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1. 18 10:30~15:00(11Km, 4시간30분)
산행구간 : 궤방령(310)-가성산(710)-장군봉(616)-눌의산(743)-추풍령(220)
날씨 : 약간 흐림
옛날 어른들이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많다”고 하셨는데... 대간 20회 만에 드디어 집에서 잠자고 아침에 출발하는 당일 산행이 이루어졌다. 불과 예닐곱시간 늦게 출발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토요일이 그렇게 여유가 있고 산행부담도 적었다. 주중에 산악회로부터의 통보에 생각치도 않은 보너스를 받고도 혹시나 하여.. 전체 일정에 그럴 일이 없을 줄 알면서도 산행 중에 대장님에게 혹시 이런 일이 또.. 하니 절대 그럴 일이 없단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혹시 운이 좋아 향로봉 구간을 하게 된다면 총40회의 산행 중 오늘이 20회... 시작이 반이니, 반 했으면 다 한 건가? 군대 계급으로 친다면 이제부터 상병이다. 철모르고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 이등병 일등병을 지나... 저간의 물정도 알고 눈치껏 살림도 꾸려 나가야 하는 위치인데... 어깨가 무겁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부담은 있다.
직원 상이 있어서 금요일 야심한 밤에 대구를 다녀오면서 추풍령을 들렸는데... 이틀 만에 또 추풍령을 향해 가니 바쁘다 바뻐... 겨울에 눈이 없다 했더니 주중에 눈이 내렸다. 오늘은 산에 눈이 좀 있을 거 같은데... 날씨도 포근하고 산행하기는 그만이다.
10:30 궤방령(310).. 지난 산행에서 이곳에 도착하니 10시20분이었는데... 오늘은 산행 출발이 그보다 늦은 10시30분 그래도 날아갈 거 같은 기분으로 산으로 오른다. 산길은 비가 왔는지 낙엽이 푹 젖을 만큼 녹아 있고 좌우로 소로 길이 두 세개 지나며 잡목 숲을 헤치고 나간다. 아직 좌측으로는 논과 밭이 보이고 능선은 활처럼 휘어서 올라간다. 1시간 정도 걸으니 차츰 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데... 고도가 높아지며 눈꽃의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흩날리며 눈이 비처럼 날린다. 새로 구한 Aigle 윗도리는 보온에는 그만인데 습기에는 약한 거 같고..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져 얼른 옷을 벗어 배낭에 메달고 일행과 헤어져 카메라로 설화을 담는데...
<눈꽃>
처음에는 눈꽃이더니 나중에는 바람에 한쪽방행으로 말의 갈기처럼 줄지어 매달린 서리꽃이 장관이다.
멀리서 경부선의 기차소리가 우르릉 우르릉하며 간간히 들렸다가는 사라진다. 좌우가 환히 내려다 보이는 능선에서는 바람도 불고 그 바람에 눈꽃 서리꽃이 날려 온몸으로 감긴다. 설경이 자꾸 붙잡아 한두장 사진을 찍다 보니 자꾸 걸음이 늦어진다.
12:15 가성산(710) 눈에 덮혀 알수는 없으나 헬기장인듯 가성산 정상은 넓고 평탄한 공터인데... 눈이 올 것 같은 엷은 가스너머로 지나온 황악산과 오늘 가야할 눌의산이 보인다. 정상부에는 서너개의 봉우리가 차례로 나오고 마지막 봉우리에는 정성 표시석이 눈꽃을 배경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환상의 상고대... 하산길에 먼저 길을 잡던 백사장님이 이크! 하며 미끄러운 길을 경고 하는데... 가성산의 내리막길이 만만치 않음을 미리 들었던지라 겁먹고 서둘러 아이젠을 찼는데... 급경사 내리막에서는 잠깐 도움이 되는 듯 하더니 습설이라 6발 아이젠 틈으로 눈덩어리가 뭉쳐 평지를 걸을 때는 아이젠 높이 보다 눈덩어리 뭉치가 더 높아 오히려 발이 더 불편하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나 잠시 평탄한 길이 계속되길레 아이젠을 벗었더니 본격적으로 내리막이 한참을 내려가며 미끄럽기가 한이 없다. 그렇다고 벗었는데... 또 차기도 그렇고, 더구나 조심스레 내려가시는 두 어르신 뒤에 다다르니 그분들이 먼저 가라 길을 내주시는데... 고맙습니다! 하고 내려서는데... 미끈! 하며 꽈당*&@ 하고 넘어졌는데... 우쒸, 창피도 하고, 배낭 그물망에 넣어 두었던 미수가루 타온 물통이 넘어지며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는데... 그렇지 않아도 칠칠치 못하게 뭐든 잘 잃어버리고 다니는데... 또 마누하님에게 혼나게 생겼다.
<눈 산호초>
부부처럼 생각되는 두봉의 묘가 나란히 붙어 있는 곳, 묘지공화국이라 문제점도 많다지만 평생을 회로하고 나서 다시 후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고즈넉한 장군봉자락에 누워계시는 대간 귀신들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잠시 간식시간 최대장님은 나한테 시끄러운 소리 안 들으려고 고량주 가져왔다고 했는데... 벌써 앞으로 가버렸고, 이여사님은 보온병에 어묵있다고 했는데... 뒤에서 안 나타나고, 백사장님은 새벽7시에 어디 가서 부침을 사오냐고 하고... 내 뒤로 오시던 윤대장님도 제일 선두로 나가 늘보 공식 막걸리 맛도 못보고.. 오늘은 완전히 공치는 날이다. 눈앞에 보이는 자연의 향연이, 말이나 글로 이루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을, 마음에나 담아 두면 되는 데... 사진 몇 장 남기겠다고 주춤거리다 오늘 손해가 막급한데...그냥 떡이나 먹는다. 그 덕에 뱃살이나 빠지면 좋으련만...
13:20 장군봉(616) 장군봉오르는 눈꽃 터널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기기묘묘한 눈꽃 속에서 이선생님이 사진을 부탁하신다. 눈에 들어오는 그림은 기가 막히는데... 막상 사진은 얼굴이 어두워 선명하지가 못하다. 이대장님이 늘-보! 하는 소리가 들려 서둘러 장군봉에 올라서니 윤대장님이 선두는 벌써 눌의산에 도착했다고 무전이 온다. 크! 막걸리...
내리막은 어디나 어렵다. 눈이 잘 다져진 길에 흙이 붙어 한덩어리씩 떨어진 조각은 시루떡 같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의 초코 누가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 오늘은 맨 먹을 것만 보인다.
<눌의산에서 바라본 가성산과 그 뒤 황악산>
13:45 눌의산(743) 환상의 상고대가 이어지고 있다. 정상석하나 없는 민둥산이지만 황악산에서 이어진 능선이 발밑을 지나 추풍령으로 이어진다. 이제 경부고속도로가 보이고 추풍령쪽 작은 봉우리에는 앞서 가는 우리 대원의 모습도 보인다.
그 봉우리 뒤로가 추풍령이다. 눌의산 지나 작은 봉우리에서 길은 우로 크게 틀어 급격하게 떨어지며 700에서 200으로 순간적으로 500이나 떨어진다, 조심 조심!! 이제 서서히 눈꽃 터널을 벗어나 젖은 낙엽길이 반갑기도 하고 미끄러운 눈길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의 마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좌우로는 과수원의 과수나무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이 추운겨울에도 나무를 손보시고 계시는 농부에게 배낭 맨 한량이 공연히 미안해지는 게... 발걸음을 얼른 재촉했다. 다 내려와 잘 가꾸어진 묘지 뒤로 오늘 우리가 지나온 가성산과 눌의산의 자태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왼쪽이 가성산 그리고 눌의산>
15:00 추풍령(220) 다 내려오니 고속도로 보수공사를 위해 공사장이 질척거리고 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 대간 길 같은데... 우리는 하행선 휴게소에서 육교로 고속도로를 넘어 상행선 휴게소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추풍령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준공일이 1970. 7. 7일로 되어 있는데... 이제 4월1일이면 고속철도까지 다닌다 하니 초등학생시절 고속도로 개통을 하도 요란하게 알리는 경축분위기의 설레임이 아스라히 생각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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