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3. 12. 7 04:00∼13:20(18Km, 9시간20분)
산행구간 :
저수령-촉(촛)대봉(1,081)-시루봉(1,110)-싸리재-흙목정상-묘적령-묘적봉(1,148)-도솔봉(1,314)-삼형제봉-죽령(696)
날씨
: 맑음(세찬 바람)
적당한 운동이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다만 적당하게 해야 한다. 지난 대간을 마친 주에는 수요일 퇴근 후 집에서 탄천변을 따라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하프 코스를 2시간 만에 달렸다. 한 번도 하프를 뛰어보지도 않고 내가 대간 하는 날 친구가 하프를 완주한 터라 무작정 뛰다보니 거기까지 가게 되었다. 막상 뛰기는 했는데... 그때부터 하늘이 노랗고 죽겠는데... 특히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 뛰었는지 양팔 알통은 몇 일 동안 쑤시고 아팠다. 그리고 토요일... 동네 분들의 주선으로 요번엔 한강까지 왕복 40여 키로를 속보로 걸었다. 걷기도 만만치 않은 게... 신발이 작았는지 발가락 3개가 새캄하게 죽었다. 매일 점심때 1시간 등산을 한다. 또 퇴근 후에는 2시간씩 운동을 한다. 그 결과... 온몸에서 무리하다는 신호가 오고 있다. 나중에 고생할거라는 지인들의 충고도 계속되고 있다.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서도 먹는 양은 전혀 줄이지 않으니 살은 빠지지 않는 다. 그렇다고 살 빼자고 먹는 기쁨을 줄일 수 없으니.... 아! 어디까지가 적당인가!!!
대간짐을 꾸리고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들으니 매시간 뉴스마다 갑작스런 추위와 강한 바람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람이 센
곳인데... 오늘따라 방바닥은 왜 이렇게 따뜻한 거야!! 그래도 간다. 하루를 남긴 보름달이 휘엉청 밝은 날 나는 이 밤에 대간하러 간다.
04:00 저수령의 새벽... 차에서 짐을 꾸린 대원들이 잠시 차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일단 세찬 바람에
주눅이 들었고, 아직 첫눈 구경을 못한 대원들이 하얀 설경을 보고 겁을 먹었다. 밖에서 다시 들어오는 대원들한테서 차가운 냉기가 싸늘하게
다가온다. 바지도 내복 없이 하나만 입었는데... 오바 트로우저를 입어야 하나!, 눈이 약간 있던데... 아이젠과 스패츠는?!! 이것 저것
고민이 많다. 그래도 단촐하게 일단 출발! 우리 말고 벌써 2대의 버스가 불을 끄고 잠을 자고 있다.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나는 바람속으로 또다시
시작이다. 사방은 엷은 눈으로 덮혀 있고 길은 눈과 낙엽이 범벅이 되어 있는데... 그 아래가 얼어 있어 잠시 정신을 놓치면 미끄럽기가 한이
없는데... 특히 내리막에서는 미끈하면 엉덩방아에 길도 얼어 있고, 사람도 얼어 있고 해서 위험천만이다. 벌써 이선생님 스틱은 부러져버렸고, 내
스틱도 눈이 있을지 몰라 아랫부분에 프라스틱 방패를 끼워놨는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둘 다 없어져 버렸다. 길은 잠시 맑은 물이 흐르는 조그만
물길을 건너는데... 대간길이 물길을 건너? 앞에서 우회길을 잡았나? 길이 점점 사면으로 틀어지며 원래 산길은 아닌 듯 낙엽속으로 푹푹
빠지는데...
04:45 촉대봉(1,081) 촉대봉을 약간 지난길로 우회를 한 것 같다. 지도에는 촉대봉으로 되어 있고 이정표에는 촛대봉, 투구봉으로 되어 있다. 대간에 본격적으로 올라붙었다. 단양쪽에서 예천쪽으로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이 불어 치는 가운데, 깜깜한 밤임에도 칼날 같은 푸른빛이 도는 하늘에는 둥그런 보름달이 수많은 별들과 함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비추고 있어 정신이 혼란스럽다. 촉대봉에서 묘적령까지는 천미터 고지의 완만한 능선을 가게 된다. 완만하다고는 하나 미끄러운 언 땅이고 수없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라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고 무릎에 무리가 가고 있다. 일기예보에 대관령이 영하12도라 했으니 이 바람에 천에서 천삼백 능선이니 영하 이십도는 족히 되는 듯 싶은데... 춥기로 유명한 점봉산 아래에서 군생활을 한 경험으로 영하 삼십도에 이르면 코속이 얼고 호흡이 탁 막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 듯 싶으니 그래도 살만 한 건가?... 김과장님은 두건을 쓰셔서 눈만 보이고 아래는 타이즈까지 입었다고 자랑스레 보이시는데... 다행이 바지는 버텨주는 거 같고 볼이 떨어져나갈 것 같아 뭐를 좀 대보고 싶어도 입김이 바로 안경으로 얼어붙어 뭘 가릴 수도 없고 아! 안경잡이의 비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괴롭다.
천당과 지옥이 이곳이다. 동쪽 사면으로 잠시 바람을 피하면 그곳이 천당이고 능선에 올라 칼바람이 들이닥치면
지옥이 따로 없다. 중요 포인트마다 시간이라도 적어두려고 장갑을 벗으면 손도 얼고 땀 때문에 습기를 머금은 장갑도 언다. 그담부터는 온기로
장갑을 녹일 라면 손가락도 찢어지는 거 같아 차라리 장갑속에서 주먹을 쥐고 간다. 다음부터는 아예 스키장갑 속에 목장갑이라도 끼고 준비를 단-디
해야겠다.
05:50 배재... 능선길이 순탄하다. 추워서 어디 차분하게 쉴 곳도 없으니 자연 진행이 빠르다. 평소 아침대용식으로 미숫가루를 물에 타 이시간 쯤에 마시곤 했는데... 배낭 밖 그물주머니에 넣어 두었더니 샤베뜨 단계를 지나 얼어 먹을 수가 없다. 아직 사방이 캄캄하니 주변에 누가 없음을 확인하고 잠시 길에서 벗어나 쉬를 하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확 불어치니 물줄기가 곡선을 그리며 일부 바지에다 낭패를 당했는데... 걱정할게 없다. 바로 얼어붙어 장갑으로 툭툭치니 다 떨어져 버린다. 누구나 할거 없이 코에서 콧물이 계속 줄줄 흐르는데... 잠시라도 품위유지를 게을리 하면 어린 시절 코찔찔이가 따로 없다. 오늘 흘린 것만 한 바가지는 되겠는데...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게 눈물만 있는 게 아니라 더니 아-하! 콧물.... 도대체 대간이 뭔가? 뭐길레 이 추운 날 숭악한 몰골로 망가져 가며 가야만 하는 길인가?
06:15 싸리재.. 단양 남조리로 내려가는 곳이다. 밤이라 잘 분간이 안되나 싸리가 많은 곳이라 그렇게 이름을 얻었나? 뭔지는 모르나 회초리 같은 가는 가지에 아무생각 없이 앞사람 따라가다가 얼굴에 한 방씩 얻어맞으면 죽음이다. 별과 달이 모두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싸리재 지나 바위 뒤 바람 잦은 곳에 잠시 휴식이다. 처음 출발은 제일 뒤에서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일 앞 이대장님 뒷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집사람이 준비해준 내떡이 인기 최고다. 이대장님 김치 김밥과 떡으로 요기를 하니 훨씬 살거 같다.
06:50 흙목정상... 지명상 정상이라고 하나 능선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른쪽 예천군 상리면에 흙목이라는 마을이 있고 거의 구부 능선까지 도로가 있는 것으로 지도에 나와 있다. 이제 사위가 붉어지고 있다. 해가 오르려나 부다. 대간길에 산더미 같은 송전탑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흉물스러운데... 이 바람에 무거운 전선을 양쪽에 잡고 견뎌야하는 너도 불쌍하다. 07:20분 이제 해가 솟아오른다. 4시부터 3시간여의 추위와 어둠과의 싸움이 이제는 해의 출연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이렇게 아름다운 장관을 보게 해 주신 소백산 지부 대간 귀신들에게 감사드린다.
길 이름이 뱀재인데... 뱀이 많은 곳인가? 그놈들은 이 추위를 피해 어딘가 모여 서로 엉키고 설켜 이
겨울을 나고 있을 것이다. 뱀은 한 굴에 삼대가 산다고 한다. 각자 한해를 보내고 꼭 동면은 삼대가 같이 모여 지낸다니 자연의 섭리가 애틋하기만
하다. 길은 예천 고항리 모시골에서 이어지는 능선으로 모시골정상(솔봉 1,103)을 지나 묘적령으로 이어진다.
08:40 묘적령.. 묘적봉과 옥녀봉자연휴양림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로 대간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이제까지의 순탄한 길과는 달리 이제 길은 고도를 높이며 바위산 봉우리로 올라간다. 낙엽송이 옷을 벗어버린 허물처럼 길은 낙엽송 잎으로 깔려있다. 묘적봉으로 오르는 양지 바른 곳에 선두조가 다같이 모였다. 바람을 피해 김과장님의 막걸리와 이선생님의 홍어가 나오고 과일을 나누어 먹고 이제 절반 이상 온걸 자축하며 잠시 쉬어본다.
09:40 묘적봉(1,148)묘적봉 부터는 바위지대다. 누군가 정성껏 돌탑을 세우고 나무 표시목까지 만들어 놓았다. 길은 급격히 경사를 붙이며 새로이 만든 것 같은 105개의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선계(仙界)가 눈앞에 들어온다. 신선의 세계로 온것이다.
아! 상고대!! 해발이 1,300에 이르면서 이른 새벽부터 그렇게 몰아치던 바람이 천상의 은빛 꽃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멀리 소백산 천문대에서 1,600의 비로봉 능선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장엄하게 버티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우두령으로 돌아 가는데... 내년 4월에 이곳에 오면 다시 눈 덮힌 비로봉의 장관을 볼 수 있을는지... 이대장님도 감흥에 젖어 봉우리에서 마다 소리쳐 외친다. 늘보! 늘--보!!
10:35 도솔봉(1,314) 다시 80개의 계단을 올라 눈꽃으로 장식된 상고대 터널을 지나 오늘의
상봉인 도솔봉이다. 불교의 욕계육천(慾界六天)의 하늘 중 넷째 하늘. 내외의 두 개 원(院)이 있는데 내원은 미륵보살이 살면서 석가의 교화를
받지 못한 중생을 위해 설법하며, 외원은 천중(天衆)의 환락 장소라고 하는 도솔천의 봉우리인가? 선계와 불계를 왔다 갔다 하려니 미천한 중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새벽부터 우리가 온 길과 가야할 죽령 그리고 이어진 천문대와 비로봉의 능선이 그림처럼 이어지고 있다. 아!
백두대간!!
<천문대에서 비로봉까지/왼쪽 설화속이 천문대 오른쪽 봉우리가 비로봉>
오늘 길은 화살처럼 휘어져 있어 원의 절반을 둥글게 돌아왔다.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이 이렇게 확연히 눈앞에
잡히는 길도 드물 것 같다.
도상으로는 4/5정도 지나왔지만 아직도 시간은 3시간정도 남은 게 앞으로 길이 만만치 않겠슴을 말해주는 것 같다. 도솔봉은 암봉이다. 오르고 내리고가 만만치 않고 일부는 얼어 있어 여간 조심치 않으면 위험하다.
12:10 삼형제봉... 도솔봉으로 오늘 중요한 산행을 다 했다고 긴장이 약간 풀어지는 듯 하더니 150개의 계단을 지나 삼형제봉이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이제 슬슬 무릎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너무 추운 날씨에 근육이 긴장되었고 언땅 내리막길을 미끄러우니 함부로 꿍꽝거리며 내딛은 게 탈이 났나 부다. 이제 본격적으로 죽령까지 내리막인데 걱정이다. 내리막이 시작되면서 눈앞에 보이니 흰봉산으로는 등산로가 아니라며 이정표가 죽령을 가리켜준다. 북사면 내리막이라 눈 터널에 설화속 장관을 지나간다.
나무도 얼고 사람도 얼고 세상이 모두 얼었다. 키 작은 산죽밭이 오랜만에 보는 장관이다. 몇 년전 눈 많던 해에 보니 조경용 산죽은 눈과 추위에 약하더니 이곳은 잘 단련된 산죽이라 무성하기가 그만이다. 낙엽송 군락은 잎이 많이 떨어져 있어 걷기가 좋은데... 이제는 거의 절룩거리며 간다. 지도에 안내한데로 10시가 다 채우려고 빤히 우리 버스도 보이고 죽령 휴게소도 보이지만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대간은 끝날때까지 대간이다.
13:20 드디어 길고 힘든 산행을 마치고 죽령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거리도 길고 날씨도 춥고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 다행이다. 대간길 여름 겨울이 있겠나!! 그냥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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