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4.18 03:30~14:00(18Km, 10시간 30분)
산행구간: 고치령(760)-미내치(830)-마구령(800)-갈곶산(966)-선달산(1,236)-박달령(1,000)-옥돌봉(1,242)-도래기재
날씨 : 맑음(시야는 약한 가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라 주변에 행사도 많고, 시신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2월 윤달이 있는 관계로 선산 일이며 문중일이며 일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지난 11일에는 김과장님과 분당 탄천에서 열리는 하프마라톤에 참가하여 완주하는 영예를 안았다.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거리를 처음으로 출전하여 2시간 2분이란 기록도 갖게 되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날리는 탄천에 그늘 천막을 치고 벗들과 같이 하는 시간은... 꽃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가히 신선의 경지였다... 더욱이 투표가 있던 임시 휴일에는 6시에 투표하고 혼자만 산으로 들로 다닌다고 타박하는 어부인 위로 차, 부안 변산의 내소사를 찾았는데... 인공을 가미하여 현란하게 꾸미지 않은 기품 있는 절과 전나무 숲이 인상적이었고, 내친김에 신발이 미끄럽다고 투덜거리는 집사람을 끌고 절 뒤의 관음봉이 하도 좋아 보이길 레... 산 능선까지 오르고야 말았다. 약한 운무로 좋은 전망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서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03:30 지난번 하산 길에 하도 고생을 해서 도래기재 가는 거 보다 고치령까지 오를 일이 더 걱정인데... 버스가 들어가는 세거리 종점에 있는 민박집을 운영하는 마을 이장님이 거의 고물 수준의 1톤 트럭으로 민박집에서 고치령까지 왕복하는 고치여객을 같이 운영하고 계서서 2,000원에 고치령까지 담박에 데려다 준다. 이런 시골 오지에 숙박업과 운수업을 동시에 운영하는 기업가(?)이다.
먼저 와도 소용이 없는 게 나머지 일행이 모두 도착 할 때까지, 하릴없이 쏟아지려는 별을 구경하며 잡담이나 하고 있다. 고치령에는 지금은 불타 없어진 산신각이 있었는데... 세조의 동생으로 조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던 금성대군을 모신 곳... 이곳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단종의 영혼이 태백산으로 스며들어 태백의 산신이 되었고 금성대군은 소백산의 산신으로 되었다고 믿어 이곳에 산신각을 지어 그를 기렸고,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여들었던 기도처라고 한다. 어두워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은 새로이 복원작업이 한참 진행중인 거 같았다.
04:20 요번 산행은 진달래에서 시작해서 진달래로 끝난다. 원래 진달래꽃은 산속 이곳 저곳에 드문 드문 피어 분홍 빛 가녀린 꽃을 피워 내는데... 이곳은 대간 길이 진달래 군락으로 이어져 있다. 작년 이맘때 남원 봉화산 철쭉 군락도 몇 일 전에 지나는 바람에 장관을 놓쳤는데... 이곳의 진달래도 비가 오고 일주일 정도 지나야 만발하여 장관을 볼 수 있겠다. 헬기장에서 시작된 고치령 대간 길은 경사를 높이며 진달래 숲속을 통과하며 이어지고 있다. 왼편의 윗새목 마을의 불빛이 가까워 보이고, 달 없는 그믐의 칠흙 같은 어두운 밤에 영롱한 별만이 하늘 가득히 우리를 반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윤이월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 앞으로 ‘사람과 산’팀이 먼저 산행을 시작했고, 우리 뒤로는 ‘서울시청 대간팀’이 버스 두 대에서 내려 뒤에 오고 있어 조용한 산속이지만 실상은 산꾼들로 만원이다. 늦은목이까지는 소백산 국립공원 구간이라 비로봉과 선달산의 대 구간과 고치령에서 마구령까지의 소 구간을 500미터마다 안내하고 있어 산행이 수월하다.
05:10 미내치(830) 길이 오른쪽으로 굽어 간다. 지난 산행에서 그렇게 눈 길에 고생을 했는데.. 이주일 만에 봄 눈 녹듯이 전 구간 눈을 볼 수가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야! 눈이 있었으면 고생을 했을 텐데... 하고 괜한 걱정도 해보고.. 길이 편하니 선수들 속도도 엄청 빠르다. 길은 흙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두터운 낙엽으로 푹신하다. 날이 새려는 지.. 새들의 지저귐이 감미롭고, 반면에 새벽을 아쉬워하는 부엉이의 소리도 간간히 들린다. 1,096봉을 오르는 길에서 오랜만에 대간에 오르는 해를 볼 수 있었다.
06:10 헬기장(1,096) 두 시간여를 쉼없이 달린 철각들이 잠시 휴식을 갖는다. 늘보에서 준 대간 안내문에는 고치령에서 3시간이라 되어 있는데... 두 시간도 안 결렸다. 오늘 하루 긴 구간을 아는지라 휴식도 잠깐.. 떡하나 까먹고 부지런히 걷는다.
06:40 마구령(810) 산길 8Km를 2시간 20분만에 돌파했다. 고치령에서 8Km 앞으로 선달산까지 7.8Km이니 중간쯤 되는 듯하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의 임곡리와 남대리를 이어주는 길로 비포장도로 이지만 일반 승용차도 다닐 만 한 길이다. 간간히 경복궁을 지을 때 쓰였다는 아름드리 춘양목의 자태가 호방하다. 춘양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하지만 일부 소나무에는 일제시대 송진 공출을 위해 소나무 밑 둥에 상처를 낸 흔적이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있어 선조들의 팍팍했던 삶과 한이 내 가슴에 그대로 전해오는 거 같아 가슴이 아프다. 이곳뿐만 아니라 문경 새재, 울진, 봉화 등 우리 고유의 소나무가 제대로 자리 잡은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천형의 낙인이다.
08:15 갈곶산(966) 거리도 거리지만 오늘 전체 일정이 오르내리막이 심하다. 진달래 숲을 지나니 간간히 소나무와 함께 물푸레나무 군락이 이어지고... 일부는 암릉 길도 있어 지루한 길이지만 변화가 있고, 일부는 낙엽이 푹신한 길이라 걷기는 그만이다. 먼발치서 희끄무레하게 버티고 있는 선달산이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는데... 어떻게 해서든 저걸 지나야 오늘의 대세를 논할 수 있는데... 길은 좌측으로 90도 꺾어지며 야트막한 봉우리가 갈곶산이다. 앞서 출발한 ‘사람과 산’팀과 뒤에 오던 ‘서울시청’ 팀이 뒤섞여 정상석과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이정표에는 봉황산 갈림길이라 표시되어 있고 한 시간 정도 하면 봉황산에 오를 수 있겠다. 그 아래는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해동화엄종찰 부석사가 있다. 절도 절이지만 5월 사과 꽃이 만발할 때 절 가는 길은 하얀 사과 꽃이 바다를 이루고.. 무량수전에서 바라다보는 굽이치는 산하는 눈이 닿는 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장관이다. 오늘은 엷은 운무로 시계가 그렇게 깨끗하지 못해 아쉽다.
08:40 늦은목이(750) 선달산(1,236)을 앞에 두고 안 내려가도 됨직한 길을 갈곶산(966)부터 줄곧 내려가더니 4거리 안부에 도착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잠시 앉아서 쉬며 올라갈 준비를 한다. 900에서 1,200도 만만치 않은데... 친절하게도 750까지 내려왔으니 순식간에 500을 올라쳐야 한다. 부석 쪽 오전약수에서 영월 쪽 남대리로 넘어가는 산속 소로길로 벌써 숲 그늘이 생길 정도로 나무와 숲이 울창하다. 길도 낙엽으로 수북이 쌓여 운치가 그만이다. 잠시 휴식 후 길은 좌로 우로 흔들림도 없이 바로 정면을 치고 올라간다. 스틱을 잡은 손에 땀이 배어, 비 없이 가물은 낙엽과 길에서 솟아나는 먼지로 손과 새캄하고 검은 색 바지는 회색으로 변했다. 그래도 아직은 체력이 남아 손과 발이 호흡에 맞춰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능선이 올라갈수록 군데 군데 장군 같은 춘양목은 귀해지고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물푸레나무와 참나무 군락은 햇볕을 그대로 나에게 쏟아내고 있다. 능선에 올라붙을 때까지의 오르막은 말 그대로 바람한 점 없다. 앞서가는 서울시청 팀 대원이 바람도 없다고 구시렁거리지만 나는 그럴 힘도 없어 그 사람의 발 뒤굼치 만 보고 그저 걸을 따름인데.. 앞사람이 한걸음 걸을 때마다 먼지가 풀풀 피워 오른다. 엄청남 가뭄이다. 오르막길과 나란히 있는 선달산에서 흐르는 능선이 한참 위에 있더니... 곁눈에 와 있더니, 이제 서서히 아래로 보이는 게... 얼축 정상에 가까워져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때 특히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봉우리가 마지막이라고 마음을 먹고 사력을 다해서 갔다가는 무릎이 꺾이는 일이 다반사다. 대충 정상 주위에는 최소한 마지막 봉우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속아 세 개정도 밟아 내야 진짜 정상을 만날 수가 있다.
09:35 선달산(1,236) ‘러너스 하이’란 말이 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30분 가량 서서히 달리다 보면 몸이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인데... 다리와 팔은 가벼워지며 리듬감이 생기고..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나기 시작하는 ‘야릇한 시간’이 온다.는 것인데. 등산에서는 이와는 달리 죽도록 고생해서(고생이 심할수록 만족감이 커진다?) 정상에 오르면 만족감과 희열이 몸 속 깊이에서 밀려나와 넘치는 현상인데... 구지 이름을 붙인다면 ‘알피너스 하이’라고 해야 하나 ‘크라이머스 하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우리처럼 윤대장님의 공식 막걸리를 한잔 하면 희열은 배가된다. 고치령에서 이곳까지는 15.8Km 아쉽게도 방금 지나온 늦은목이 까지만 소백산 국립공원 구간이라 잘생긴 이정표도 이곳에는 없고... 정상석도 없다. 단지, 잔디밭산악회에서 하얀색 각목으로 표시목을 만들어 놓아 겨우 체면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이 구간이 대간 길 중에서 전망이 ‘짱이라는 구간인데 이렇게 맑은 날인데도 엷은 가스로 사방을 다 가슴에 넣지 못했다. 대간이 드디어 강원도와 만났다.
11:25 박달령(1,000) 허덕이고 오르는 길에 비하면 박달령 내리막은 수월하다. 오전약수에서 박달령을 지나 도래기재까지 이어지는 비포장도로가 휴전선의 군사 작전도로처럼 구불구불 눈에 들어온다. 햇볕이 내리쬐는 길을 지나 헬기장을 내려서면 박달령 산신각이 대간꾼을 반긴다. 문을 열어보니 ‘박달령 성황 신위“라고 씌여진 나무 위패가 모셔있다. 얼른 산꾼으로 감히 귀신의 지경을 헤집고 다닌 무례와 앞으로 대간 내내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산신각 서편의 손바닥만한 그늘로 들어가 퍼지는 데... 우리의 호프 김과장님은 신발까지 벗고 들어가 재배올리고 제대로 예를 갖춘다. 음!... 복받을 거야!!
산신각 옆으로 다시 길은 오늘의 막바지 옥돌봉을 향한다. 7시간 이상 산행이 진행되었고 햇볕 이 쏟아지는 길에서 이제는 온몸에 기운도 다 빠진 상태..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마다 고난의 현장이라고 나 할까? 나와 극한의 싸움이다. 숨은 턱에 붙었고 이제는 손과 발이 같이 움직여 주지도 않고 호흡도 불규칙하며 그저 단발마 비명처럼 헉--헉 . 이러니 내가 누구에게 대간을 권할 수가 없다. 나 좋아 이러기도 힘드는 데... 누구의 권유로 이런다면 새벽부터 잠 안자고 이게 뭐하는 꼴이란 말이냐!! 앞서가는 서울시청 대원을 앞질러가며.. ‘다 왔습니다! 힘내십시오!!’ 했더니 내가 길을 알고 있는 줄 아는 지... “저기가 정상입니까?” 하는 데... 나야 모르지!! 미안시럽게 인사로 말했는데... 거기서 정상까지 30분이나 걸렸다. 옥돌봉 아래 능선에서 백사장님과 민선생님이 정상을 5분 남겨놓고 과일을 드시고 계시는데... 앉으면 퍼질 거 같아 내처 진행한다. 능선에서 옥돌봉은 좌회전
12:45 옥돌봉(1,241) 오늘의 상봉이다. 정상은 헬기장으로 말 그대로 그늘이 한 뼘도 없다. 윤대장님이 좌는 어디, 우는 어디 하는데도 귀에 하나도 들리지 않는 다. 옥돌봉 정산에서 우회전해서 한참을 내려와도 잎이 아직 나오지 않은 마른 참나무 군락이라 그늘은 없고 다리는 풀어지고 할 수 없이 낙엽이 수북한 공터에서 김과장님의 비장의 막걸리를 개봉한다. 이제는 막걸리 힘으로 가는 수 밖에... 막바지 내리막도 진달래 군락. 진달래 터널로 이제 막 피기 시작했는데... 만발하면 장관이겠다. 주변에 겨우살이도 지천으로 널려있고 낙엽송은 이제 막 새잎이 돋기 시작해 새 생명의 시작을 보는 듯하다.
멀리 도래기재로 올라오는 비포장 길이 보이고. 마지막 길은 대간의 훼손 현장으로 급격하게 길을 잘라 놓아 흰색 동아줄로 출입을 막아놓았다. 좌로 틀어 길을 내려오면서도 아찔한 곳이다.
14:00 도래기재...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10시간 30분의 강행군, 경북 춘양에서 강원도 영월 고씨동굴로 넘어가는 포장도로이다. 반가운 우리 버스가 영월쪽을 향해 서 있길레 버스에 배낭을 두고 영월 쪽 2키로 전방에 음식점이 있다는 팻말을 보고 걸어가는데... 산불감시원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오며 식당은 한 10Km 가야 한단다. 허걱! 할수 없이 백사장님과 같이 라면을 먹으러 정상에서 춘양쪽으로 10여미터 내려오니 폐쇄된 금정광산 입구에 우리 대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광산 안으로 잠시 들어가니 순간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며 입김이 하얗게 나오고 천장에서 뚝뚝 물이 떨어지며 그물을 먹기도 하고 세수도 하고... 이제사 정신이 든다.
서울로 오늘 길에 장호원 부근은 온통 세상이 복사꽃으로 만발했다. 분당에 도착하니 한 두 방울 반가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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