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8구간(성삼재-벽소령/노고단)

마운차이 2005. 7. 22. 13:16

일시 : 2003. 7. 20 04:00∼12:00(15Km, 8시간)
산행구간 : 성삼재(1,060)-노고단산장-노고단(1,507)-임걸령-반야봉삼거리(1,499)-토끼봉(1,533)-연하천(1,462)-삼각고지-벽소령(1,426)
날씨 : 천둥 번개와 폭우 이후 쾌청

드디어 민족의 영산 지리산이다. 백두대간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들머리지만 입산금지에 묶여 이제서야 신고를 하게 된다. 더구나 일주일간의 계획으로 휴가를 내서 지리산이후 겨울산행에 선택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산악회에서 새로 계획해준 충청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의 삼도봉에서 일정이 닿는 대로 자유산행을 하기로 해서 마음은 소풍을 앞둔 초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나 집에서 출발하면서 얼마간 집사람이 없는 관계로 컵 몇 개를 닦아놓고 나오는 데... 하필 제일 아끼는 컵이 손에서 미끌어지며 깨어지고 만다.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일주일간의 장도를 격려하며 친구 병건이가 판교 백현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데... 생각이 많아 고맙단 말도 못했다.

04:00 한달 전 만복대, 고리봉을 하면서 성삼재에 왔었던 터라 이 시간의 성삼재는 이제 낱이 익다. 오늘도 그날처럼 예의 개스가 주변을 꽉 감싸고 있고 제법 세찬 바람까지 불고 있어 한여름의 새벽이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다. 우리 이외에도 다른 산악회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도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듯 다들 배낭카바를 씌우고 비옷을 입는데.. 하늘에서는 마른번개가 치고 간혹 천둥도 울리는 게 아무래도 비가 오겠다.
다들 일렬로 맞춰 산행을 시작하는데... 한치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개스가 심하다. 초입부터 대단위 국립공원이라 돌로 바닥을 깔아 놔 유럽의 마차길처럼 이색적이다. 얼마간을 걷다가 대장님이 우회하는 차도를 버리고 계단으로 된 산길이 시작되는데...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04:35 노고단 산장. 희미한 불빛의 시골역에 기차가 들어오는 것처럼 창문에 불빛이 비치는 노고단 산장 앞에 도착했다. 20여년 전 집사람과 이곳에 머물면서 저녁식사가 늦어져 그 당시에는 해드랜턴도 없어 밥과 국을 섞어 놓고 보이지 않는 식사를 한 후 서울에 오자마자 해드랜턴을 구입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아직도 뿌연 개스속으로 이대장님이 전 대원을 집합시켜 놓고 오늘의 수상한 날씨를 의식한지 어떠한 경우에도 선두를 추월할 수 없으며 비상시 대장의 명령에 절대 따라줄 것을 비장하게 전달하고 두 번에 걸쳐 다들 대답을 복창하게 하고야 출발한다.

04:48 노고단. 지리산 어느 봉, 어느 고개 하나 정겹지 않은 곳이 없지만 천황봉에서 종주를 시작하면 종주를 마감하는 곳이고 성삼재부터 라면 이제 능선에 올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 아침이면 섬진강의 물안개가 지리산 골골이 스며들어와 운해를 이루는 비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성삼재에서 거의 500을 올라왔으니 이제는 봉우리와 안부를 낙타 등처럼 오르 내리는 일만 남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임걸령에서 바라본 구름속에 반야봉>

05:55 임걸령. 노고단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비가 많이 왔다. 천둥과 번개와 함께 세찬 비 줄기가 내린다. 나무가 무성한 곳을 지나가면서 나뭇잎에 비가 가려지는 듯 하니 뒤에 오시는 여자 대원님이 비가 덜 맞는 듯 하다고 하셨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처음에는 도움을 받지만 나중에 비 그친 뒤에 나무를 툭 치면 나뭇잎에 있던 비를 고스란히 다시 맞아야 하니 그게 그거다.
임걸령 샘터... 지리산은 국립공원이라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오늘 가는 길은 그렇게 숨찬 곳이 없고 비속에서 산행중이라 비는 맞아도 시원하지만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야... 1,300이 넘는 산속의 샘터라 물맛이 기가 막히다. 이제 비는 그쳐간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하산길은 급경사로 떨어지며 역사의 현장 피아골 연곡사로 이어진다

06:25 반야봉 삼거리... 지리산 주능선과 천왕봉, 제석봉에 이어 지리산 제3봉인 반야봉(1,732)으로 갈리는 갈림길의 바위 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으려니 뒤따라오시던 이헌모선생님은 반야봉을 하고 오시겠다고 그쪽으로 길을 잡는다. 아무래도 지난번 삿갓봉 안 하시고 우회하신 아쉬움이 많으셨나 보다. 다른 산악회와 번갈아 매주 대간을 하시고, 틈틈이 산행을 하시고 자택 일산에서 목동 학교까지 출퇴근은 자전거로 하시고.. 대단한 체력이다. 삼거리를 지나 주능선은 400개의 계단길로 100여미터를 수직 하강한다. 예전 같으면 계단도 없었을 테고... 전에는 국립공원의 계단도 바닥이 철로 된 철 계단으로 눈과 비길에는 굉장히 위험할 구간이다. 지금도 설악산의 천불동 구간은 철 계단인데.. 이곳은 두툼한 나무를 덧대놓아 감촉이 훨씬 부드럽고... 그 반 정도는 동절기 눈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을 경우 아이젠을 풀지 않고 갈 수 있도록 고무판을 나무판 위에 또 대놓아 편리하게 해놨다. 그래도 나무 발판에는 아에젠으로 긁힌 자국이 너무 많다. 겨울 산행을 해본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텐데... 눈 없는 철계단 길에 귀찮아서 아이젠 차고 걸을 때 나는 소리를 쁘-악..뿌-악.....

<반야봉에서 본 노고단>

06:45 삼도봉(1,490) 이제 비는 개이고, 멀리 노고단이 구름에 쌓여 이제까지 온 길이 환상적인데...다들 배낭을 풀어 간식을 하면서 오늘도 최대장님의 고량주로 정상주를 한 잔 했다. 삼도봉을 상징하는 삼각탑 청동 부조물의 꼭지가 얼마나 만졌는지 색깔이 다르다. 이곳에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나뉜다. 내리막 안부 화개재는 전라도의 물산을 등짐으로 지고 뱀사골을 넘어 경상도의 화개면 화개장터로 가는 길로 조영남씨의 노래로 더 유명하다. 그 노래에는 상징적으로 전상도, 경라도라고 했던가!!! 토끼봉을 거쳐 명선봉으로 이어지는 길에 어머니와 같이 산행 온 가산중학교(?)에 다닌다는 장동희 군과 일행이 되었다. 등치는 소만해도 중학생이면 아직 어린애인데.. 나도 작년 여름에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정우와 설악 대청을 한 기억이 있어 그때를 생각하며 같이 산행을 하는데... 아직 눈에 산이 들어올 나이는 아니지만 묵묵히 어머니와 대화를 하며 산행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했다. 지리산 종주라는 그 나이에 좀 벅찬 듯한 일을 이루어내면 나중에라도 인생에 큰 도움이 되리라...

09:00 연하천산장. 예전부터 지리산 종주인들이 1박을 하던 명소로 산장 옆으로 샘이 있고 몇 일간의 비로 샘 옆으로는 아예 개울이 흐른다. 배낭이고 머리띠고 훌렁훌렁 벗고 시원한 물에 얼굴이고 목이고 씻고 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잠시 앉아서 쉬고 있는데... 윤대장님이 오신다. 그렇지 윤대장님 막걸리 한잔을 해야 공식 산행이라 염치 불구하고 한잔 쭈욱... 이제 날씨는 좋아져 해까지 비친다.

90:30 삼각고지(1,462) 지리산의 능선이 전라북도와 경상북도를 가르며 삼정산으로 떨어지는 삼각지점으로 다시 개스가 차며 시야가 흐려지는데... 어디선가 새소리는 그렇게 이쁘게 들려온다. 고지란 말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는 몰라도 벽소령에 가까워질수록 군인 용어가 나오기 시작되는게 어두웠던 우리의 과거가 설핏 스치는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

10:40 벽소령. 이곳도 지리산 종주인들의 중요한 1박 장소인데... 산장은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새로이 지어져 있다. 덕분에 약간 떨어진 예전의 벽소령은 구벽소령으로 뒤로 물러나 있단다. 지금은 이곳이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지만 우리가 오늘 하산하는 삼정리에서 이곳을 거쳐 빗점골을 지나 의신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길은 지리산 공비토벌을 위한 군사도로로, 좌와 우의 이념을 떠나 불행한 우리의 선배들이 사상의 허울과 지도자들의 아집속에서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독일 뮌헨 인근의 다카우란 곳에 가면 나찌의 수용소를 그대로 보전하여 놓고, 아이들이 역사를 이해를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되는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면 그곳을 보여주고 조상들의 만행과 불행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괴롭지만 지나온 과거를 반성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념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군사도로를 내려오면서 전에 의신에서 세석으로 오르는 길은 좀 황량했는데... 세월의 마술인지 이곳은 터널처럼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이어져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