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4구간(죽령-고치령/비로봉, 국망봉)

마운차이 2005. 7. 22. 13:50

일시 : 2004. 4. 4 03:00~13:40(22Km, 10시간 40분)

산행구간: 죽령(696)-제1, 2연화봉-비로봉(1,439)-국망봉(1,420)-상월봉-고치령

날씨 : 맑음


   지난 해 12월 7일 하루 종일 불어대던 세찬 바람을 뒤로 하고 죽령을 떠난 지 4개월 만에 다시 죽령을 찾는다. 요즘은 저 아래 터널을 통해 빠르게 싱싱 다니느라 일부러 올라오지 않으면 지나칠 일도 없는 길... 25년 전 대학 1학년 때 친구, 선배 10여명과 겨울 여행을 하면서 비포장 죽령 길에 눈이 쌓여 버스가 제대로 올라가지 못해, 내려서 전 승객이 위험을 무릅쓰고 버스를 밀던 길,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앞자리에서 토를 달면서 나에 대한 관심을 우회로 나타냈던 지금의 집사람과 추억이 어린 고개다. 윤달의 보름달이 휘엉청 밝은 밤에 대간을 시작한다. 오늘은 늘보에서 2차 대간팀을 모집하여 신입 이등병(?) 분들과 소백산이 명산이라 찾는 인원이 늘어 버스가 2대나 출발하는 대군이 욺직이게 되었다. 이대장님 입이 귀에 가 붙었다. 예전 같으면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완행으로 희방사역에 내리거나 통일호는 희방사역에 안서니 새벽에 풍기역에 내려 희방사 등산로까지 걷는 것이 소백산 등산의 시작이었다.   

03:00 죽령(696) 상대가 국립공원이고 시절이 산불금지 구간이라 하수상하니 이대장님이 전 대원에게 랜턴 금지를 명한다. 그래도 보름달이 머리 위에 있고 등산로라지만 잘 닦여진 콘크리트 포장길이라 걷는 덴 지장이 없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80명 가까운 왕건이 고객을 맞이하느라 국립공원 입장권 표 끊는 아저씨가 평소와는 달리 잠도 없이 지키고 있다. 늘보 대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힘이 펄펄 넘쳐 4열 종대로 가파른 죽령 길을 산악구보 하듯 오르고 있다. 이거! 오바 하는 거 아냐? 갈 길도 먼데... 첨부터 이렇게 빡씨게 나가면 나중에 힘들 텐데... 보다 못해 뒤 따라오던 윤대장님이 선두 반보! 반보! 하고 외쳐도 고장 난 땡크는 앞으로 만 앞으로 만 나아가고 있다. 30분경과 도로에 눈이 슬슬 비치더니 이제는 아주 길 전체가 눈길이다. 언제 지나갔는지 자동차 바퀴자국을 따라 대오는 2열종대로 이어지고 버석 버석 눈 밟는 소리가 재미는 있지만 길은 미끄럽기 시작한다. 이거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겠는데요!! 죽령 아래 마을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04:15 제2연화봉(1,357) 거의 한 시간 만에 해발 6백을 치는 ‘로봇트 태권V’의 산행을 강행했다. 다들 정신이 나간 거다. 요즘 사진 몇 장에 정신이 팔려 항상 꼬래비에 진행이 늦어 오랜만에 앞쪽에서 미친 듯이 올랐더니 직선으로 오르던 길이 오른쪽으로 틀어 오르며 고도를 높이는 순간... 저 아래서 늘보! 늘보! 하고 이대장님이 외치고 있다. 윤대장님이 선두 반보! 하며 앞으로 나가는 순간에 선두는 좌측의 천문대 길을 놓치고 길 따라 송신소쪽으로 진행했던 것이다. 알바!..... 우쒸 숨이 턱에 차도 죽도록 걸어 제일 앞쪽으로 왔더니만 알바라니... 천천히 오던 일행을 이대장님과 천문대 입구에서 쉬고 있고... 죽도록 힘 빼던 선두는 알바 하고, 오던 길 되집어 내려와 쉬고 있는 일행 뒤에 붙는다. 내참 세상이란 게... 열심히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길은 포장도로에서 좌측으로 틀어 본격적으로 등산로에 접어든다.


04:40 천문대(1,383)...  육중한 구조물이 어스름에 길 오른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소백산 천문대,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천문연구원 산하기관이다. 밤이라 아직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7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천체 관측을 도맡아 하는 곳으로 ‘별 볼일이 있는 곳이다’. ‘긴 오르막을 오르니 설국이었다’ 일본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대목처럼 죽령에서 등산을 시작하면 만만치 않은 경사 길을 올라 이곳에서 소백능선과 만난다. 지난 2-3일전의 많이 내린 비가 이곳에는 눈으로 내려 길이 무릎까지 빠진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실장갑만으로는 손이 곱아오고 땀이 나고는 있지만 온도가 많이 떨어져 보온을 위하여 고어택스 자켓을 얼른 걸친다. 본격적인 동계산행이다.

 

    왼쪽 능선 발아래로는 윤달의 보름달이 저물어가고 랜턴불에 비친 상고대의 터널이 환상을 연출하고 있다. 아!!! 죽인다.

  


    소백산의 주능선은 많은 부분이 나무 계단으로 길이 이어져 있다. 워낙 등산객이 많아 산이 감당해 내지를 못하는 터라 관리공단에서 아예 길도 보호할 겸 나무로 길을 만들어 놨는데... 등산객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계단이 발걸음과 인터벌이 맞는 것도 아니요, 스틱을 찍자니 계단 사이로 빠져 잘못 빼다간 부러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자연을 보호하자니 할 수가 없다.

 


05:30 제1연화봉(1,394) 천문대에서 2Km 왔고, 비로봉도 2.5Km 남았다고 나무 이정표가 말해준다. 눈 속의 겨울이지만 아침이 밝아오며 새가 울고 있다. 이쁜 것들!! 사위가 밝아오며 어슴프레 소백의 주능선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산이라 소백산이란다. 작년에 도솔봉에서 바라볼 때도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었고 도솔봉에 오르며 천상세계의 상고대를 다시 오면 볼 수 있을까 기대했더니 소백산 대간 귀신들이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이렇게 기대 이상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준다. 감사!! 감격!!

 

 


06:30 대피소.. 비로봉아래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간다는 주목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지대를 만들어 놓고 대피소를 지어 놔 등산객들이 바람도 피하고 휴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오늘도 바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바람이 많을 때에 비하면 무지하게 젊잖은데... 10년전 집사람과 여동생이랑 같이 비로사에서 올라 이곳 대피소를 거쳐 희방사로 하산한 기억이 있는데... 비로봉에 하도 바람이 많이 불어 집사람과 여동생은 먼저 대피소에 내려와 있고 나는 배낭짐이 무거워 발걸음이 더딘 바람에 흙바람까지 날리는 비로봉 바람에 일어서지 못해 30분에 걸쳐 기다시피 내려왔더니 두 사람이 기다리다 내가 뭔일이 난줄 알고 울먹이고 있던 자리인데... 그만큼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센 바람이 부는 곳이다. 그냥 지나치다가 이대장님이 계속 부르는 바람에 대피소에 잠시 들려 사람의 온기로 뿌여케 된 안경을 닦고 잠시 쉬어 본다.

 


06:45 비로봉(1,439) 대피소에서 비로봉은 완만한 능선이다. 옛날과는 달리 주변에 나무로 목책도 해놓고 해서 바람에 날아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우연히 조망이 좋아져 천문대가 있는 봉우리가 보이길 레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두터운 구름이 심술궂게도 시야를 가린다. 오늘의 상봉을 알리는 비로봉 정상석도 눈에 얼어 추운 모습이다. 얼마나 바람이 많은 곳인지 국망봉으로 하산하는 길 내내 계단에 둘러쳐진 동아줄이 두세배 두꺼워져 있는데... 눈이 바람으로 들러붙어 그것도 환상적인 모습이다. 오른쪽 멀리 죽계계곡에서 이어지는 죽계호가 눈이 들어온다.

 

 

08:05 국망봉(1,420) 초암사로 해서 죽계호로 떨어지는 삼거리를 지나 햇빛이 잘 드는 양지녁에 오늘의 제2봉 국망봉이다. 바람이 많이 잦아들었고 쏟아지는 햇살이 눈에 반사되어 얼굴이 다 익을 정도이다. 국망봉부터는 이제까지의 장쾌한 소백능선에서 벗어나 기존 대간길과 같은 길이다. 다만 바위가 약간 많아 조심해야 하고 내리막 바람골에는 눈이 가랑이까지 빠진다. 선행자가 있기는 하지만 이틀 전 내린 눈이라 러셀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보폭이 맞지 않는 길을 발자국 따라 푹푹 빠지며 진행하니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 뭉쳐 오른쪽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이제 절반정도 온 거 같은데... 다리가 고장나면 큰일이다. 조심스레 한발 한발 걷다가 눈이 녹는 내리막에 미끈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오른쪽 다리가 접혀 무릎으로 짓이기며 땅바닥에 내리 꽂았는데... 숨을 못쉬겠다. 쥐가 나려는 자리가 끊어지는 것 같이 아프고... 무릎이 돌부리에 닿았는지 정신이 몽롱하다. 주변에 누구 부를 사람도 없다. 잠시 앉은 채 호흡을 골라보니 전화위복이라고 순간적으로 아파서 혼났는데... 쥐가 난 다리는 그 덕에 풀렸는지 걸을 만하다.

<국망봉에서 본 소백 흰머리>

 

    상월봉은 우회 길을 잡았다. 앞서가던 일행이 내가 도착하자마자 출발한다. 남은 죽다 살았는데... 최대장님은 아까 대피소에서 자랑만 하던 고량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고 걱정(?)스레 고소해하고 평소에는 앞에서 잘도 가드니만 오늘은 나와 같이 가며 발걸음을 잡는다. 50분에 한번 씩 뱃속 거지들에게 먹을 걸 주지 않으면 위장을 파먹는 다나.. 어쩐 다나.. 하여튼 그덕에 나중에 고치령에서 트럭도 못타고 끝까지 걷는 행복을 누렸고 버스 출발한다고 해서 점심도 굶었다. 도움이 안된다.   


10:00 연화동 갈림길(1,015) 상월봉이 4,5Km 마당치가 2.5Km 이곳에서 하산하면 우리 버스가 있는 곳이다. 이곳과 버스 그리고 고치령이 삼각형이다. 삼각형의 두 변을 가야 오늘의 종착지다. 이제 길은 눈이 사그러지고 덕분에 질척이는 진흙길이 주종인데... 겨울에서 봄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윤대장님 덕분에 첨으로 공식 막걸이 얻어먹고, 최대장님의 약간 거북스러운 닭발이 보기는 그래도 먹을 만은 했는데... 뼈 빼고 나면 먹을 건 없다. 길은 잡목 가지가 무성하다. 윤대장님이 안경알이 빠져 눈에 박혔는데... 눈 좋은 여러 사람이 찾다가 밟을 거 같아 피했더니 그래도 안 좋은 눈으로도 알을 찾아오신다. 다행이다.


11:26 마당치 양지바른 곳에 늘보 일행이 해바라기 하며 쉬고 있다. 다들 무리지어 출발하는데... 최대장님 타령에 또 한번 쉬고 일행과 5분정도 차이가 난다. 형제봉 삼거리에는 국망봉 9.2Km, 고치령 1.9Km 이정표가 있고 형제봉은 대간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경계는 대간에서 벗어나 형제봉을 지나고 있다. 이제 대간은 다음 구간부터 드디어 강원도와 만나게 된다. 멀리 마구령쪽 950봉을 넘어야 하니 말아야 하니 힘빼기를 하고 있는데... 아스라이 영주에서 영월 하동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목적지 고치령 도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다음번에 산수 갑산을 오르던 내리던 일단 하산이라니 반갑다. 고치령 아래 영월쪽 하동은 김삿갓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12:25 고치령 왠 심심산골에 포크레인이 넓게 터를 닦으며 공사장이 있다. 분당에서 버스를 타느라 안내를 듣지는 못했지만 이곳은 8Km 정도 세거리 버스종점까지 더 가야 하는데... 민박집 소형트럭이 한 사람당 2천원을 받고 태워 준단다. 그런데... 앞의 일행과 5분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고치령에는 트럭이고 사람이고 아무도 없다. 방금 만차로 내려간 모양인데... 기다리기도 뭣하고 해서 내처 걷는데... 눈길에 하도 고생을 해놔서 다리 무게가 천근이다. 갈수록 계곡은 소를 이루고 얼음 녹은 물에 멱이라도 감고 싶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고... 4Km 정도 가다가 올라가는 트럭이 금방 내려오겠다며 올라갔는데... 한참을 지나 내려온 트럭은 앉고 서고 빈틈이 없다. 뒤의 일행보다 늦게 내려와 뒤죽박죽... 평소보다 2배 늘어난 대원들과 그동안 호흡을 같이 맞추지 못한 새로운 대원들이 간이 매점도 없는 곳에서 점심 준비가 된 일행을 식사하기 바쁘고 다른 일행은 버스 떠나기만 기다리며 불평이 많다. 이래 저래  11시간에 걸친 힘든 산행이 끝났다. 이제 부터는 오늘 보다도 거리도 길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곳이 많다는 데... 더 힘을 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