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3. 9. 7 02:50∼12:00(15Km, 9시간10분)
산행구간 :
밤티재-늘재(380)-청화산(984)-갓바위재(769)-조항산(951)-고모치(734)-밀재-용추계곡
날씨 : 전 구간 비
세 주 동안 술먹고 과식하고 더구나 계속되는 비로 점심운동 대신에 잦은 외식으로 체중이 4키로나 불어나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될 지경이다. 두 주만에 다니던 대간이 5주가 있는 달은 세 주만에 가게되니 몸의 컨디션이 무너지고.. 두 주에 한번씩은 몸과 마음의 정비를 산에서 해와야 하는데...한 주의 지연으로 몸이 약간의 이상까지 느끼는 게 이제 본격적인 대간병이 단-디이 들었나 보다. 이제 대간은 전라도 경상도 및 충청도의 분기점에서 일단 접어두고 겨울철에 도저히 일반인들에게는 힘든 암릉 구간인 속리산에서 죽령까지를 먼저 하고 비교적 육산인 삼도봉에서 밤티재 구간은 겨울에 이어가기로 했으므로 오늘은 속리산의 아래 부분인 밤티재로 향한다. 8주 동안의 주말 비로 성삼재에서 벽소령, 덕산재에서 삼도봉 등 그동안 비 구경을 실컷 했지만 주말뿐이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의 피해로 따진다면 어디 우리야 피해랄 것도 없다. 비 예보는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제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새벽 두 시가 안돼 속리산에 들어서니. 한 두 방울 비가 뿌리는 데... 오--노! 야속하다. 비!! 밤티재에 도착한 버스가 마땅히 서있을 자리도 없고 아직 산행하기 이른 시간이라 아랫늘티의 잠들은 주유소 앞에서 같이 자다가 산행준비를 마치고 다시 밤티재에 올라 산행을 시작하러 차에서 내리는데... 그냥 내리는 비가 아니다. 험난할 오늘 하루를 예견하는 본격적인 비가 내린다. 다시 판초 꺼내고 아! 산행할 때 비 싫은데...
02:50 전라도와 경상도의 수천년 해묵은 애증이 얽히고 설킨 것과 같이... 잡목과 산죽, 싸리로 뒤엉킨 이제까지의 길과는 달리 양반 고을 충청도의 길은 젊잖다. 하지만 두루 뭉실한 남도의 길과는 달리 군데 둔데 암릉이 도사리는 위험도 포함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오늘의 길은 밤티재에서 청화산까지는 충청도를 건너 뛰어 경상북도 상주땅이고 청화산에서 대야산까지는 충청북도 괴산땅과 경상북도 문경땅을 경계로 가르고 대야산에서 다음 구간인 장성봉 아래 막장봉까지는 다시 문경 가은땅을 가다가 그 후로는 다시 충북과 경북의 경계로 길이 나 있다.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머리에서 푸른빛이 나는 시커먼 도깨비들이 한 줄로 이어서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고 있다. 좌우로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고 길도 솔잎이 수북히 쌓인 마사토 길이다. 첫 번째 관문은 겨우 한사람이 거의 멍멍이 버전으로 기어야 통과할 수 있는 바위인데.. 이 길을 반대로 선행했던 친구의 이야기로는 뒷사람이 기어서 무사히 통과하면 앞사람이 순산이오! 하고 외친다고 해서 산파바위라고 한다나! 바위 구멍의 크기로 보아 뚱뚱하면 등산도 못한다. 이제까지 10구간하고 전라도까지 마친 우리 일행이 충청도를 들어서는 통과의례로 바짝 기어가게 시키는 모양이다. 때마침 가까이에 민가나 농장이 있는 지 강아지들이 컹컹 짖어대는데.. 기분이 묘했다. 696봉에 올라서니 비오는 가운데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게 밝은 날이었으면 전망이 좋을 자리였을 텐데... 아쉽다. 멀리 우측으로 늘티마을과 좌측으로 송학골의 불빛이 아스라히 빛난다.
<늘재의 분수령입니다>
04:10 늘재(380) 상주 화북에서 괴산 송면으로 이어지는 992번 지방도로의 정상으로 괴산쪽으로 그 유명한 화양구곡으로 떨어지는 화양천이 이어지고 정상에는 한강과 낙동강의 물이 발원하는 곳이란 표시가 있다. 기분에 충청도로 가니 금강으로 가지 싶은데 한강으로 간다니 의아스럽다. 도 경계도 대간길이 경계를 나누는 게 일반적인데... 문장대에서 청화산까지의 길은 깊숙하게 경북 상주시가 대간을 넘어 충청도까지 들어와 있다. 늘재에서 청화산 구간은 380에서 984까지 600미터를 매끈하게 올라만 간다. 주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길이라 내일이 백로이니 지금이 딱 송이가 나올 철인데... 산악회 일행이 없다면 차분하게 뒤지면 몇 송이 딸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지금은 그것 생각할 때가 아니다. 비는 세차게 내려도 발 밑에 잡목에서 젖는 게 없어 아직 신발은 멀쩡하다. 비오는 날이라고 날이 새는 데도.. 새가 한 마리도 울지 않는다. 섭섭하게 시리...
05:30 청화산(984) 숨이 턱에 닿도록 오르던 길이 헬기장과 만나며 청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아직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지만 헬기장 보도블럭에 털석 주저앉아 떡으로 아침을 한다. 헬기장에서 조금떨어진 청화산 정상에는 늘재3.5K, 조항산 10.3K 이정표가 어둠속에 우릴 반긴다. 청화산 하산길 이제 비는 사정없이 내리고 길도 간간히 암릉이 나오면서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간다 오히려 어둠과 개스로 사방이 안보이니 무서운지 어쩐지도 모르겠다. 6시정도 되니 날이 새면서 조항산 9.5K 이정표가 나온다. 평소에 비옷으로 방수 잠바를 입다가 비가 심할 것 같아 판초우의를 둘러썼는데... 비는 일부 막을 수 있지만 내부의 땀과 열이 발산되지 않아 우리처럼 10시간 정도의 산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땀과 물로 몸에서 냄새만 난다.
07:30 갓바위재. 이제 결단을 내릴 시점이 왔다. 비가 계속 억수같이 내리니 이대장님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대야산을 하더라도 그 유명한 빗길 암릉 내리막에 안전사고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비속의 산행이라 대원들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이니 주력은 조항산을 넘어 밀재까지만 진행하여 문경 가은의 용추계곡으로 하산하고 힘든 대원들은 이곳 갓바위재에서 삼송리 의상저수지쪽으로 탈출키로 하는데... 오늘 처음 나오신 분으로 보이는 세분이 즉시 탈출에 동의하신다. 나도 비속에 계속하는 게 별 매력이 없지만 그래도 전체 대간행렬의 진행상 조항산을 향해서 계속 진행한다.
08:10 조항산(951) 세운지 오래되 보이는 나무 비석에 백두대간이란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야트마한 까만 오석에 조항산 정상석이 새롭게 보인다. 지난 산행시 삼도봉 전에서 김대장님이 발견한 더덕으로 김과장님이 더덕주를 담가와 조항산에서 정상주로 한잔씩 나눠주니 오늘은 맨 후미에서 고생하고 있는 주인공 김대장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나중에 줄 수 있게 반은 남겨 놓고 나머지로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한잔씩 하는데... 더덕향이 향기로운 게 그만이다.
09:00 고모샘. 조항산에서 1.5K 지나온 안부에 고모령이 있다. 에전에 고모치 광산이 있었던 곳으로 대간 마루에서 문경쪽으로 10미터 아래 고모샘이 있는데... 석간수로 물맛이 그만인게... 정신나게 세수도 하고 빈 물병에 가득 담고 뱃속에도 시원하게 담으니 여기 저기서 물이 출렁출렁 한다. 고모샘에서 밀재로 향하면서 집채바위 부근에서 오늘 산행중 유일하게 구름사이로 산 능선이 보인다 암릉 중 평평한 곳을 골라 잠시 사진도 찍고 쉬는데...사진기를 다루시던 이선생님이 잠시 바위에서 미끌어지며 놓치는 바람에 사진기가 바위에 부딪히며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데... 다행이 이선생님이 더 이상 미끌어지지 않아 안전했고...사람이 내려갈 수 있는 곳에 멈추는 바람에 사진기를 주어 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미끄러운 암릉길의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하겠고... 대야산을 다음으로 미루기를 잘한 것 같다. 사진기도 잠시 먹통이었지만 파워를 껐다가 키니 작동을 하는 데... 이래저래 천만 다행이다. 덕분에 찍은 사진은 배경이 그럴듯한데.. 우중산행의 꼴이 말이 아니라 어디 공포의 외인구단 찍으려고 모인 사람들 같았다.
<공포의 외인구단>
11:00 밀재 오늘 대간의 임시 종착지다. 이제 비는 조금 잦아들었지만 바위가 미끄럽고 미리 갓바위재에서 탈출을 한 일행이 있으므로 우리는 오른쪽 가은의 용추계곡으로 하산키로 한다. 밀재에서 좌측으로는 물과 계곡으로 유명한 괴산군 선유동 구곡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용추계곡은 문경팔경의 하나로 계곡이 깊고 물이 맑으며 숨은 비경을 간직하는 계곡으로 우리는 하산중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제 대야산 등산을 위해 오르고 있었는데...많은 사람들이 신발이나 장비가 일반적이고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어 산행내내 안전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윗용추폭포.. 여성의 응응을 닮았다고 합니다>
12:00 용추계곡 주차장.. 처음으로 입고 온 검은 색 바지와 신발에 진흙이 말이 아니다. 서둘러 신발을 벗고 맑은 물속으로 들어가 옷이며 몸이며 닦고 아까 갓바위재에서 탈출한 일행을 데리러간 버스를 기다리며 막걸리 한잔으로 힘들었던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용추 주차장에는 대야산과 용추계곡의 큰 규모를 말해주듯이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온 대형 관광버스가 10여대 주차해 있고 손님들을 부르느라 스피커에서 나오는 유행가가 시끄럽게 들린다. 불가피하게 탈출을 했지만 다음 번에 이곳에서 대야산을 거쳐 은티마을까지 가야할 일이 짐으로 남았다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3구간(은티마을-이화령/백화산) (0) | 2005.07.22 |
---|---|
제12구간(밀재-지름티재/대야산) (0) | 2005.07.22 |
제10구간(덕산재-삼마골재/삼도봉) (0) | 2005.07.22 |
제9구간(중산리-벽소령/천왕봉) (0) | 2005.07.22 |
제8구간(성삼재-벽소령/노고단) (0) | 2005.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