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3. 11. 2 03:50∼12:30(17Km, 8시간40분)
산행구간 :
하늘재-포암산(961)-관음재-부리기재-대미산(1,115)-차갓재(안생달)
날씨 : 흐린 후 맑음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말만 살찌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살찐다. 본능적으로 겨울을 준비하는 것으로 자연스런 현상이니 이 시기에 너무 무리하여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건강을 상할 수도 있다는데...평소 보다 2K나 늘어났고, 전에는 힘든 대간 산행을 하게 되면 약간씩 몸무게가 줄곤
했는데, 요즘은 대간을 다녀와도 줄기는 커녕 어쩔 때는 오히려 는다. 산에 가서 더 먹기 때문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뒷산으로 뭉툭한 반달이
서산으로 지는데... 오늘은 달 보기는 틀렸다. 아침을 먹으라고 세워준 수안보온천장은 술집이고, 노래방이고 새벽 두 시가 넘었지만 사람들로
가득하다. 잠시 눈을 붙이고 이제 다들 산행 준비에 부산한데... 우리 중학생 막내 대원이 잠에 취해 깨어나기가 힘들다. 얼마나 잠이 많을
나이인가? 그래도 눈 비비고 일어나 준비하는 게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정신만 들면 제일 앞에서 제일 씽씽하다.
하늘재 경상북도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시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는 고개로 하늘재란 이름 말고도, 지릅재, 겨릅산, 대원령, 계립령이라고도 부르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죽령과 조령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개척한 길로 불교의 관점에서 관음은 현세이고 미륵은 미래이니 현세에서 미래로 넘어가는 부처님의 땅이다. 오늘도
하늘에는 별이 소복히 쌓여 부처님 땅에서 등산을 시작하는 중생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03:50 출발. 봄 과 여름 내내 그렇게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너무 맑은 날이 계속되어 다시 산불조심이란 얘기가 나온다. 경기도 일부에서는 등산로가 통제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앞서
올라가는 대원들 사이로 바싹 마른 나뭇잎이 일으키는 먼지가 랜턴불에 비춰 폴폴 춤을 춘다. 이곳도 단숨에 포함산으로 오르는 길이라 경사가 심하고
돌길이 많은데다 일부 바위 길은 돌 틈에 겨우 빠져나가는 길로 배낭 지고 비집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40여분의 씨름으로 산 능선으로
올라붙었다. 발아래 마을의 불빛이 평화롭다. 포암산... 산 이름에 노골적으로 바위 암자가 들어가 있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온통 바위투성이에
겨우 줄에 의지하여 올라간다.
04:50 포암산(961) 포암산은 961봉과 963봉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위산인데, 정상에도 한 무더기 돌탑을 만들어 놓았다. 문경에서 하늘재에 오르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우뚝 솟은 포함산이 마치 큰 베를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단다. 정말 주변 경관이 좋을 곳이겠지만 아쉽게도 띠엄 띠엄 불빛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다. 이제는 내리막 길 한참을 내려가던 대오가 갑자기 선다. 얼마나 내려왔는지 마을 불빛이 바로 코밑에 있다. 만약 알바라면 많이 내려왔는데... 거기를 또 올라야 한단 말인가... 잠시 선두가 웅성웅성 성질급한 중간 부분은 벌써 뒤돌아 백 하려고 하고... 리본 찾아라! 이렇게 많이 내려설 리가 없다. 하는데... 무전기에서 길이 맞아 진행한단다. 휴-- 다행... 이제는 길이 좋다. 평탄한 흙길에 낙엽이 쌓여있어 진행이 상당히 빠르다. 더구나 오늘은 익숙한 선수들만 있어서 그런지 낙엽을 스치며 걷는 걸음이 속보다. 이거 늘보산악회 맞어?
05:50 관음재.. 6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사위는 캄캄하다. 대간 하면서 처음으로 이제까지 온 길은 지리산 가는 길이요, 앞으로 갈 길은 백두산 가는 길이라고 제천시에서 나무로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다. 백두대간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제천시 관계자의 호방함에 경의를 표한다. 계속 진행하면서 몇 개 더 이런 표시목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길은 월악산 국립공원 구역이다
06:05 만수봉 사거리(923) 진행방향으로 직진하면 제천 덕산의 억수리고 좌측은 만수봉 가는 길이다. 이제까지 이정표는 전부 월악산 만수봉을 기준으로 안내하고 있다. 오른쪽이 대간길이다 비교적 평탄한 길에 잡목 숲과 너덜이 번갈아 나온다. 너덜이라고는 하나 일정한 방향으로 유지되는 게 예전의 성곽의 흔적이 아닌가 싶다. 산이 희한하다. 저번 조령산 구간은 전 산이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이었는데.. 오늘은 시작 지점의 일부를 제외하곤 소나무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대신 잡목과 낙엽송이 볼만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흘산>
07:30 전망대.. 날이 새는데 사방은 엷은 개스로 약간 뿌연 상태다. 일출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으나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이제 목표는 대미산이다. 사방이 트이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주흘산의 모습이 장관이고 지나온
포함산의 낙타 등 같은 봉우리가 선명하다. 이제 길은 약간 과장하면 낙엽에 발이 푹푹 잠길 정도이고 주변의 나뭇잎은 달린 게 없을 정도로 다
떨어져버렸다. 산도 원만하고 이렇다 할 그림이 없어 오늘은 사진이 별로 없다. 그래도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일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느라 걸음이
늦어져 오늘은 내가 꼴찌다. 잎이 다 떨어져 황량한 나무가 마치 조용필 콘서트의 무대 배경 같은 분위기다.
<지나온 낙타등 포함산/왼쪽 아래 관음리에서 하늘재로 올라가 미륵리로 넘어가는 부처님 땅입니다>
09:15 부리기재.. 다 떨어진 잡목사이로 중국음식점 배달하는 젊은이의 노란 물 들인 머리처럼 낙엽송 군락이 곱게 물들어져 있다. 문경 중평리와 제천 덕산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이제 길은 대미산의 마지막 오르막이다. 대야산을 두 번의 시도 끝에 오르고, 하도 고생을 해서 그런지 '대'자만 보면 겁이 난다고 김과장님이 한마디하신다. 대미산도 약간 걱정이 되는데. 저게 대미산인가 하는 덩치 큰 봉우리를 다섯 개는 넘었나 보다 이제는 혹 하는 기대도 없다 도대체 대미산은 언제 대미를 장식할는지...
09:50 대미산(1,115) 드디어 대미산이 대미를 장식하니 오늘 등산도 파장 분위기 윤대장님 막걸리가 나오고 이선생님 잣 술이 나오고
백사장님 김치전까지 나왔다. 이러니 살이 찐다. 이제 안개가 걷히고 사방은 햇살이 따갑다. 몇 일 전까지 날씨가 추워 내심 걱정을 했는데...
오늘은 쿨맥스 티 하나만 입어도 땀이 날 정도로 날씨가 풀렸다. 약간의 간식 후 대원의 절반 정도가 대미산 표시석에 둘러앉아 기념 사진도 한 장
찍고 이제 대오는 우리 보다 앞서 출발한 황금송이라는 대간팀과 뒤섞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대미산에서는 내리막길을 따라가기 바빠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눈물샘이란 샘이 있다는 데 못보고 지나쳤다. 산행을 하면서 능선 언저리에 솟아 나오는 물맛을 본다는 건 큰 보너스인데...
10:30 문수봉 삼거리.. 대간길이 삼거리를 만났다. 예의 지리산 백두산을 안내하는 제천시의 표시목이 나오고 직진하면 문수봉, 90도로 우회전하면 헬기장과 대간길인데... 이선생님과 표시목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헬기장에서 휴식을 하던 다른 팀 일행이 우리에게 와서는 "아까 누군가 우리에게 안내판 어쩌구 했는데... 우린 아니오!"라고 뜻 모를 이야기를 다짐하듯 하고 가는데... 오늘의 마무리가 시끄러울 거라는 걸 미리 알리는 복선이라고나 할까!! 사단이 일어난 것이다. 자초지정은 우리가 산행을 하면서 여기처럼 삼거리에는 꼭 앞서가는 대장님들이 A4용지에 화살표와 늘보산악회 표시를 하고 진행을 하면, 뒷사람들이 따라가는데 도움을 얻고 맨 후미는 다시 수거하여 오는데... 앞에 가던 우리 일행이 보니 방향이 문수봉을 가리키고 있어 선두에게 확인하니 누가 바닥 표시를 다른쪽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길이 바뀌어 조난과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커다란 사건인데... 누군지는 모르나 절대로 해서는 안돼는 일이며 더구나 대간하는 두팀 이외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는 산행길에서 벌어진 일이라 자연 상대방을 의심하게 되었는데... 목격자나 증인은 없다. 그리고 표시지가 종이이긴 하지만 꼭 돌로 잘 눌러 놓고 15회의 산행에서 비오는 날도 아무 일이 없던 것이니 대장님들이 괘씸하게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요... 여러 사람의 정황을 종합하니 오늘만 두 번째란다. 절대 산에 와서는 안될 사람이 누군가 끼여있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지난 여름에 네가 한 행동을" 영화 제목인데... 대간 귀신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11:00 낙엽송 군락.. 화려한 단풍은 곱기 그지 없다. 그러나 오늘처럼 다 떨어진 잡목사이로 보는 약간 빛 바랜 노란색 낙엽송과 수북히 쌓인 낙엽송 잎을 밟고 가는 정취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길은 문수봉 삼거리에서 잠시 충청북도와 헤어져 죽령에서 다시 충북과 만날 때까지 경상북도 속으로 들어간다.
12:00 차갓재.. 오늘의 대간 종착지다. 반갑지는 않지만 커다란 송전탑이 우릴 반긴다. 다음을 기약하고 길은 오른쪽으로 안생달 마을로 향한다. 잠시 내려서면서 계곡과 만나지만 물이 한 방울도 없다. 가을 가뭄이 심하긴 한 모양인데... 30여분 지나 마을에 다 내려오도록 계곡에는 물 한방울 구경 할 수가 없다.
<안생달에서 본 황장산/다음번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다 내려와 올려다보는 다음 산행지 황장산의 바위 투성이의 거만한 모습이 나를 압도한다. 우리 버스가 들어와 있는 안생달 마을에는 한백주라는 좋은 술을 만드는 술도가가 있는데... 계곡에 물 한 방울 없는 곳에 좋은 물이 있어야 하는 술도가가 있다면 지하수가 좋으리라... 먼저 내려오신 분들이 반갑게 술을 권하는 데... 선홍색 맑고 부드러운 산수유주, 상황버섯주가 일품이다. 고무 호수에서 쏟아지는 물에 세수하고 차분히 앉아 이술 저술 맛보는 기쁨에 또 한 구간의 대간 피로가 가신다. 윤대장님이 정식으로 상대방 대간팀에 표시지의 문제를 제기 했더니 대뜸 싸움을 하자고 덤빈다. 정확하게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른들의 실강이에 밥 먹다 말고 봉변 당해 먼발치에 떨어져서 멍하니 쳐다보는 막내 대원에게 제일 미안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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