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3. 9. 21 02:50∼16:10(19Km, 13시간20분)
산행구간 :
용추골-밀재(701)-대야산(930)-촛대재-촛대봉-불란치재-미륵바위-버리미기재-장성봉(915)-은치재-구황봉(877)-지름티재-은티마을
날씨
: 환상
경부고속도로 판교의 백현정류장에서 산악회 버스를 기다릴때면 나이 지긋이 드신 어르신 한 분이 같은 시간에 동료분들과 낚시를 떠나시러 나처럼 버스를 기다리신다. 몇 달 전부터 잠시 스치는 구면인데... 오늘은 어르신이 먼저 말을 걸어오신다. 올해 70으로 당진으로 계속 가시는데... 잡은 고기는 남을 주거나 놓아주거나 하고 오신단다.. 당신은 낚시 광이면서도 여가 중에는 등산이 제일이라며 대간산행을 격려해 주시고 먼저 버스에 오르신다. 비로 인해 지난번에 마무리하지 못한 숙제도 남아있고... 이래 저래 이번 산행은 암릉에 거리도 먼데... 무사히 내가 이겨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마음이 무거운데 2시10분... 버스는 오늘 출발지인 용추주차장에 도착해 대원들이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숨을 고르고 있다. 이제는 날씨도 서늘해져 차창에 서린 뿌연 입김을 닦아내니 차창 너머로 수많은 별들이 쏟아진다. 지리산을 출발해 속리산까지 북으로 북으로 달리던 대간은 오늘 우리가 산행하는 대야산 부터 태백산 지나 매봉산까지 방향을 약간 동으로 틀어 태백준령의 등줄기까지 이어 달리고 매봉산부터는 다시 북으로 향한다. 특히 오늘 구간은 백두대간의 백미에 해당한다는 경관이 수려한 곳이라 더욱 기대되어진다.
02:50 장거리 구간에다 물까지 없어 물 준비를 잘하라고 신신 당부하는 윤대장님의 당부로 용추주차장 동서남북 네 개의 수도꼭지가 달린 음료수대에서 비닐 팩에 물을 채우고.. 오늘의 장도를 밝혀 주듯이 대원들이 가는 길을 헤드라이트로 비춰주는 버스를 뒤로하고 드디어 산행 시작이다. 버스 한 대의 불빛으로도 하늘의 별이 거지반 안 보이는데... 하물며 도시에서는 별을 볼 수 없는 게 정상이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계곡입구의 민박집과 음식점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수많은 별빛의 호위를 받으며 계곡소리와 함께 오랜만에 비 없이 산행하니 정말 좋다. 더구나 밀재까지는 간혹 키 만한 산죽밭을 지나가는데... 상상해 보시라 서늘한 새벽에 옷과 살에 스치는 이슬 먹은 산죽의 섬뜩한 느낌... 그리고 뒤에 남는 물먹은 옷의 거북스러움... 그러나 오늘은 그것도 없다. 오랜 비의 괴롭힘을 보상이라도 하듯 산죽도 이슬 없이 말라있어 옷에 스칠때마다 사각사각 밝은 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돋운다.
04:10 밀재도착. 대간금이 이어졌다. 길은 오른쪽으로 틀면서 바로 산으로 경사가 붙는다. 저번 하신길에도 보았듯이 유명한 산으로 사람 출입이 많은 곳인지라 길이 잡목하나 없이 잘 나 있고 소나무 숲 속의 솔잎이 쌓인 등산하기 최적의 길이라 발걸음도 가볍다. 다만 경사가 워낙 심하고 암릉지역이라 진행이 지연되고 줄을 잡는 구간에는 한 대원이 올라갈 때마다 전 대원이 기다린다. 능선이 가파라지며 왼쪽으로 대문바위, 고래바위 등의 표시판이 보이는데... 밝은 날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대신에 가파른 능선위로 은하수가 춤을 추고, 바로 머리 위에 바위와 소나무 틈새로 미녀의 눈썹같은 그믐달이 교교하게 비추는데... 오랜만에 나오신 최대장님이 왕별이니 큰별이니 농을 하면서 대원들에게 힘을 돋우신다.
04:55 대야산(930)정상 캄캄한 밤에 별과 달을 하늘에 이고 구름 한 점 없는 세상을 발아래 두었다 사방을 휘둘러 봐도 막힘이 없다. 멀리 도시의 야경이 지평선 위를 손톱 끝처럼 슬쩍 띠를 이루며 주변을 밝히고 있는데... 저기는 괴산 이번엔 충주, 저기는 문경이나 가은...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대충 눈짐작으로 맞춰도 보고. 가까운 마을의 불빛은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넓은 하늘에 사선으로 슬쩍 별똥별이 흐른다. 마음의 기원을 빌면 들어준다 했으니 간절히 빌어도 보고...하늘에는 별 땅에는 보석 아! 아름답다. 하지만 감탄은 잠깐 다시 긴장을 해야 한다. 백미터가 넘는 수직 낭떠러지 하산길이 버티고 있다. 스틱은 접어서 배낭에 단단히 매고 양손은 보조자일과 나무 가지를 번갈아 잡고 다리는 바위틈에 확보할 자리를 찾고 긴장이 흐르며 조심조심 한발 한발 내려온다. 경사도 경사지만 나이 드신 여자 대원님들 중에는 발 디딜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발이 주르륵 미끌어지면서 위험해 지곤 하는데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그래도 전 대원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촛대봉에서본 대야산의 실루엣>
05:50 촛대재.. 대야산 정상이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안부의 촛대재에서 잠시 바위산을 하산한 긴장을 풀어본다. 오늘은 맑은 날이고 날이 새는데도 새들이 한 놈도 울어주지 않는다. 그동안 비가 너무와 새벽에 우는 걸 까먹었나?
06:00 촛대봉(661) 밤이 많이 길어져 아직 어둑어둑한데... 그래도 새벽이다. 힘들게 내려온 대야산의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꼭 맑고 쾌청한 날을 골라 밝은 때 산행을 해봐야 하겠다.
06:25 불란치재 옛날에는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넘어 오는 주 통로였으나 이웃한 버리미기재로 포장길이 나면서 쇠퇴한 고개이다. 예전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 고개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07:10 곰너미봉(721) 불란치재에서 곰너미 봉으로 올라 설라면 미륵바위를 만난다. 어떻게 해서 미륵바위란 이름을 얻었는지 이렇게
보면 엄마 찌찌 같기도 하고 돌려서 보면 돌고래 같기도 하고 하여튼 재미있게 생긴 바위인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야산도 장관이었다.
미륵바위에서 완만하게 올라선 곰너미봉에서는 이제까지 4시간 30분이나 고생하며 돌아온 출발점인 주차장이 바로 발아래 보인다. 내참.. 잠도 못
자고 꼭두새벽부터 아침 내내 헛짓거리 하고 다닌 기분인데... 어쩌랴 등산이 제발로 오른 길을 제발로 걸어 내려와야 하는 헛짓거리인 것을
.... 하산길은 암릉 구간으로 이제까지는 그나마 굵기는 다르지만 자일이었는데... 이곳은 나일론으로 된 임시 보조자일이라 제대로 힘을 써도
되는지 약간 줄을 믿기가 의심스러웠다.
<미륵바위에서 본 대야산 전경>
07:40 버리미기재(480) 경북 가은에서 괴산으로 넘어가는 931번 도로가 통과하는 길이다. 포장도로가 지나가니 연속종주자들을 위해서
보급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정상에는 서너대의 차량을 주차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대간 종주자들이 이곳에 차를 두고 은티마을까지 산행을 하고 다시
이곳으로 차를 찾으러 오곤 하는 모양이다. 대야산쪽 들머리에 벌써 송이가 입찰이 끝난 곳이니 송이를 채취하면 법에 걸린다는 경고 현수막이 걸려
있는 걸 보면 송이가 많이 나나보다. 우리가 잠시 고개 마루에서 휴식하는 동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두 젊은이가 키보다 훌쩍 큰 어택 배낭을
메고 우리보다 앞서 장성봉쪽 들머리로 들어서는데... 우리 일행은 어택에 완전히 기죽어 햐! 부럽다!! 얼굴도 이쁜 것이... 하는 분위기...
역시 젊음은 아름답다.
곧 우리도 뒤따라 오르는데... 400까지 내려온 길이 단숨에 900까지 오르려니 죽을 지경인데..
.버리미기재에서 하산하면 딱 좋겠구만... 이제까지는 저번에 비로 인해 용추계곡으로 탈출하느라 하다 둔 숙제를 마친 것에 불과하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오늘 산행의 시작이라 앞으로의 갈 길이 더 막막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소나무 숲길이나 장성봉을 오르는 길도 일부는 암릉 구간인데...
앞서가는 윤대장님이 지금 이 시간쯤이면 잘 자고 일어난 독사놈들이 바위 위에서 해바라기 하느라고 나와 있다가 암릉길 오르느라 갑자기 손이 슥--
나타나면 꽉 물어버리는 사고가 자주 난다고 겁을 준다. 나 뱀 싫은데... 주섬주섬 암릉 길이라 접어 두었던 스틱을 꺼내 양손에 잡고 조심조심
뱀 없나 확인하고 산행을 하느라 더 힘이 든다. 나중에는 하도 힘이 드니 에라 나도 모르겠다. 오늘 처음 산행에 참여한 8명의 일행이
버리미기재에서 탈출을 했단다. 잘한 결정이다.
08:37 장성봉(915)... 대야산은 저번 산행의 숙제이니 장성봉이 오늘의 상봉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멀리 선유동과 용추골 등 물이 있는 계곡주위는 운해가 감싸고 있고 몸도 이제는 완전히 힘이 빠지는 게.. 환상의 경치에다가 거의 무아의 경지이다. 윤대장님의 막걸리를 한사발 받아먹고 조용히 그늘을 찾아 잠시나마 누워 잠에 빠져든다. 대간산행 자체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고행의 길인데... 산행전에 컨디션 조절을 못하고 금요일 밤에 상가집에서 술과 함께 밤을 새우고 토요일 출근했다가 퇴근 후 잠시 눈 좀 붙이고 저녁에 다시 버스 타고 새벽부터 산행을 하려니 몸이 밧데리가 다 소진된 듯이 구동이 안된다. 그래도 잠시 눈을 붙이니 살 것 같다. 이제 오늘 일정의 반정도 진행된 것 같은데.. 체력 안배에 신경을 써야 하겠다.. 장성봉에서 은치재에 이르는 길은 852봉, 827봉, 801봉, 804봉, 787봉, 821봉, 820봉, 722봉 및 그밖에도 수많은 봉우리들이 오르막 내리막을 이루며 완만하게 진행되어 간다. 이 구간은 봉암사란 유명한 절에서 스님들의 정진을 위하여 특히 정숙해 달라고 주의도 당부하고 때로는 어깨스님들이 길도 막고 하는 구간이기도 하고, 또 산에서는 사람들의 소리가 동물에게는 큰 위협이 되므로 동물의 생태계 보호를 위하기도 하며 산행하는 사람들끼리의 배려를 위해서도 요즘은 소리지르지 않는 것이 산행의 예절인데 악휘봉쪽에서 일부 등산객들은 우리가 진행하는 두 세시간 동안 계속해서 야호! 에다 누구야! 찾으면서 난리가 아니다. 길을 막는 절이나 악써대는 등산객이나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는가!
11:30 악휘봉삼거리(821) 821봉에서 10분정도 떨어진 거리에 악휘봉(845)이 섬처럼 솟아있다 사람들이 많이 올라붙어 울긋불긋한 옷들이 마치 단풍이 든 듯 하다. 삼거리를 꼭지점으로 길은 V자로 꺾여 은치재로 내려선다. 수없이 반복되는 오르막 내리막과 많은 부분이 암릉길이라 무릎이 슬슬 이상이 오는 것 같다. 이쪽 암릉에서 앉아서 쉬고 있으면 저쪽 암릉으로 사람 오르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내리막일수록 스틱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조심스러워진다.
12:45 은치재.. 이제 오늘 일정이 서서히 막바지로 향하고 683봉과 구왕봉(877)만 넘으면 하산이다. 은치재는 은티마을에서 봉암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봉암사 쪽은 스님들의 정진을 위하여 사월초팔일 부처님 오신날에도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과 함께 나무로 목책을 둘러 절대로 넘어오지 말라는 분위기를 약간 살벌할 정도로 표를 낸다. 이제 길은 683봉을 향해 다시 숨이 턱에 차 오른다. 좌우 돌아볼 여유도 없고 기력도 없다. 앞 뒤 사람과도 모두 떨어졌고 뒤에서 김과장님이 지친 기색이지만 부축해서 갈 입장도 아니니 우선 정상까지 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제 누구에게도 대간산행을 같이 하자고 권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결정하고 가는 길도 혼자만의 고행의 길인데... 누군가의 권에 못이겨 하는 산행이라면 속으로 몇 번 욕을 했을 것이다.
<구왕봉에서본 희양산>
14:10 구왕봉(877) 죽도록 올라온 것에 비하면 구왕봉 정상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정상만이 다가 아니다. 잠시 더 진행을 하면 갑자기 시야가 확 터지며 희양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들어오고 멀리 그 유명한 봉암사의 전경이 도도하게 자리잡은 천길 낭떠러지에 이른다. 봉암사는 성철스님과 같이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 그룹으로 오르는 스님이라면 반드시 거쳐야되는 최고의 정진도량으로 그만치 그분들의 정진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오랜 기간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죽하면 길을 막았으랴 만은 옛말에도 물길과 사람 다니는 길은 막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철모르고 떠들어대는 등산객의 자성과 적당한 절차를 마련하여 대간산행을 진행시키는 절의 배려가 조화롭게 마련되어야 하겠다.
<봉암사>
특히 이 절은 신라 헌강왕때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창건하려고 희양산 밑에 있는 연못에 아홉 마리 용을 구왕봉으로 쫏고 절을 지었다는
창건신화가 전해 오는데... 절집을 지을 때 용을 쫏아내고, 이제는 중생을 구한다는 사람들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대간꾼을 쫏아내고... 창건
때부터 절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아이러니가 아닌가?.
14:50 지름티재... 대야산의 하산길에 비견되는 구왕봉에서 지름티재까지의 길을 내려와 이제 공식적인 대간산행은 끝나고 은티마을로 하산만 남았다. 꼬박 12시간의 기나 긴 산행이었다. 지름티재 에서는 더욱 가관인 게 500여 미터 구간을 목책과 붉은 줄 흰줄로 휴전선처럼 봉암사 가는 길을 막아놓고 그 안쪽은 목책으로 막아왔으며 다음 대간길도 막아왔다. 더구나 앳되 보이는 스님이 팔장을 끼고 지키고 서 있는데... 짐짓 모른척하며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를 건네자... 합장으로 인사하며 산악회에서 오셨습니까 하고는 턱짓으로 앞서간 대장님이 바닥에 깔아둔 산악회 진행로 표시를 가리키며 "표시대로 가십시오" 한다. 내참...
16:10 은티마을 도착... 죽다 살아난 오늘 산행이 끝났다. 지름티재에서 마을 입구까지 계곡과 별도로 등산로가 깊게 파여 폭우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고 산행 내내 눈에 거슬리는 마을 앞 노천광산이 정상부까지 파헤쳐저 안타까움을 금할 수 가 없었다. 마을에 다 와서는 넓은 고추밭에 잘 익은 붉은 고추를 따는 아낙들의 모습이 정겨웠고, 다른 대간팀의 나이 드신 여자 분이 소녀 같은 마음으로 메밀꽃이 만발한 메밀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이 고와 보였다. 힘든 산행이었다.
<메밀꽃 필 무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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