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3구간(비재-문장대/천황봉)

마운차이 2005. 7. 22. 13:47

일시 : 2004. 3. 21 04:15~14:30(18Km, 10시간 15분)

산행구간: 비재-갈령삼거리-형제봉(803)-피앗재-속리산(1,057)-입석대-문장대(1,015)-시어동

날씨 : 흐린 후 맑음



  오늘은 속리산 구간 일부가 산불 통제로 입산금지 기간이라 산악회의 공식 산행은 불가하고 나는 다행이 산림청에서 발행하는 산불감시요원증이 있어 몇몇 일행과 대간을 진행한다. 


  기상관측 이래 처음이라는 경칩 대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되고 차와 사람이 많게는 20여 시간이나 발이 묶여 꼼짝을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혹시나 우리 산행도 문제가 있을 거 같아 당일 아침 산악회에 문의하니 그래도 강행 한단다. 단단히 맘을 벼려먹고 각오를 다지는데... 오후 들어 고속도로는 풀렸으나 국도나 지방도의 불통으로 산 아래까지 접근이 불가하고 산행에서도 폭설에 따른 문제점 등으로 산악회에서 부득이 산행 연기를 통보해준다. 결국 대간을 못하는 일까지 발생하니... 산이라는 게 내가 갈라고 맘만 먹었다고 갈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산이 허락해야 가능한 것이다.

  결국 수원 경기대 입구 광교산에서 시작해서 정신문화연구원 뒤 청계산 자락까지 6시간의 종주 산행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딱 한달 만의 대간 산행,  원래 예정대로 대간 일정은 진행하고 폭설로 빠진 구간은 5월5일 어린이날 진행한다는데... 내가 보기에 요즘 애들은 매일이 어린이 날이지만 그래도 벼르고 있는 날인데 아버지의 산행을 봐줄지 모르겠다. 더구나 5월 1-2일 죽령에서 고치령, 8-9일이 직원들과 보성 제암산의 철죽제 산행에 5일까지 간다면 ... 애, 엄마 할 거 없이 이구동성으로 집에서 나가라고 할텐데..... 자신이 없다.     

04:15 흐린 날씨에 구름이 끼어 달이고 별이고 볼일이 없다. 답답한 차에서 내리니 상쾌한 봄바람이 정신을 맑게 해주는데... 아직은 겨울끝이라 쿨맥스 티와 집티만 겹쳐 입었더니 약간 한기도 느끼는데... 조금 산행을 하면 금방 땀이 날테니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동관리 주유소에서 차를 두고 다리 하나 건너면 비재로 향하는 입구가 비포장 도로인데... 5분여를 걸어가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어! 충분히 차가 들어올 자리인데... 왜 안 데려다 주고 걸리는 거지? 워밍업을 시키나? 20분이나 도로를 터벅터벅 걸어 비재... 오늘 등산의 시작점이다. 처음부터 경사가 있어 숨을 헐떡이는데... 한 달만의 대간이라 몸이 적응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급경사를 치고 올라 510봉에 이르니 우리가 출발한 주유소의 불빛이 먼발치서 비추고 있다. 하지만 불빛보고 유유자적 할 분위기가 아닌 게... 바로 길은 올라온 경사만큼 다시 바닥으로 내리 쏘는데... 일반적으로 대간 길 초입은 대충 령, 재, 치, 티에서 한 두 시간 사정없이 올라 능선이나 봉우리에서 어찌어찌 가는 게 정석인데... 오늘은 시작부터 톱니처럼 오르막 내리막이 계속되는데... 이런 길은 처음부터 아주 사람을 잡는다. 게다가 낙엽송 군락의 떨어진 잎으로 길이 좋은 듯 하더니 슬슬 바위가 나오는 게... 오늘 하루 어떤 길을 가야 할지가 감이 팍!! 온다. 오늘 죽었다.


05:25 소나무가 둘러있는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 첫 번째 휴식시간 미숫가루로 아침을 대신하고, 정신을 차리는 데... 아직은 잠이 부족한 상태라 좀 멍하고 발이 땅에 착착 붙지 않고 왠지 허공에 떠있는 것 처럼 컨디션이 별로다. 벌써 세 번째 그것도 급경사를 오르고 내리고 했다. 초반에 완전히 기운을 소비하고 나면 나중에 거리가 길어질수록 고생하게 되는데... 김과장님도 어제 결혼식장에서 너무 축하를 심하게 한 나머지 상태가 좋지 않고... 백사장님도 이틀간 이사 하시고 입술까지 부르터 겨우 욺직이는 중이고 ... 다들 힘들어 하고 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나타난 최대장님만 기운이 펄펄해서 “야! 나없을 때 니기 호랭이 노릇 했다며” 하고 힘빼기를 하고 있다. 토끼 없으면 호랭이가 왕 노릇 하는 거 당근이지... 바귀었나? 길은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낙엽송이 뒤섞여 이어지며 걷기는 그만인데... 이게 지뢰였다. 내리막 일부는 눈은 없지만 낙엽아래는 얼음이 있는 곳이 있어 앞서가던 이선생님이 그만 미끈하며 넘어지시는데... 이제부턴 다들 조심 조심...


05:50 헬기장... 길은 경사를 더해간다. 여기 어디가 견훤이 목욕을 했다는 못재가 있다는데... 그래서 천지라고도 한다지?... 지도에 보면 반대편의 봉우리가 대궐터산(746)으로 되어 있는게... 이 주변이 견훤의 본거지임을 알 수 있다. 못재는 지금은 슾지로 변해 생태계의 좋은 본보기로 남아 있다는데... 안내문에는 백두대간의 유일한 슾지라 했지만,  전에 지리산에서 장터목방향에서 세석으로 들어오면서도 슾지가 있던 걸로 기억된다. 길이 바위가 많아진다. 커다란 바위는 우회길로 돌아도 가고..


06:20 갈령삼거리(721) 여기서 오른쪽으로 20분정도 내려가면 오늘 버스에서 내린 동관주유소에서 늘재로 이어지는 49번 국도의 갈령. 우리는 길을 좌로 틀어 형제봉으로 향한다. 날이 새고 있다. 날씨가 흐린 탓에 해 구경은 못하지만 사방이 보이니 훨씬 덜 힘이 든다. 길은 오른쪽도 왼쪽도 모두 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있지만 능선의 길이라 계곡까지가 가마득히 보인다. 이곳에서도 계속해서 암릉 길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 속리산이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을 기세이다.

 

06:45 형제봉(832)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마주하여 형제봉이라나... 형제봉은 바위봉이다.  대간 길에 배낭을 벗어두고 바위 위에까지 올라가 본다. 지도에는 828이지만 바위틈에 하얀 표시목에는 832로 되어 있다. 형제봉은 이제까지 경상북도를 지나는 대간이 충북 보은과 만나는 지점으로 문장대까지는 대간이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가른다. 사방이 환해져서 굽이치는 연봉이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멀리 속리산이 천황봉부터 문장대까지의 실루엣이 가마득히 잡힌다. 마치 장흥 천관산의 빼어난 암봉을 보는 듯 하다. 그런데 오늘 저기까지 가야하나? 맙소사!!.

    형제봉에서 윤대장님의 무전기가 급하게 소리친다. 사고가 난 것이다. 백사장님 앞에 가시던 오늘 처음 오신 분이 한번 미끌어지더니 다시 일어나 형제봉 내리막 암릉 길을 서너바퀴 바위에 부딪치며 뒹굴었는데... 광대뼈 부분이 바위에 닿아 사방으로 찢어지고 피가 많이 나고 있다. 서둘러 배대장님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지혈약이 없어 피를 멎게 하기가 힘든 모양이다. 나도 일회용 반창고 말고는 구급약이 없는데... 앞으로라도 미리 준비를 해야 하겠다. 새벽을 여는 시간 계속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암릉 길에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날만도 하고, 해 없는 흐린날이라 기압이 낮아 뭔가가 가슴을 짖누르는 듯 답답한데... 다 같이 힘든 길에 그분이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며 사고가 난 것 같다. 일부에서는 속리산의 음기가 대간꾼의 기를 눌러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니 사고가 났다고 해석을 하는데... 하여튼 누구나 날 수 있는 사고였기에 다시 한 번 조심을 다짐해 본다.

 

<굽은 소나무>




07:25 피앗재(639) 완만한 안부에 소나무 숲속 보은 쪽 만수동으로 탈출구가 있는 길이다. 항상 후미를 살피는 문대장님과 부상당하신 분이 병원으로 가기 위해 내려가기로 했다. 별일이 없어야 할텐데...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천황봉이 많이 가까워는 졌어도 아직도 저걸 어떻게 올라야 하나 엄두가 나질 않는다. 길은 기기묘묘한 소나무의 향연 아름드리 소나무가 옆으로 기는 놈,  한바퀴 돌아 올라가는 놈, 아래는 검은 색, 위는 붉은 색,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여기 어디에 노란색 황금송이 있어 특별히 관리한다고 하는데... 혹시 기회가 있다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길은 본격적으로 천황봉을 향하고 667, 725, 703봉을 오르락 내리락... 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처럼 기생하는 약초가 있어 이채롭다. 

<기생약초>


 

    고도가 높아질수록 좌우에 산죽밭이 이어지고 있다. 대충 허리까지 오는 데 그중에는 키 높이까지 무성한 산죽도 있다. 산죽이 능선과 붙으며 묘지가 나오고 길은 좌로 틀어 천황봉으로 향한다. 다들 지쳐서 힘이 빠져 있는데 선두 배대장 그룹은 정상에 도착했다고 무전이 온다. 더 힘이 빠지며... 좋겠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누가 대신 걸어줬겠는가 다 본인들이 노력한 결과지... 잠시 휴식시간 백사장님이 어디서 구했는지 비스켓이 든 C-레이션을 구해와 오랜만에 맛을 보았다 간식이 궁하던 시절, 저거 하나면 대단한 물건이었는데...


09:45 천황봉 아래 안부... 지도에는 길이 없으나 보은쪽 대목리와 화북쪽 상오리로 갈리는 사거리, 화북쪽이 북사면이라 눈이 아직도 많이 쌓여 있다. 천황봉에서 문장대까지가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라 내리막에서는 눈과 얼음 때문에 고생 좀 하겠다. 땡크같던 윤대장님이 회사일로 과로하여 잠이 부족했다며 뒤로 쳐진다. 흐린 날씨는 해가 떠오르며 화창한 봄날로 변했고, 그 덕에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해 길은 그야말로 진흙탕, 흙 뭍은 신발로 눈과 얼음을 밟아 길이 새캄해 보이지만 잘못 힘이 들어가면 미끌어지기 십상이라 발 내 딛기가 조심스럽다. 흙길과 바위, 계단으로 이어지는 급경사 길 위를 바라다 볼 겨를도 없이 발밑만 쳐다보며 한 발, 또 한발...  

 

<끝없는 연봉>




10:05 천황봉(1,057) 오늘의 상봉이다. 지리산의 상봉을 천왕봉이라 하고 중원의 여제 속리산의 상봉을 천황봉이라 부른다. 좌우 사방으로 툭 터진 장관에 남으로는 끝갈 줄 모르는 연봉들이 굼실굼실 도열해 있고 북으로는 현란한 바위 봉우리가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장식되어 있다. 아! 장엄하다.

    이곳으로 떨어진 빗물이 한강, 금강, 낙동강으로 나뉘어 흐르므로 이곳을 삼파수라고도 한단다. 만찬의 시간 정상주가 오가고 이여사님의 청양고추 미역국이 보온병에서 날개 도친 듯 팔려 나간다. 천황봉에서 문장대는 바위로 이어진 암릉길로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전람회 같다. 또한 맑은 날이라 사방의 전망이 장쾌하다. 입석대로 진행하는 도중 오늘 영동 천태산에서 산행을 하시는 이대장님의 목소리가 무전기에 잡힌다. 으! 마녀님의 목소리도...    

 

<입석대>



11:30 입석대(1,016) 임경업 장군이 경업대에서 도를 닦으시고 세웠다는 기암 기둥이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며 조망하게 되어 있어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시종일관 얼음길과 질척한 얼음 녹은 길이라 진행이 어렵다. 천황문과 내가 이름 붙인 코끼리 바위의 형상이 이채로왔다. 입석대를 지나고 천황석문을 지나자 신선대 직전에 보은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는데... 이곳에 입산통제를 의미하는 나무 기둥으로 길을 막아 놨다. 어디서 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본의 아니게 막아 논 길을 모르고 지나온 것이 되었다. 반대편으로도 사람들의 통행이 많아 몰랐었는데... 아마 금지구역인가 보다. 문제가 생긴다면 몇해 전에 산림청에서 받아 논 산림지도요원증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코끼리바위>


 

 


12:00 신선대 휴게소... 능선에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 대간길에 귀한 휴게소가 있다. 정오의 햇빛을 피해 막걸리 한 잔 하려고 앉았더니 막걸리만 부탁했는데도 주인이 맘대로 감자전이라고 쓱쓱 잘라 만원이라면서 준다. 과일도 있고 해서 막걸리만 달라 한 건데... 주인의 야박한 상술에 맘이 상했지만 피곤한 몸에 따지기가 뭣해 그냥 참았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냥 넘어가니 저 상술이 통하는 모양이다. 하기사 1,000고지에서 막걸리 보시하는 것도 복 받을 일이지 뭐...


12:45 문장대(1,015) 바야흐로 화창한 봄날의 문장대는 시장보다 사람이 더 붐빈다. 문장대 오르는 길도 이곳 주변 사람들의 평소 사랑받는 장소라 그런지 철계단을 오르막과 내리막을 분리해 놓을 정도로 사람이 많은 곳이고 오늘도 그 계단 한 칸마다 사람으로 이어져 오르고 내리고 있다. 사방천지 막힐 것이 없는 그야말로 중원의 상봉이다. 게다가 기기묘묘한 바위의 어울림이 말로 표현하기가 곤란하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밤티재가 저만치 보이는 데...

    불행하게도 등산통제 구역이라 나야 괜찮지만 일행도 있고.. 모르고야 왔지만 알고는 억지 부릴 수 없는 일, 눈물을 머금고 오늘 등산을 여기서 접는다. 시어동 계곡 하산길은 사람의 행렬로 가득하다. 이 많은 사람들을 통행하게 해놓고는 정작 산행에 대한 완벽한 준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백두대간 종주자에게는 길을 막는 처사가 원망스럽다. 사전에 정확한 인원과 일정을 신고하게 하고, 통제된 인원에게만 등산을 허락한다면 누가 몰래 막아 논 길을 가려 하겠는가?

<바위위의 소나무>



14:30 시어동 매표소... 산불금지 기간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등산로에 표를 파는 행위가 아이러니하고, 가야할 길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접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오늘 10시간의 산행 피로보다 더 진하게 다가온다. 언젠가는 또 나머지 길을 잇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따로이 써야하지 않겠는가... 이래 저래 피곤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