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13구간(은티마을-이화령/백화산)

마운차이 2005. 7. 22. 13:28

일시 : 2003. 10. 5 03:10∼11:45(16.5Km, 8시간35분)
산행구간 : 은티마을-희양산성-배너미평전-이만봉(990)-평전치-백화산(1,063)-황악산(710)-조봉-이화령(548)
날씨 : 환상 2

봄과 여름내 하루걸러 뿌리던 비와 궂은 날씨를 묵묵히 이겨낸 보답이라도 하는 듯이 청명한 가을하늘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어제는 개천절 휴일로 분당 탄천변 자전거 전용도로가 한강 고수부지와 연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집사람의 제의로 아들 정우와 함께 집에서 출발해서 탄천과 한강이 합수되는 올림픽 스타디움 아래 청담교 부근까지 왕복 50Km를 4시간 정도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거의 대간 1구간의 진행과 비슷한 피로도가 느껴지는 게 상당한 운동량인데... 덕분에 엉덩이뼈가 아파 어디 앉는 게 거북스럽고, 안 쓰던 근육이 사용되어서 인지 온몸 여기 저기가 뻐근한데.. 대간하러 출발하는 마음 또한 부담스럽다. 불룩한 반달이 엷은 구름에 가려 뿌여케 비추는 게 내 마음과 닮았다. 여느 때와 같이, 같은 시간에 출발하는 매주 낚시하는 어르신과 버스를 기다리는데.. 먼저 오는 우리 버스가 예전의 버스가 아니고... 뒷자리를 둥그렇게 해놓고 의자에 회의 테이블도 있고 우- 와, 좋은데... 그래도 버스가 바뀌니 잠자리가 바뀌어 그런지 충주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눈만 감았지 도무지 잠에 빠질 수가 없다. 잠을 못 자면 산행하다 고생하는데.. 억지로 잠을 청해 다행히도 눈 좀 붙였더니 이번엔 은티마을에 도착해서 잠에서 깨나기가 힘들다.

03:10 출발이다. 하늘 가득 별이 춤춘다. 서울을 출발할 때는 엷은 구름에 달이 가리웠는데... 이곳은 티 하나 없이 맑은 밤이다. 멀리 오늘의 목적지 이화령 방향으로 별똥별이 꼬리를 사른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해 산행하다 벗더라도 파카를 입었다. 은티마을은 충북 영동의 물한리처럼 악휘봉, 구왕봉, 희양산 등을 에우르는 깃점이 되는 곳이라 초입에서 길을 잘못 잡으면 영 다른 산으로 올라가기 쉬운 길이라 조심스럽다. 마을 구판장에서는 시루봉으로 해서 이화령으로 가는 다른 대간팀들이 우리 팀에게 길을 비켜주며 박수로 서로간의 무사 산행을 기원한다. 결국 봉암사의 훼방으로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등산은 포기하기로 했다. 올 초에 이 구간을 했던 병건이 팀이나. 홍식이 팀이나 스님들의 허락을 받아 이 구간을 했다고 했는데... 그간 더욱 통제가 심해지고 30명이 넘는 대군이 이동하다 보니 지름티재에서 희양산 암벽구간은 포기하고 그간 겨울 등산루트로 활용하던 학바위골에서 희양산성으로 가로지르는 길을 이용한다. 덕분에 언제고 지름티재에서 희양산을 해야하는 숙제를 남기게 되었다.

04:40 희양산성. 깎아지르는 암벽을 우회하는 구간이라 성터로 이르는 길은 일부 바위 길에 너덜지대이며 일부는 산죽이 무성하고 경사도 가파르고 길도 험하다. 희양산성은 한때 이곳이 고구려에 대항하는 신라의 최전방이었으며 아직도 쌓아올린 석축의 흔적을 볼 수 있었는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우리 일행이 전부 올라앉으니 꽉 차는 듯 싶었고 여기도 봉암사쪽으로의 진행을 막는 목책 울타리가 쳐져 더욱 좁아 보였다. 이제 다시 대간길이 시작이다. 능선에 오르니 은티마을의 불빛이 아름답게 보인다. 날이 어두워 사방이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일행이 지나가는 시루봉 앞에서 오늘의 목적지 이화령까지는 직선 거리로는 4키로 정도에 불과하나 심술궂은 대간 길은 백화산까지 깊숙이 U턴해서 서너배의 길을 돌아야 하게 만들어 놓았다.

배너미평전.. 안부의 소나무 숲속 솔잎이 쌓인 곳에 텐트 2동이 있고 그 사이에 한사람이 비박을 하고 있다. 한참 곤하게 자고 있는 터라 우리 일행도 조용히 통과... 6시가 되니 사방이 환해지고 다시 능선에 올라왔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닭우는 소리가 들리는게... 이 심산유곡에 갑자기 닭이라니 어디 민가가 있나?

<이만봉의 일출>

06:35 이만봉(990) 건너편의 이화령 올라가는 구도로가 빤히 보이며 그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만봉에 오르기 직전 구왕봉과 희양산, 이만봉이 정확히 일직선 상에 있어 구왕봉에서 보았던 희양산의 모습을 정 반대에서 새롭게 볼 수 있기에 너무나 멋이 있어 이만봉에 오르면 꼭 사진에 담아야겠다고 했는데... 정작 이만봉에 오르니 사방에 나무가 가려 정작 사진을 찍을 수 가 없다. 좁은 봉우리에 시루봉에서 오른 다른 대간팀이 차지하고 있어 방 빼! 라고 몰아내고 우리가 차지는 했지만 나무로 시야가 가려 일출 사진도 놓치고 희양산 사진도 놓쳤다. 그래도 하산길에 전망대에서 일출 사진을 늦었지만 잡을 수 있었고 약간 부족한 듯 하지만 희양산 사진도 한 컷 잡았다.

<이만봉에서 본 대머리 희양산>

08:05 평전치.. 이만봉에서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안부 봉암사에서 가은으로 이어지는 계곡사이로 누렇게 익은 벼가 좁은 띠를 이루며 푸른 숲과 대조를 이루고 있고 가은읍내가 아담하게 보인다. 능선길을 따라 사방으로 전망이 좋다.

<봉암용곡>

08:30 1,012봉 여느 대간길이나 마찬가지지만 다 오르니 목표로 했던 봉우리가 아니고 그 뒤로 더 높은 봉우리가 나타나면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오늘은 최대장님이 진행이 빨라 이대로 라면 10시에 산행이 끝난다고 엄살을 놓고... 꼭 백화산이라고 생각했던 봉우리가 정상이 아니라 1,012봉에 다리가 풀려 그만 30분이나 놀았다. 지난번 정상주 안 가져 왔다고 나한테 한마디 들었다며 요번에 나 부터 한잔을 주시는데.. 고량주에 족발 크.. 죽인다. 김과장님도 저번 14시간 산행에 되게 당하시고 김밥까지 싸오셨는데... 맛있다.

<지나온 대야산>

09:10 백화산(1,063) 이 구간의 산들이 전반적으로 1,000미터에 가깝지만 그래도 1,000이 넘는 상봉이다. 너무나도 맑은 날씨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이제까지 우리가 왔던 대간길과 돌아서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 넘실대는 너울처럼 봉우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알프스 같은 곳에서는 4,000미터급 봉우리들이 눈길 닿는데 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광경을 파노라마라고 하던데 이곳은 우리 나라에서도 백두대간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환상의 장관이다. 오늘 구간의 U턴의 꼭지점으로 이제 길은 다시 이화령 쪽으로 북서로 틀어 540까지 낮아지니 지루하긴 해도 수월하게 내려가는 구간이다. 백화산의 내리막길은 암릉길로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오른쪽은 간간히 아직 만발하진 않았지만 억새 숲으로.. 길에는 벗어 나 있지만 다 피면 장관이겠다. 억새 숲 사이로 앞서가는 대원님이 더덕을 들고 서있다. 이 분야에는 김과장님이 대표선수... 얼른 이곳 저곳을 뒤지더니 6-7년생 굵은 놈을 포함하여 댓 뿌리를 캐내시는데... 백사장님이 더덕주를 담그셔서 나중에 정상주로 마련해 오신다고 가지고 가셨다. 나도 전에 잣을 담궈 놓은걸 들켜 최대장님에게 압력을 받고 있으니 다음 번 산행에는 가져가야 하겠는데... 이번 산행에도 이선생님이 잣술 한 병을 들고 오시다가 동대문에서 차에 타기도 전에 최대장님한테 먹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먹자고 반 강제로 다 빼앗기셨다니 술 한잔 먹을 라면 이사를 가야 하나! 아니면 분당에서 동대문까지 나가야 하나! 고민이다.

<가야할 대간길/왼쪽 아래 희미한 줄이 이화령 구도로입니다.>


10:05 황학산(710) 백화산을 내려오며 900봉우리도 이름을 얻지 못하고 황학산을 지나 862봉도 이름을 얻지 못했는데... 710짜리가 황학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무에 가려 이렇다 할 전망도 없지만 누군가가 그중 넓은 조그마한 돌에 표시석을 써 놓았다. 능선이 트이면 발아래 제법 너른 들판이 나오고 문경 시내가 보인다. 이제 길은 산길로 치자면 고속도로다. 넓은 길에 벌써 낙엽이 수북히 쌓여 딩굴고 있는데... 산속이라 일찍 추위가 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은 다 떨어지게 생겼는데.. 비가 많았던 해라 단풍으로 뽐내지도 못하고 낙엽으로 져버려 아쉬움이 많다. 조봉을 지나 처음부터 안 빠지고 거의 계속 산행을 해온 7명의 대원이 우연히 한조를 이뤄 산행을 하는데... 누군가가 우리 일행이 '역전의 용사'란다. 내가 제일 앞에서 가고 있는데.. 낙엽에서 부시럭 하는 게 고슴도치 새끼다. 큰 고구마만 한 게 일행이 빙 둘러서니 겁시나 도망도 못 가고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나와 이선생님은 배낭을 벗어 사진 찍기 바쁘고, 이선생님 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나는 뒤에서만 찍고 이선생님이 얼굴까지 이쁘게 찍으셨는데.. 미물이지만 이선생님이 늘보 공식 찍사인 줄 아는 모양이다.

<고슴도치>


내리막이 계속되니 이제 마음이 풀어졌는데... 지난 번 14시간 산행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50키로 자전거 타고 바로 나왔어도 이번 산행은 힘든 줄을 모르고 수월한 것 같다. 거지반 다 온 모양인데... 길 아래로는 이화령 터널이 지나가고 분위기는 육십령 가는 길 같은데. 막바지 681봉이 나타나자 숨이 턱 막히는 게 나도 모르게 뭐--야! 했다가 집에 올때까지 최대장님한테 혼났다. 산에다 신경질 부리지 마라!!

11:45 이화령(548) 경상도 문경과 충청도 괴산을 이어주는 길로 통행량이 많아져 터널로 자리를 내주고 이제는 한적해진 도로다. 묘하게도 오늘 시작은 봉암사가 통행을 막아 우회했고, 도착은 군부대가 길을 막아 얼마 길지는 않지만 돌아가야 했다. 이제까지는 모두 자신들의 중요한 임무와 사유로 대간길이 막히고 통행을 막고 했지만 앞으로는 등산인들도 당당히 우리의 국토를 지키고 가꾸는데 힘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품위 있게 노력해야 하겠다. 오늘의 뒷풀이는 이여사님이 커다란 양주를 한 병 내시고, 어디서 나왔는지 더덕이 담겨진 소주가 여러병 나와 풍성한 자리가 되었다. 특히 이곳 연풍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시면서 이곳의 산을 올라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혼자 타기는 어려워 우리 산악회에 참여하신 전통찻집 '거기'의 사장님이 전대원을 찻집에 초대해서 전통차를 내셨는데... 사모님은 졸지에 봉변을 당하신 상태라 고맙고도 미안하여 전시된 소품중에 목걸이를 사서 집사람에게 선물하였더니 대간 보낸 보람을 물질적으로 받아 감격했는지 칭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