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2. 22 05:00~11:50(17Km, 6시간 50분)
산행구간 : 큰재(320)-회룡재-개터재-윗왕실-백학산(615)-개머리재(소정재)-지기재
날씨 : 비 쫄딱
인천 공항의 아침... 비가 내리고 있다. 집안 일로 10일간 호주에 갔다가 일정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가족들만 이국땅에 남겨두고 대간 일정에 맞추어 혼자 귀국하려니 집사람이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내가 워낙 강경하니 다행히 이해해 준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전세계에 파급되어 호주에 날씨도 영상 40도에 이르고, 서울도 봄기운이 완연한데... 제주는 70년만의 이상기후라니 자연이 인간에게 서서히 경고를 발하는 가 보다. 밤에 한여름에서 출발하여 10시간 비행 후 새벽에 한겨울 속으로 도착하니 몸이 어디에 장단을 맞추어야 하는지 정신이 없다. 추슬추슬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니 9시 뉴스에는 낼도 하루 종일 비가 오면서 강풍과 천둥 번개가 동반된다나? 이 겨울에 비 맞으면 뼈속까지 시릴텐데.... 가족들 다 팽계치고 혼자 산에 가려니 벌 받나보다. 솜처럼 무거운 몸에 잠까지 뒤척이며 4시부터 남들은 우중산행 준비하느라 바쁘지만 멍하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허겁지겁 바지 위로 오버 트로우저만 입고 비속으로 나선다.
05:00 큰재. 폐교된 인성분교를 지나 야트막한 동네 뒷산으로 산행을 시작 하자마자 비 덜 맞으려고 겹쳐 입은 오바트로우져가 거북스럽다. 원래 갑갑한 건 질색이라 내복도 못 입는데... 겨울용 바지에 한 겹을 더 입으니 몹시 불편하다. 30분 정도 진행하니 대간길을 따라 나란히 회룡재까지 진행하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랑 만난다. 지도에는 이영도 목장이라 되어 있다. 계속해서 비는 내리고 많은 부분이 솔잎 떨어진 길이라 배수가 잘되어 걷기가 수월하나 일부 구간, 특히 내리막이 있는 구간은 발이 미끌리면서 길을 파헤쳐놓아 누구 할 거 없이 바지 양옆이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06:30 회룡재를 지나 커다란 묘가 있는 금잔디 밭에 첫 번째 휴식이다. 비내리는 폼을 보니 왕창 쏟아지고 말 비가 아닌 거 같아 기왕 베린 몸.. 오바 트로우져를 벗어 버린다. 훨씬 시원하다. 다행히 기온이 높고 계속해서 진행을 하니 체온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일부 구간은 솔잎이 물을 먹어 밟을 때 마다 두꺼운 등산신발로 전해지는 땅의 기운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직 사위는 어둑한데... 비가 오니 대원들 모두 컨디션이 저하되어 있는지... 나만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 연신 하품을 토해내나 싶었는데... 앞뒤에서도 계속 하품하는 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구들장에 등 지지며 잠이나 실컷 자봤으면... 길은 공성면 봉산리에서 모동면 효곡리로 넘어가는 개터재를 지난다. 지도를 보니 오늘 하루만에 10개의 크고 작은 임도가 대간을 질러가고 있다. 대간 길이 시도 때도 없이 농로와 만나는 건 그만큼 산이 완만하고 보통 대간으로 도가 나뉘고 행정구역이 갈리곤 했는데... 오늘 우리가 진행하는 길 좌우가 모두 특이하게도 상주시 관할이라 산 양켠의 사람들 교류가 많아서 그런가 보다
08:15 윗왕실. 상주시 소상리에서 효곡리로 넘어가는 임도 위로 4미터 정도의 높이에 대간을 이어주는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동물들의 이동통로 역할도 하는 에코브리지인데... 그곳에 ‘국토의 숨쉬는 곳 여기는 백두대간’이라 써 놓았다. 그 아래로는 작은 잡석으로 길을 포장하고 널찍하게 주차장처럼 공간도 만들어 놓아 우리 일행이 쉬기 좋게 해 놓았는데... 조금이나마 비를 피하려고 다리 밑으로 갔다가 그곳은 바람길이라 엄청 비바람이 몰아치는 통에 그냥 비 맞으며 바람 없는 산 사면에서 아침을 먹는다. 예의 이여사님의 대형 보온병에 걸죽한 미역국이 인기 최고, 백사장님의 잣에 담군 따뜻한 꿀물도 향기롭다.
원래 내 떡도 인기 품목인데... 집사람이 없는 관계로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떡을 들고 나갔더니... 금방 알아보고 ‘떡이 왜 이 모양이냐?’ 고 하길레... ‘집사람이 없어요!’ 했더니 다들 웃는다. 이제 목표는 백화산. 잠시 휴식으로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다들 부지런히 걷는다. 이제는 전 대원이 앞뒤 5분 이내라 크게 차이 없이 진행하고 있다. 비가 내리고 있고, 사방이 가스라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질 않아 사진 한 장 찍을게 없는데... 백화산 오르는 길에 잠시 뒤로 쳐져 물꽃이라도 몇 장 담으려 하는데... 비속에 약간 바람도 있어 가지에 매달린 몰 꽃 찍기도 힘들다.
09:30 백학산(615) 대간 길에서 가장 낮은 구간이라 600미터의 백학산이 오늘의 상봉이다. 하얀색 학이 많이 날아 와서 이름을 그렇게 얻었다고 하는데... 맑은 날이면 소구간의 정상인 속리산이 조망 된다고 한다. 오늘은 가스가 심해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정상 코 밑은 그래도 경사가 있어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사진 찍느라 잠시 늦게 도착했더니 벌써 윤대장님의 공식 막걸리는 끝나고 백사장님의 동대문표 부침개에 김과장님의 막걸리와 우리팀의 최고참 이여사님의 내린 화주로 정상주를 한잔씩 했다. 정상에는 돌로 된 표시석과 나무로 된 하얀색 표시목이 있는데... 오늘 우리랑 같은 구간을 산행한 잔디밭 산악회에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하산 길.. 정상에서 10여분 잠시 내려오니 함박골에서 약국마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와 만난다. 비는 더욱 거세어지고 내리막길을 진흙탕 길이라 신발에는 한 덩어리씩 진흙이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야트막한 무명재를 넘어 길은 밭으로 앞이 확 트이며 남의 밭을 가로질러 과수원 사이의 진흙길로 간다. 만약 농작물을 키우는 계절이라면 불가피하게 밭가로 돌아가야 하는 길인데... 이제 길은 가관도 아니다, 찰진 진흙이 신발이고 바지가랑이고 온통 들러붙어 있다.
11:00 소정재(개머리재, 290) 산에서 내려온 길이 밭과 만나 잠시 내려오더니 과수원 앞에서 좌회전하며 100미터 정도 진행하면 마을길과 T자로 만나 우회전 하면 도로상에 소정재, 땅의 형태가 개의 머리와 흡사하다고 해서 개머리재라고도 부른다. 이제 길은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희한하게도 과수원 밭길을 지나가다가도 잠시 산으로 들어가면 또 깊은 계곡의 심산유곡처럼 까마득히 저 아래로 경사가 이어지는 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소정재 지나 작은 봉우리를 넘어 능선이 내려오면서 농로와 만나는 길에서 반대편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다왔다는 생각에 길을 따라가면 마지막 부분을 빠트리게 된다. 우리 대원 한분도 여기서 길을 놓쳤다고 투덜 투덜...다시 산으로 들어간 길은 의외로 높다. 누군가가 이곳까지 쓰레기를 한 무더기 가져다 버렸다. 애들 타고 노는 꼬마자동차도 보이는데... 산속에서 애들 물건을 만나니 기분이 별로다. 애가 잘못됐는데... 평소 즐겨 놀던 물건이라 가져다 놨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자세히 보니 생활 쓰레기... 아직도 멀었다 싶은 게... 시내를 다니다 보면 자기 차에 담뱃재 버리기 싫어 차 밖으로 담뱃재 터는 사람 자주 보인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다.
11:50 지기재(260)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산이 끝나는 지점에서 차까지 한 100여미터는 진흙길의 압권이다. 더욱이 곤혹스러운 건 신발에 흙을 닦을 시냇물하나 없다. 나도 대충 비석옆의 금잔디에 슥-슥 닦아내고 말았다. 우리보다 약간 앞서 산행했던 잔디밭 산악회 버스가 방금 떠나고... 가고파 산악회는 조금 더 진행 한다는데 아마 1시간 더 가서 신의터재까지 갈 모양이다. 비가 오는 관계로 야외 취사가 어려워져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20여회의 만남을 통해 우의를 갖는 사람들끼리 간단하게라도 형식을 갖춰 모임을 갖고 경조사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다들 공감한다면 늘보에서 주관이 되든 대원들끼리 자발적으로 하든 필요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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