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14구간(이화령-하늘재/조령산)

마운차이 2005. 7. 22. 13:30

일시 : 2003. 10. 19 04:00∼13:30(16Km, 9시간30분)
산행구간 : 이화령(548)-조령샘-조령산(1,025)-조령3관문-마폐봉(927)-북암문-동암문-월항3문(탄항산 856)-하늘재
날씨 : 환상 3

대간을 시작하면서 어른들 찾아 뵙는 게 불규칙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주에 한번은 다녀와야 손자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덜 미안한데... 분당과 일산이라 평일에 다녀오기는 곤란하고 토·일에는 행사가 많고... 오늘은 대간하는 날이지만 바깥 날씨가 좋아 모시고 율곡 이이 선생이 즐겨 찾았다는 임진강이 보이는 화석정을 보고 참게가 제철이라 참게탕을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오니 그렇게 마음이 좋을 수가 없다. 마침 식사중에 총무님이 버스가 바뀌었다고 전화 주시는 바람에 산에 가는 줄 알고 어서 일어나자며 어른들이 성화 하신 덕분에 7시 넘어 일산에 모셔드리고 막히는 길에 분당까지 오니 10시 가까이... 부리나케 짐 싸들고 산으로 간다. 잠결이지만 2시가 못되어 수안보 온천 부근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들을 하는데... 3시면 등산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는데... 4시에야 산행을 시작한다. 그저 고맙고도 고맙다. 이화령은 새벽시장이다. 5대의 관광버스가 제각기 달려와 서로 반갑다고 으르렁거리고 있고 휴게소는 새벽 시간에 산꾼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지.. 화장실 문까지 걸어 잠구고 잠에 빠졌는데... 물론 돈 안돼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생리 현상을 막으면 그 주변에다 해결(?)하고 크게 보면 더 문제일 것 같은데... 관할 관청에서 보조비를 지원해서라도 화장실은 개방하고 불이라도 켜놓는 게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이 욕한다.

04:00 이화령.. 고산 윤선도가 오우가에서 '내 벗이 몇이냐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게 더욱 반갑다'고 노래하였는데... 대간 길이 요즘은 거의 기암의 괴석이요 하산 길의 맑은 물은 계곡을 만들고 특히 이 고장은 정기 어린 소나무에 남도의 죽죽 뻗은 대는 아닐지라도 사방에서 산죽과 같이 하니 가히 윤선도의 마음을 감히 내가 탐하고 있는데... 더구나 오늘은 홀쪽한 반달이 수많은 별을 배경으로 더욱 새초롬 하게 떠 있는 게... 다섯 친구가 다 모인 날에 별까지 축하를 하고 아! 나는 자연인이다!!!
관광버스 5대 장난이 아니옵니다. 우리 차만 32명이라는데.. 우리 옆 차는 더 사람이 시컴하게 많은 게 어림잡아 서른 댓 명만 잡아도 170명이다. 교행도 어려운 산길에 170명이 욺직이면 난리가 아닐텐데... 벌써 한 팀은 사라졌고, 한쪽에 모인 팀이 해드랜턴으로 우리의 출발을 격려해 준다. 늘보! 출발이다!. 시작부터 능선길이 경사가 심하다.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새벽에 경사가 심하면 고도도 높이고 잡생각도 잊고 산행에만 몰두할 수 있어 숨은 가빠도 차라리 좋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나 관리해야 할 중요성이 무척 높은 지.. 능선에 연이어 6개의 잘 관리된 헬기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05:00 조령샘 1시간의 거친 호흡과 함께 샘에 도착했다. 일행의 맨 마지막 부분이라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샘이 만원이지만 그래도 이 귀한 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한 모금 맛보고 능선 옆을 타고 오르던 길이 조령샘을 지나 능선길로 오른다. 연풍쪽 마을의 불빛이 아름답다. 머리 앞 정면의 하늘로 북두칠성이 길을 안내한다. 별이 참 많다.

05:23 조령산(1,025정상석엔 1,017) 잠시 조령샘에서 주춤했던 터라 조령산이 오늘의 상봉이지만 아직도 사방이 캄캄하니 오래 머물 분위기는 아닌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암릉의 바위길과 보조자일을 잡아야만 하는 험한 길이라 자연히 지연되고 있다. 더구나 젊은 사람들은 척척 줄잡고 내려가면 되지만 나이 드신 여자 대원들은 줄잡기도 서툴고 발 딛기도 어려워 앞의 일행과 떨어지고 뒤는 자연 지체된다. 오늘 처음 나오신 여자 대원이 해드랜턴도 없이 손전등을 손목에 걸고 간신히 줄을 잡고 휘청거리며 불안하게 내려가고 있는데... 나야 우리 대원이라 뒤에서 랜턴을 비춰주고 앞에서 김과장님이 봐주고 하는데... 조금 지체되니 뒤따라온 다른 산악회 가이더가 진행이 늦어지자 다들 한마디씩 하는데... "이렇게 가다간 오늘 시간 엄청 걸리겠구만!" 하니 옆에서 "요즘은 길도 안 비켜줘요!" 하고 거의 들으라고 비꼬는 수준인데... 줄에 매달려 허둥대는 사람보고 너무 한다 싶어 쳐다보니 한 서른쯤 먹었을까? 아침부터 한마디하려다 우리 때문에 지연되고 있으니 꾹 참았다. 오늘따라 문대장님이 아파 없는 관계로 선두와 후미에만 대장님이 있으니 중간이 문제다. 계속 산행을 같이 해온 선수들이야 별 탈 없지만 중간에 익숙치 못한 새 대원이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길은 계속해서 암릉길로 오르막이나 내리막이나 보조자일이 크게 도움이 되지만 팔 힘으로 당겨야 하는 여자대원님 들에게는 곤혹스러운 길의 연속이다. 6시40분 반대편 주흘산쪽 봉우리가 붉게 물들며 일출을 준비한다. 내리막길 암릉에서 다들 걸음을 멈추고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준비완료... 여러 형태의 일출을 보아왔지만 산 능선 위로 아무 흐트러짐이 없는 깨 끗하게 동그란 해가 오르는 것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시기에 셔터를 누르니 배터리가 다 되어 찍히질 않는다. 여러 일출과 대비되어 꼭 찍었어야 하는 그림인데... 아쉽다. 카메라를 빌려준 병건이가. 저번 대간기를 읽고 나는 글에 충실하고 그림은 지 일이라고 경고하고.. 너무 좋은 그림으로 맘먹지 말라고 경고를 하더니 카메라에 텔레파시로 '락'을 걸어 놀 줄이야..... 아님 대간 묘에 인사를 잘 안했나?... 부리나케 배터리를 갈아 끼우니 해는 벌써 둥 떠올랐고 다 퍼져서 너무 밝아 눈을 못 뜰 지경인데.. 그래도 한 방 콱... 중요한 순간은 찰라에 지나간다. 오늘 또 새롭게 배웠다. 참 지금 메고 있는 배낭도 병건이가 사 준 겁니다. 몇 번 협찬 밝히라고 경고했는데... 안 했다간 맛있는 거 많이 든 날 또 오늘처럼 장난칠라!!...

06:30 신선암봉(937) 부봉에서 주흘산까지 능선이 잘 보이는 넓다란 암릉 위에 우리 일행이 간식을 하며 잠시 쉬고 있다. 윤대장님이 보이는 순간 아까 다른 산악회에 당한 게 하도 분해 투덜투덜 거리고 ...잠시 쉬는데... 사방의 전망이 환상. 앞은 주흘산, 왼쪽은 멀리 월악 연봉이 선명하고 뒤로는 치마바위골 계곡이 치마폭을 펼치고 있고 하늘은 눈이 시리게 푸른 코발트 불루, 알프스에서나 나오는 색이라 한 장 찍을까 하다가 색이 제대로 나올 거 같지가 않아 그냥 참았다. 이제 능선은 조령 3관문까지 계속되는 암릉과 간간이 성곽에 팔과 다리가 얼얼한데... 다섯 친구중 돌 친구한테 오늘 되게 당한다.
조령 3관문 새재로 이어지는 길은 군데 군데 돌로 쌓은 석축 위로 양팔 넓이 이상 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마치 갈마재 넘어 이배재로 가는 남한산성 길과 닮아 조선시대의 축성기법을 얼핏 볼 수 있었다. 의아스러운 것은 산성의 방향이 신라의 것이라면 이해가 되나 조선초 북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을 임진왜란도 100년이나 지난 숙종 34년(1708년) 중창하였다니 이곳에서 오랑캐를 막았다면 서울이나 전 국토는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오랑캐 한테는 남한산성에서 저항하다 인조가 당한 거 말고 이곳까지 당한 게 또 있나? 특이로운 건 이 산성은 커다란 돌을 쌓은 것이 아니고 사람이 들을 만 한 돌을 쌓아서 만든 것으로 최후에는 이 돌이 무기의 용도로 쓸 계획인 거 같다고 김과장님이 의견을 내신다. 우리 산악회의 막내인 중학교 1학년 대원과 삼촌들이 앉아서 홍어회와 막걸리를 권한다. 허걱! 홍탁!! 이 산중에서 맛 죽이옵니다.

<조령3관문>

08:40 조령... 나는 새도 쉬어 간다는 새재 제3관문 멀리서 옛스런 풍악이 들려오며 길이 급격히 떨어져 제3관문에 이르니 김과장님은 산신각에 먼저 예를 차린다. 나도 뒤에서 꾸뻑 한번하고 샘에서 물도 담고 마시기도 하고 한바퀴 휘둘러 보는데... 이 길은 영동의 추풍령, 단양의 죽령과 함께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특히 안동, 상주, 문경 등 선비의 고장에서 과거보러 갈 때나 장원에 급제해 금의환향 할 때 이용한 지체 높은 사람들의 길로 일반인들은 이길 보다는 오늘의 우리 목적지인 하늘재를 주로 넘었다고 한다. 왜 종로에도 하도 큰길로 지체 높은 분들이 지나갈 때 마다 예를 차리기가 귀찮아 뒷골목에 큰길과 나란히 마차를 피하는 길이라 하여 피맛길이 지금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하늘재를 이용해 왔고 조선에는 새재를 이용했으며 이화령이 개통되자 주 통로의 역할을 잃어 버렸고, 지금은 이화령도 터널이 뚫려 옛길은 대간꾼이 아니면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길도 흥망성쇠가 있는 모양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 상륙한 소서행장일행이 이 새재를 지나면서 조선에서는 왜 이런 천혜의 요새를 비워놓았는지 의아스럽다고 했다는데... 권율장군의 사위인 신립장군은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다가 전 국토를 왜군에 유린당하고 본인도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이 서린 곳이다.

<월악산>

09:20 마폐봉(927) 조령 3관문에서 숨가쁘게 오른 대간길은 부봉을 향해 90도로 길을 오른쪽으로 튼다. 산성은 계속 이어지고 만리장성은 아니라도 백리장성은 되나? 월악산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지난주에는 친구 3가족이 애들과 함께 가칠봉에서 갈전곡봉을 지나 구룡령까지 대간길 일부를 등산했는데... 단풍이 그렇게 곱게 물들었는데... 이곳은 단풍이 물들기도 전에 다 잎이 떨어져 낙엽 밟는 정취는 있으나 약간 스산하기까지 하다. 잎이 거의 떨어진 숲은 속이 훤히 들어 난다.

09:45 북암문(756) 조령제2관문에서 동화원을 지나 하늘재에서 내려오는 지릅재로 이어지는 산성의 통문으로 문이라고는 하나 군인들의 교통호 정도의 크기로 석축을 쌓아 통문을 만들어 놓았다. 북암문에서 동암문에 이르는 길에는 어른 한 명이 안을 수 없을 정도로 굵은 소나무들이 기개를 뽐내고 있는데... 큰 나무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모두 제일 아래 부분에 깊은 생채기를 가지고 있다. 모두 일제 시대에 송진 공출을 위해 만행을 저질러 놓은 게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데...이 곳뿐만 아니라 봉화 울진 쪽 소나무는 모두 이런 수난을 당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임진왜란으로 송진 공출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흔적만을 백두대간에서 보게 되는 게...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바로 이끌어가야 하는 교훈을 얻게되는 산행이다.

10:45 동암문.. 미륵리로 넘어가는 북암문과 같은 통로로 미륵리에는 미륵사지 절터가 있는데... 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한을 가지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창건한 절이라 한다.

11:00 부봉 갈림길.. 북암문부터 동암문을 지나 저걸 어떻게 또 오르나 싶어 마음속이 무거웠는데... 부봉을 20분 남기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틀며 급하게 떨어진다. 일단 다행이고 하루종일 암릉과 보조자일과 씨름을 했더니 무릎도 아파 오고 팔도 아프다. 무릎에 근육이 당기신다는 이선생님이 하루 종일 뒤로 쳐지시는데... 어쩐지 모르겠다. 부봉 삼거리를 지나 주흘산 갈림길 전에서 도저히 더 진행 할 수 가 없어 퍼지고 앉아 간식을 하는데... 지난 번 더덕을 가지고 벌써 더덕주를 만들어 오신 백사장님이 동대문 시장에서 사셨다며 안주까지 내 놓으시는데... 두툼한 녹두전에 김치부침개와 향기로운 더덕주가 온몸을 싸--하고 감싸온다. 고맙습니다!!

12:35 월암삼봉(탄항산 856)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다. 벌써 수북히 쌓인 낙엽 길에 겨울을 재촉하는 에어컨 냉풍이 불어오는 게... 해질 녁 분위기에 약간 추위까지 느껴진다. 내리막은 솔숲에 부드러운 길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발아래 우리 버스가 보인다.

<누워있는 소나무>

13:30 하늘재 신라때부터 경상도와 중원을 연결하는 유서 깊은 고개로 이제 대간길은 충주와 괴산을 두고 제천으로 넘어간다. 미리 오신 최대장님에게 지난번 약속했던 잣 술을 한잔 드리고 주위분들과 한잔 씩 했는데... 다들 향기롭게 잘 담궜다고 칭찬받았다. 마지막 한잔은 끝까지 품에 넣어 두었다가 잣을 주신 이선생님에게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