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2. 7 04:30~12:37(17Km, 8시간)
산행구간 : 추풍령(220)-사기점고개(390)-작점고개(340)-용문산(710)-국수봉(763)-큰재(320)
날씨 : 쾌청
정월 대보름을 이틀지난 커다란 보름달이 머리 위에서 휘엉청 밝은데... 한쪽에서는 잠시였지만 눈발까지 날리며 일기가 불순하다. 몇일전 남부지방에는 폭설이 내린데다.. 몇일째 영하 7-8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계속되고 있어 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3주만에 만나는 반가운 대간 동료들의 얼굴을 보니 다시 등산 기운이 솟아나고 있다. 추풍령휴게소.. 일부는 아침 식사를 하고 일부는 선잠을 털고 출진준비를 서두르는데... 아무래도 주중에 눈 소식이 있었던지라 다들 스패츠를 준비하는 중에 유독 두 사람만 고집을 피우며 그냥 나선다. 나중에 고생할텐데... 누군지는 말 못한다.
04:30 추풍령 휴게소...준비를 마친 대원을 싣고 버스가 출발하기에 아하! ‘등산로 입구까지 태워 주는 구나’ 하는데 웬걸! 톨게이트 지나자 차를 세우며 다들 내려 다시 역으로 톨게이트를 지나 아까 버스가 있던 자리까지 다시 걸어간다. 도대체 뭔 일이어 시방!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아마 앞자리에서 버스가 등산로 입구까지 태워 주는 것도 좋지만 지난 산행이 눌의산에서 하산해서 고속도로 지하통로 입구에서 휴게소로 왔으니 정확히 대간 금을 잇자는 의견이 있었는듯 싶다. 나도 내심 거리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찝찝했는데... 잘됐다.
지난 산행에 이어 고속도로를 지하 통로로 지나고... 경부선 철도를 건너 마을을 통과하는데... 개 한 마리 짖지 않고 사위는 적막, 아마 개까지 짖으면 사람 다 깨겠다. 국도와 만나 우회전 김천쪽으로 150미터 정도 왔나? 또 국도를 가로지르는 기차길이 나온다. 뭔 기찻길? 대답은 바로 나온다. 기찻길이 지나자마자 길을 좌회전해서 산쪽으로 향하고 삼거리에는 추풍령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이 기차길은 우리가 오늘 오르려는 금산을 허물어 철도 잡석을 나르는데 쓰이는 길인 모양이다.
대간이 길 같지도 않은 집 뒤의 텃밭 오르는 길로 오늘의 산행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오르막이라 숨이 가빠온다. 잡목 숲 사이로 발목정도 얕은 눈이 잘 다져져 있다. 한 20분 먼저 오르기 시작한 가고파 산악회 대간 대원들의 도깨비 불이 저만치서 춤을 춘다. 이제 길은 경사가 가파라지며 금산 정상 부근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익히 들어온 바와 같이 백두대간의 최대 회손 현장이다. 어둠 속이지만 아찔해서 발밑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정상부터 파헤쳐 놓았다. 그래도 마루금은 남겨 놓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산이 무너질까봐 파헤친 마루금을 따라 폭 1미터 정도는 콘크리트로 지지해 놓았는데... 이것이 통째로 무너질까봐 걱정이 되어 산아래 쪽은 보는 둥, 마는 둥 얼른 내려와 버렸다. 내리막은 경사가 급격하게 떨어지니 조심 조심...이제 대간길은 추풍령마을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야트막한 야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경사도 심하지 않고, 길도 그렇게 까지 미끄럽지 않고 상쾌한 새벽이다. 멀리 보이는 추풍령 마을의 붉은 색 나트륨등이 흡사 미군부대 같다.
제일 뒤에서 출발했는데... 이제는 앞쪽, 야트막한 고개 마루에서 잠시 휴식을 갖는다. 아직까지는 전혀 스패츠가 필요 없는 길,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데... 계속 스패츠가 필요 없는 길이면 배 아파 어떻하나? 길은 이제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두껍지도 않고 한 30년생 정도 조림된 상태에서 간벌이 되지 않아 엄청 밀식되어 있는 소나무 숲 사잇길로 선수들이라 전 대원이 한줄로 진행이 엄청 빠르다.
06:55 사기점갈림길... 김천쪽에서 영동 작점리로 넘어가는 도로가 대간을 질러간다. 길은 사기점고개를 넘어 묘함산 KBS 송신중계소로 향하는 콘크리트 도로와 만나는 데.. 보통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도로를 만나는데... 대간길이 아래에서 위로 오르며 길과 만나니 색다른 느낌이다. 여기서부터 설왕설래... 윤대장님이 길을 알고 있어 콘크리트 길을 따라 내려가려 해도 묘함산 능선을 고집하는 분들과 또 벌써 길을 버리고 그쪽으로 간 눈위의 발자국도 보이는데... 그리로 가면 옥계리로 빠져 대간길을 놓지는 수가 많다는데... 하여튼 묘함산은 대간길이 아니다. 이제 날이 훤하게 새온다.
길이 마치 우두령 폐초소에서 바람재로 내려오는 길과 흡사하게 생겼다. 콘크리트 포장길은 경사가 급해 차량 통행이 없는지 수북히 쌓인 눈에 발자국만 무성하다. 잠시 도로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 갔다가는 다시 도로로 나오고 오른쪽으로는 축사나 계사인 듯한 기다란 스레트 지붕의 건물이 5-6개 연이어 붙어 있고 그곁을 지나니 동물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하는데... 내려와 보니 입구 간판에는 신애정신병원이라 쓰여 있었다. 좌측으로는 2기의 묘지와 납골당이 보이고 그 옆으로 작점고개로 이어지는 숲길에 많은 표식기와 함께 들머리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100미터 우회하면 큰길로 작점고개와 이어져서 그런지 숲길은 눈이 소복히 덮힌 체.. 발자국 하나 없이 사람이 다니질 않는다.
07:50 작점고개(340) 김천 어모면에서 추풍령으로 넘어가는 포장도로 고개 마루에 도경계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사기점고개에서 이곳까지 알면 쉽고, 모르면 당한다. 대장님이 길을 잡아 바로 왔기에 망정이지.. 단독 대간꾼 이면 첫새벽에 누구에게 물을 때도 없고 고생깨나 했을 구간이다. 그만큼 길이 헷갈린다. 이제 떡과 음료로 아침식사. 묘함산 북쪽 어깨 언저리가 붉게 물드는 게 해가 오르려나 보다. 그러나 너무 산밑으로 내려와 있어 제대로 된 일출 보기는 틀렸다. 대체로 오늘이 일정은 눈이 잘 다져져있어 오르막은 수월하고 내리막은 조심스러운데... 8시간 넘는 길을 평소와 같이 빠르게 행군하는 형태라 아이젠을 차기도 그렇고... 벗기도 그렇고 오르막은 다행이고 내리막은 조심조심 일부 구간은 잡목처럼 빽빽이 들어서 있는 가느다란 소나무를 이리 저리 피해가며 대간길이 이어지고 있다.
<묘함산과 송신소>
작점고개에서 사십분 정도(8:45) 오르니 갈현이라는 우마차길이 나오고 그곳에서 다시 15분 정도 오르니 지도상에는 ‘기도터바위’라 되어 있는 고개 마루에 폐초소 같은 움막이 지어져 있고 때묻은 담요 등이 있는 걸 보니 이곳까지 올라와 기도를 드리는 모양이다. 우리보다 먼저 오르던 가고파 대원들과 우리 대원들이 섞여서 오르기 시작한다. 아마 우리의 진행이 빨랐나보다. 다시 계속되는 오르막길.. 넓은 헬기장 같은 687봉에 오르니 전망이 그만이다. 앞으로 용문산과 국수봉이 보이고 뒤로는 가성산과 눌의산이 손에 잡힐 듯 확연히 보인다. 10월 산행 이후로 거의 4개월 만에 새소리가 들리는 게... 봄이 가까워졌나 보다.
<고속도로 건너편 대간/가성산, 장군봉, 눌의산>
10:00 용문산(710) 맑은 날씨이긴 하지만 엷은 안개가 있는 듯 하다., 등산을 하기엔 최고의 날씨이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눌의산까지 북으로 달려오던 대간이 묘함산까지는 옆으로 걸으며 고속도로와 철도를 건너고 다시 작점고개부터는 북으로 길을 잡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특히 용문산 아래에는 유명한 기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이 곳이 엄청 기도발이 받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또다시 파티의 시간 오늘은 대원간의 차이가 거의 없어 다들 모여 막걸리와 고량주로 정상주를 하고, 이여사님의 청양고추 들어간 보온병의 따뜻한 미역국은 엽기적인 환상이었다. 또한 백사장님의 녹두전은 늘보의 빠질 수 없는 명물이 되었다. 용문산 정상에서 다 모인 김에 전 대원이 기념사진까지 찰칵..
10:45 기도원으로 내려가는 소로 길이 만나는 곳, 용문산 내리막 길은 경사가 심하다 이제는 눈도 많아져 일부 구간은 종아리 까지 차오고 이 소로길로 떨어지는 길은 특히 경사가 심하다. 또 오르막이며 내리막이 군데군데 바위길 까지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기도원 부근인지 예배당의 스피커 소리가 대간 길 까지 들려온다. 교회는 다니지 않지만 그래도 약간은 시골스럽고 친근하다.
<용문산 기도원/기도발이 죽인답니다.>
11:20 국수봉(763) 오늘의 상봉이다. 지도에는 790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 정상석에는 763으로 되어 있다. 맑은 날씨이긴 하지만 정상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빙둘러 사방이 전망이 그만이다. 이제 12시가 가까워지니 눈이 다져지며 화창한 날씨에 약간 녹기 시작하며 내리막이 여간 힘들지가 않다. 잡을 것도 없고 경사도 심하고 조심하고 있는데... 생전 듣기 힘든 까마귀가 숨 넘어 갈듯 까악 까악 거리는데... 뭔놈의 까마귀가 저리도 험하게 울어 대는고?... 하는 찰라 몸이 붕 떠지더니 순간 눈 앞을 스치는 발부리의 바위 모서리에 히프가 제대로 박히면서 헉--- 숨을 쉴수가 없다. 뼈가 다쳤나보다. 별이 보이는 게 아니라 숨이 턱 막히며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끔 흐르는데...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김과장님을 먼저 가시게 하고 눈앞이 뿌연 상태에서 숨을 고르고 겨우 한발씩 내려오는데... 남의 불행 어쩌고 하더니 내가 쌤통으로 당했다. 집에 어른들이 눈길 조심하라고 전화로 신신당부 했는데...
눈 쌓인 국수봉 내리막길 이거 보통이 아닙니다. 겨우 기어서 내려오는데... 다른 일행들은 아예 미끄러진 김에 히프 썰매로 내려온다. 저렇게 다져진 길이 얼면 더 죽는데... 얼핏 내려와 보니 국수봉에서 683봉을 지나 475봉으로 떨어지는 일직선상의 길이 3단 폭포처럼 눈길이 하얗게 이어지고 있고 마치 롤러코스트의 레일처럼 보인다. 국수봉에서 큰재 까지는 거리도 3키로 가까운 게.. 마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악산에서 여시골로 내려오는 길 같다. 엉치뼈에 신경을 쓰고 가다가 머리위를 신경 못쓰는 바람에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머리까지 호되게 부딪치고.. 맙소사!!. 누가 머리에 닿으니 부러뜨린다는 것이 날카롭게 되어 아주 뾰족한 호미처럼 머리를 찍는데... 오늘 세 번이나 머리를 부딪쳐 아주 머리가 우둘두둘하다. 내참! 오늘은 최악의 날이다.
12:37 큰재(320) 절룩거리며 기다시피 버스가 보이는 곳에서 삼십분도 더 걸려 큰재에 도착했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없다. 김천 장동에서 영동 신곡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건너 편에는 폐교된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가 보인다. 힘들고 고달픈 하루였지만 그래도 우습게 보았다가 호되게 당한 하루였다. 대간! 어디 만만한 곳이 있습니까!! 선배들의 말씀이 귀에 어른거린다. 그날 스패츠 끝내 안 찬 사람도 호되게 고생하고 맨 마지막에 도착했는데... 매번 맨 마지막에 도착하시던 이여사님이 감격스러워 한마디 했다. “고맙다, 내 뒤로 오는 사람이 다 있다니!!”
추풍령 휴게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찌개가 끓고, 베이컨에 감자볶음이 올라오고 빈손으로 호사스런 만찬에 초대되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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