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1구간(주촌-사치재/고남산)

마운차이 2005. 7. 22. 13:03

일시 : 2003. 4. 6 04:00∼11:15(7시간15분)
산행구간 : 주촌(가재마을,500)-수정봉(804)-입망치-여원재-고남산(846)- 유치재-매요마을-사치재
날씨 : 청명하게 맑음

오랜 기간 맘을 먹고 별러오던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날이다. 10시30분 양재를 출발하기로 한 산악회 버스가 30분 정도 늦게 도착해서 백현정류장에서 나를 태우고, 신갈정류장에서 김영동과장님을 태우고 지리산으로 향한다. 새벽 2시 덕유산 휴게소에서 잠시 아침을 먹으라는데. 이제 막 잠에 빠진터라 그냥 내처 자기로 하고 있는데 그래도 여러 사람이 식사를 하는지 차에서 내려갔다 온다. 옆에 김과장님도 그냥 자고 만다.

04:00 오늘의 출발지인 주촌 가재마을, 원래는 지리산에서 시작해야 맞으나 5월까지 지리산이 산불 때문에 입산금지 기간이라 우선 여기서부터 시작하고 7월에 지리산은 보충수업으로 잇는다고 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학교 다닐 때 지리산 종주를 한 터라 혹시 지리산을 못하더라도 성삼재에서 이곳까지만 이으면 대간을 빠지지 않고 한 게 되니까 별 문제가 없다.
옛날의 산행은 혼자 조난이 되더라도 생존이 가능하게 버너에 코펠까지 다 챙겨야 했는데, 지금은 일체 산에서 불을 피우지 못하고, 또 여러명의 늘보산악회 대장님들이 등산로를 챙겨주시고 차에 오르자마자 오늘 산행의 지도와 개요도 및 고도표까지 개인별로 주시니, 버너와 코펠은 물론 표준전과 크기만 한 대간 지도책까지 모두 차에다 두고 가니 배낭에는 먹을 것과 우의와 바람막이 옷만 있어 홀쪽하니 무게도 줄고 좋다.
처음 출발은 30여명의 일행이 깜깜한 밤에 헤드랜턴으로 불을 밝히고 지금은 힘도 펄펄 남으니 자못 보부도 당당하다. 하늘에는 우리나라에도 별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은하가 춤을 추는데 정확하게 정면으로 북두칠성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마을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어른 두사람은 양팔로 에우러야 할 정도로 큰 소나무가 네 그루나 연이어 있는데 이제부터가 백두대간 시작이다. 배낭에서 이것 저것 빼느라 일행 중 제일 마지막으로 출발해서 앞사람들이 일으키고 간 발 밑의 뽀얀 먼지가 해드랜턴의 불빛을 받아 춤을 춘다. 처음부터 경사가 제법 있는데 표고 500의 가재마을에서 804의 수정봉으로 오르는 길목이라 만만치가 않다. 한 20분 올랐을까 여자분들이 한 분 한 분 뒤로 물러나 숨을 고르고, 초행이라 랜턴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아저씨 두 분을 과장님이 앞을 서고 내가 뒤에서 비추고 같이 산행을 한다.

05:00 수정봉을 넘어 능선길로 접어드니 숨도 편해지고 본격적으로 대간을 밟고 있다는 감격이 밀려온다. 좌로는 남원 우로는 운봉의 마을 불빛이 영롱하게 아름다운데 남원쪽에 한 곳은 오와 열이 나란한 한 무리의 불빛이 무언가 궁금했는데 나중에 날이 새고 보니 아파트의 불빛이 그렇게 보였나 보다.

05:30 입망치 부근에서 첫 번째 휴식시간, 아침을 안먹고 한시간 넘게 해발 300정도 올라쳤더니 허기가 지는데, 허겁지겁 떡과 초콜렛을 먹으니 이제야 살 것 같다. 비교적 순조로운 구간을 지나 갑자기 길이 환해지면서 이제는 헤드랜턴을 벗어도 될 것 같다. 우측으로 보이는 논들이 황산벌이라는데. 신라 백제의 마지막 전투와 계백장군의 넋이 어린 곳으로, 그 위로 붉은 일출이 장엄하게 솟아 오른다.

<지리산과 황산벌의 일출>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감사하고 우리 대간산행 내내 계속 이렇게 좋은 날씨를 기원해 본다.
휴식 후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장교마을에서 다시 휴식을 한다. 대간길이 남원 함양간 국도와 만나면서 좌측으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표식기가 보이고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여대장님이 서서 계신다. 아마 길을 놓치기 쉬운 곳인 모양이다.

06:00 여원재 출발 후 잠시동안은 남의 밭으로 대간 길이 나 있는데 부지런한 농부가 벌써 밭을 갈아 한 이랑씩 비닐을 덮어놓았고 무슨 씨를 뿌려 놓은 듯 한데 대간의 정기를 받은 농산물이니 수확을 하면 더 실할 것 같다. 참고로 대간길에는 논두렁 정기와는 비교가 안될 대간의 정기를 받고자 하는 자손들의 바램으로 틈틈히 마루금이 수많은 묘지로 도배되다 시피 했는데, 어느 곳은 아주 깊은 산중 소로에도 마루금에 정확히 묘지가 들어서 있는데 길이 없는 곳이라 묘지 일부를 밟고 가야 하는 미안함이 드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후세의 발복을 기원했지만 이곳이 역사적으로 빨치산 이후 수많은 젊은이가 좌우의 대립으로 죽어간 곳이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이제부터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고남산(846) 대간 좌우로 아름드리 우리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있고, 우리 연구원의 등산로는 낙엽으로 된 비단길이라 불렀는데, 이곳은 솔잎이 쌓여 만들어진 비단 카페트길이다. 여원재가 450이니 846까지 오르는 길은 만만치가 않다. 몇번 쉬어가고 싶어도 앞에 김과장님이 계속 가는 바람에 말도 못 부친다. 일반 산행은 힘들여 오르다 내려오면 대개 끝이지만 대간 산행은 크고 작은 봉우리를 계속 오르내리다 보니 더 힘이 드는 듯 하다. 더구나 지난 여름 12시간의 우중산행 이후로 가죽으로된 신발이 마르면서 작아졌는지 전혀 옛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오른쪽 발가락이 계속 쓸린다. 활처럼 휘어진 대간길을 따라 넓은 황산벌이 이어져있고 멀리 지리산까지 이어진 대간 능선이 꼬리를 무는데,

08:40고남산 정상은 한국통신의 초대형 중계탑이 분위기를 반쯤 베려 놓았는데. 그래도 지리산과 이어진 정령치 등 대간을 조망하기엔 최상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에는 대단한 체력을 가지신 부부분이 좋은 안주와 함께 고량주로 정상주를 권하는데 너무 고마운 나머지 사양도 없이 꿀꺽 받아 마시니 독한 술이 싸--하며 속이 씨-원해지는 느낌이었다(감사합니다.) 하산길은 통신중계소와 이어진 콘크리트 포장길로 내려가다가 한굽이 돌아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서 콘크리트 길을 버리고 표식기를 따라 왼쪽으로 접어들어가야 하는데 무심히 지나치기가 쉬울 것 같다. 다행히 우리는 회장님이 산악회 팻말을 바닥에 표시하는 중이라 쉽게 길을 찾았다. 하산각도가 만만치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정상부터 계속 20분정도 내리막길에 발가락이 쓸리니 도저히 걸을 수 가 없어 과장님을 세우고 신발을 벗으니 물집이 터져 말이 아니다. 일회용 밴드로 싸매는 간단한 수술을 마취도 없이 스스로 집도하고 있는데 먼저 출발하신 양정학교 이헌모선생님이 내려오시는데 아까 콘크리트 포장길에서 대간길을 놓치고 계속 가셨다가 뒤로 다시 오시느라 늦으셨단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 걷는 모습에 힘이 넘친다.
다시 걸으니 한결 수월한 게 다음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싸매 놔야 하겠다. 내리막은 철쭉으로 보이는 이제 막 잎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칠은 잡목이 계속해서 길을 막고 있는데 만약 잎이 무성할 때라면 훨씬 전진이 어려울 것 같고, 이슬이 있는 새벽길이라면 아마 흠뻑 젖어버릴 것 같은 길이다. 앞서가는 과장님은 나무가지에 다른 일행들이 눈을 다칠지 모른다며 산행 내내 일일이 가지를 잘라내고 있다. 드디어 도착한 곳이 매요마을, 낡은 폐교(운성초등학교)가 이곳의 현실을 말해주는 듯하고 마을 한가운데로 대간길이 이어지고, 마을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할머니네 집에서 시골김치와 막걸리 한잔이 꿀맛 같은데, 팔 걷어 부치고 세수를 하니 정신도 나고 시원도 한데 연거푸 마신 막걸리 몇 잔에 오늘 일정을 다한 줄 알았는데 아뿔사!! 앞으로도 618봉을 지나 한시간 정도 더 가 사치재까지 가야 한다니 발이 풀린다.

10:00 마을까지 내려온 뒤끝이라 618봉도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데 계속되는 소나무숲 길의 일부는 우리 솔이 아니고 죽죽뻗은 조림한 리끼다소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2엽인지 3엽인지 볼라다 힘들어 그냥 지나쳤다. 심은 이후로는 관리가 안되고 있는지 촘촘한게 일부 간벌의 시기를 놓진 것 같고 우리 솔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게 그만이었다. 드디어 88고속도로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급하게 떨어지는 대간길 사이로 고속도로와 우리 버스가 보인다. 이제 다 왔구나!! 현재시간 11시15분, 산악회에서 준 등산 안내서에 7시간 20분 걸린다고 했는데, 평균보다 5분 단축했고 매요마을 할머니 댁에서 막걸리 먹으며 30분 정도 놀았으니 아마 전체 일행보다는 조금 빨리 움직인 것 같다. 첫 산행이라 산악회에서 준비해준 막걸리로 출산주를 마치고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는 비몽사몽 꿈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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