며 월경산까지의 막바지 피치가 만만치 않을 걸 미리 말해주는 것 같다. 이제 길은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등 활엽수 단지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작년에 떨어진 붉은 낙엽들이 사방을 덮고 있어 주변이 온통 붉은 색이다. 갑자기 앞쪽에 희미하게 말 그대로 산더미 만한 월경산의 실루엣이 가스 속에서 나타난다 이제부터 150을 치고 올라야 하는데 김과장님이 뒤로 빠지며 자꾸 늦어진다. 금요일 야유회의 후유증이 나타나나 부다. 나도 죽겠다! 같이 가시겠다는 이 선생님을 몇 번의 사양으로 보내드리고 이제는 발 밑만 보고 걷는다.

10:30 월경산(980)정상에는 올라온 수고에 비한다면 이렇다 할 표시석이 없다. 다 온 것 같으면 앞에 또 하나가 있고 거기에 가보면 또 그저 그렇다 마지막 힘을 다해 내리막을 내려오는데 그래도 빗 길에 새 신발이기에 별탈 없을 줄 알았는데 서서히 내리막길에 발 앞쪽이 닿는 게 발가락에 피멍이 들었나 보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중재가 보이고 지도의 표시대로 눈앞에 커다란 산사태 지역이 뽀얀 우유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급경사에 소나무가 있는 마사토 지형이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 같다.

11:00 드디어 중재... 산악회 안내문에 7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최악의 우중산행에도 산악회가 예상한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다. 그런데 어라! 중재의 안내 이정표에는 중치라고 되어있다. 그게 그건가 의아해 하는데 발 밑에 중기마을 쪽으로 누가 땅바닥에 화살표를 해놓았다. 너무나 힘들었고 비속에 가기 싫은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멀리 중기마을이 보이는 계곡에 작년 수해의 상처인지 계곡이 완전히 파여 있고 커다란 돌로 수로를 다시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 작년 수해의 상처가 남아있다니....


아! 우리 버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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