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3. 11. 16 04:15∼11:30(12.5Km, 7시간15분)
산행구간 :
차갓재(안생달)-황장산(1,077)-폐맥이재-벌재-문봉재-옥녀봉(문복대1,074)-저수재
날씨 : 맑음(세찬 바람)
바야흐로 결혼식의 계절이다. 한 주에 많을 때는 3건이 한꺼번에 몰릴 때도 있다. 오늘도 퇴직하신 직장 선배의 장남 결혼식을 보러
올림픽공원에 가보니 아는 얼굴들이 많이 모여 있다. 대간가는 날이라 일찍 자리를 파하고 산행 준비를 한다. 비가 안 온다고 지난번에 걱정을
했더니 요번 주 내내 많이는 안 와도 흐렸다, 비 왔다를 반복한다. 늘 그렇듯 새벽식사를 하지 않고 4시까지 잠을 잤더니 컨디션도 좋고 기분도
상쾌한데... 차에서 내리니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지난 산행까지는 가을이었고 오늘부터는 겨울이다. 올해는
안생달에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비온 뒤라 지난번에는 계곡이 바짝 말라 있더니 오늘은 제법 콸콸 소리를 내어 계곡이 흐르고
있고, 오늘도 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명료한 반달 주위로 각자 자리에서 반짝이며 우리가 가는 방향 쪽으로 북두칠성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작은 오지의 시골 마을에 3대의 관광버스에서 각자 산행을 준비하고 있다.
04:15 출발.. 한백주 양조장 앞에
수도에서 물을 들이키니 밤새 텁텁한 입과 뱃속에 상쾌하고 시원한 기운이 넘친다. 오늘의 일정은 차갓재 송전탑에서 대간금을 이어 작은 차갓재를
지나 황장산에 오르는 행로인데... 지난번 기억으로는 차갓재에서 안생달로 내려오는 길은 그렇게 험로가 없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았는데... 눈에
선 묘지 한기를 보며 대간 귀신에게 문안을 드리고 나서 갑자기 너덜지대가 나오며 경사가 급격히 가파라 지는데..인사를 제대로 안했나(?).
너덜도 사람의 출입이 잦아 잘 다져진 길이 아니고 밟을 때마다 돌이 덜그덕 거리고 심지어 가파른 경사로 돌이 구르기까지 하는 험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맨 후미에서 일행을 따라 가는데... 중간에서 길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수런거리고 있다. 차갓재에서 하산길 20분이었으니
30-40분 정도면 대간금을 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방향을 알 수 없는 머리 위에서 숲이 울고 있다. 오늘은 바람이 대간 진행에
어려움을 주는 큰 역할을 하겠다.
04:50 일단 능선에 올라붙었다. 능선이라 해봐야 사람 10명이나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바위틈으로 뒤에서는 앞사람이 빠질 때까지 아직 경사 길에 서있는 상태... 차갓재 길을 놓치고 작은 차갓재 정도로 생각하고 90도 우회전해서 일부는 바위를 올라 산길로 길을 잡고 대부분은 8부능선 길로 진행을 하는데... 한 10여분 진행했을까 두 무리가 점점 벌어지며 100여 미터 차이가 나고, 우리 길은 점점 길이 희미해져 가고... 능선길이 제 길인 것 같다. 할 수 없이 길이 없는 사면을 치고 올라가 겨우 능선 길과 합류했는데... 이제 부터는 바람이 우릴 맞이한다. 겨울을 시작하는 칼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온다. 한참을 진행하는데... 먼저 오른 일행이 다시 되돌아오며 이 길이 벌재로 가는 길이란다. 뭐?
05:35 황장산(1,077) 우리가 오른 길은 차갓재도 작은차갓재도 아니고 황장산과 감투봉 사이의 배창골로 올라 황장산으로 오른 것이다.
알바보다 더 황당한 구간 빠뜨리기를 해 버렸는데... 일부 다시 차갓재로 갔다 오자는 대원과 그냥 진행하자는 대원이 갈팡 지팡.. 다른 산악회가
뒤따라오는 상황에서 섯부른 역종주는 자칫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집행부의 판단으로 빠뜨린 구간은 추후 숙제로 남기고 일단 진행하자는
김대장님의 설득이 받아들여져 다시 산행은 진행된다. 황장산 내리막길은 직벽... 바위틈에 겨우 줄을 잡고 내려서는 길로 그나마 바위는 얼음으로
코팅이 되어 발 디딜 곳도 없고 위험하기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순간이라도 바위나 나무뿌리를 잘못 밟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길이다. 한사람씩 줄을 잡고 조심, 조심... 그 와중에도 멀리 문경의 야경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꼬마전구처럼 평화롭고
아름답다.
황장산은 경북 춘양의 춘양목과 함께 경복궁을 지을 때 사용했다는 황장목 소나무가 유명한 곳으로 속이
노랗고 단단한 소나무가 많아 황장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 숙종때(1680년) 민간인의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고 관리를
파견해 나무도둑을 감시했던 산이라 하는데.. 궁궐 지을 때 다 베다 써버린 탓인지 지금은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그래도 간간히 보이는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어떻게 지난번 구간은 소나무 구경도 할 수 없었는데... 이곳에만 소나무가 유명한지
모르겠다.
06:35 황장재... 날이 새고 있다 사방이 환해지며 아름드리 소나무의 자태가 더욱 볼만하다. 멀리 동이 트며 전혀 굴곡이 없는 기다란 능선이 신기루처럼 우리가 가야할 방향으로 버티고 있다. 무슨 산의 능선인고? 길은 칼바위 능선으로 이어지며... 오른쪽으로 발 아래는 멀리서 올려볼 때 품위 있던 흰바위들로 산 능선에서 우리에게는 천길 낭떠러지로 다가온다. 점점 사방이 환해지며 앞을 막고 있던 긴 능선은 구름으로 엷어지고 그 아래로 산 능선이 보이며 그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07:20 방곡리 사거리... 치마바위 전망대를 지나 칼 능선은 숲으로 들어가며 지도에 길 주위라고 되어 있는 방곡리 사거리가 나온다. 우회전이 대간 길, 겨우 잡목 숲을 헤집고 나가 일출사진 한 장을 담았는데...여기도 발 밑은 천길 낭떠러지 겨우 배낭에 있던 실장갑을 찾아 그나마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겨울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집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주중에 사다준 장갑도 두고 오고, 내준 겨울바지도 벌써? 하며 그냥 여름바지로 입고 왔더니 손은 곱아서 펼 수가 없고 허벅지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 때문에 괴롭기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선생님도 나처럼 같은 처지이고, 김과장님은 쉴 때마다 속내복을 자랑스레 보이시는데... 부럽다.
07:45 폐백이재..능선이 잠시 아래로 주춤하며 바람이 잦아드는 곳에 앞서간 일행 두 팀이 몸을 녹이려 라면을 끓이고 있다. 최대장님이
특별히 비싼 놈으로 사오셨다는 고량주 한잔에 라면 한 젓가락을 받아먹으니 아! 행복하다. 빈말로라도 더 먹으라 권하기는 하지만 라면 한 개에
다섯명이 서있는 상태라 더 있지 못하고 먼저 출발하는데... 저 라면에 뜨건 뜨건한 국물까지 훅하고 마시는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거시기할까?
928봉 오름길 북사면에 1미터 정도 길옆으로 서릿발이 볼만하다. 일행들을 비켜 한 장 담으려는데... 예의
주요한 순간에는 꼭 배터리가 다된다. 우쒸... 앞 가방의 새 배터리를 교환해도 이제는 먹통이다. 오르막 북사면이라 해는 없고 바람은 거세고
손은 얼어 곱아 오는데... 사진기는 암만해도 먹통이고... 지나가는 일행이 다들 한마디... 지금 얼면 영하 이십도에는 어떻게 찍나? 저거
완전히 여름용이네!! 친구 사진기인데 어떻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정신적 피해까지... 그러다 여름용마저 뺏기면 내 손해인데...
08:20 헬기장... 928봉 하산길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잘 관리된 헬기장은 만난다. 여기에서 벌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에 막히는 게 없어 차소리도 들리고 포크레인 작업하는 소리도 다 들리는데... 엄청나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 사이로 간간히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진짜 착륙하는 줄 알고 머리를 들어 봐도 실제로 보이지는 않는데... 아마 포크레인 착암기 소리인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잎 떨어진 나무틈으로 벌재 포장도로가 보이고 앞서 내려간 일행이 손짓으로 길을 가리켜 주시는데... 길옆으로 무슨 공사를 하는지 산에서 내려오는 길을 직벽으로 20-30미터 절개 해놓고 대간 길이 내려오는 절개지에 위험 표시로 줄만 한 개 매달아 놨다. 사방이 보이니 망정이지 한여름 숲이 울창할 때면 엄청 위험하겠다.
08:30 벌재(625)... 문경에서 단양으로 가는 975번 지방도로의 고개 마루 윤대장님의 늘보 공식 막걸리를 두 잔이나 받아 마시고 다시 출발... 길은 야트막한 능선을 U자로 돌아 다시 콘크리트 임도로 내려서는데... 좌측 120미터에 '산악인 휴게소'라는 나무 팻말이 잠시 유혹을 하지만 방금 쉰 상태라 그냥 통과... 다들 벌재에서 쉬고 오니 10분 거리에서 또 쉬기는 그런데... 지도에는 월악농장으로 되어 있음. 휴게소 소장(?)님은 벌재에다 안내 팻말을 하나 더 붙이면 영업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니면 말고.. 본격적으로 823봉으로 오르막 깔딱 길, 우리의 호프 막내대원 화원중 1년 한준구 군이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데. 이 여사님도 비켜주고 지난번 밤티재 산행에 비오게 만들어 대야산 못하고 용추로 탈출하게 하고는, 그 담 번 숙제하느라 은티마을까지 14시간 죽는 날은 힘들까봐 안 오시고, 오랜만에 오늘 나타나서는 차갓재 빼먹게 만든 총무님도 비켜주시고 둘이서 한 팀 만들어 씽씽 가는 데... 그래도 능선 전 해 비치는 쪽이라 따뜻한 게 살만하다.
09:00 산불초소... 시골의 원두막처럼 알미늄 샤시로 산불초소 지어 놓고 사방에 유리창으로 문 달아놓고 계단과 이어진 바닥은 널빤지 한 개정도 뚫어 놔 들락거리게 만들어 놨는데... 그것만 막으면 추울 때도 비박하기 좋겠다. 이제 길은 옥녀봉을 향하여 해발 300미터를 높이는데... 능선 바로 아래까지는 온화하다가 능선만 오르면 사나운 바람이 사방을 에워싼다. 우리 나라 삼대 바람골로 설악 대청과 영암 월출산 그리고 소백산이라 들었는데... 우리 일행의 다음 산행지가 소백산이 시작되는 죽령이니 바람이 벌써 마중을 나왔나? 잎 떨어진 나무가 좌우로 일렁이며 숲도 울고 산도 운다. 울면서 겨울을 부른다.
10:00 문복대(1,074)... 같이 천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황장산은 산 이름을 얻었고, 만복대는 정상 표시석에는 문복대로 했다가 지도에는 옥녀봉으로 되었다가 그 아래 안부는 문봉재로 되었다가 중구난방이다. 바람이 잦아든 곳을 찾아 쉰다는 것이 앞서 도착하신 대원님의 호의로 매실주로 정상주 하고 기다리다 김과장님 막걸리에 백사장님 감자 부침에 여기 저기 참견하다 보니 40분이나 놀았다. 이제 내리막 1시간이면 오늘의 종착지 저수령이니 급할 것도 없다. 하산길 왼편으로 속리산목장의 드넓은 평원과 푸른색 지붕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오늘의 목적지 저수령이 멀리 발아래 있다. 대간길이 다 그렇듯 급격한 하산 길에 시멘트 포장 임도가 나오고 다 온 분위기인데... 임도 따라 좌측으로 그냥 가면 낭패다 목장으로 가는 길이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 작은 봉우리를 돌아 내려야 오늘의 목적지 저수령이다.
11:30 저수령 (850)..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을 넘는 573번 지방도로로 옛날 험난한 고개 길을 넘는 사람들이 저절로 머리가 숙여져 저수령이라 했다나? 하도 바람을 많이 맞은 날이라 온몸이 얼얼하다. 휴게소의 따끈한 뼈해장국이 일품이었다. 지난번 산행 후 하도 일이 바빠 퇴근이 늦어지고, 장금이 보랴, 술자리 나가랴 게으름을 떨었더니 산행기를 왜 늦게 올리냐고 걱정을 하시는 고마운 우수(?) 독자분들이 계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태만해지지 않도록 편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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