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번외구간(진부령-향로봉)

마운차이 2005. 7. 22. 14:32

일시 : 2004. 5. 16 05:45~13:50 (25.6Km, 8시간 30분)

산행구간: 진부령(520)-칠절봉(1,172)-둥글봉 삼거리(1,312)-향로봉(1,296)-진부령

날씨 : 화창


  대간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정을 다 마치고 진부령에 도착하면 이제 더 이살 갈 곳이 없는 끝일텐데... 나머지 길은 어떻하나! 하고 북녘 땅을 원망해 볼 것이다. 30회 가까이 하면서 진부령이 가까워지자 대간길이 아쉽기도 하고 나머지 구간을 한 구간씩 해 나가는 게 아깝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다. 그러던 차에 이대장님이 이렇게 저렇게 요리 조리로 길을 만들어 뜻하지 않은 향로봉 산행의 계획이 잡혔다. 군사지역의 산행이라 어디에다 연줄을 댈까 하고 부담스럽던 차에 늘보에서 한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 주변에 관심이 있을만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니... 그렇지 않아도 대간 한구간은 우정출연 한다고 늘 말씀하시던 같은 단지의 세무사 형님과 윤대장님의 옛 회사동료였다는 학규형님 그리고 고령산악회의 30년 멤버로 현재 고령에서 대간중인 병건이... 또 오늘 산행이 산울림산악회와 동반 산행으로 같이 하는데 그 산악회에는 중학 동창 홍식이가 진부령까지 대간 1차를 마치고 2차로 덕유산구간을 하면서 오늘 향로봉에 온다니... 요번에는 지인들과 재미있는 산행이 되겠다.


  오늘의 출발지인 종로 5가에 1시간 먼저 일찌감치 도착해서 실로 20년만에 광장시장 한 평짜리 다닥다닥 붙은 나무의자에 앉아 각종 부침전과 술로 출정식을 진행하니 고급 요리집이 부럽지 않다. 잠시 후 살펴보니 한집건너 한 팀씩 늘보 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게... 나는 대간하며 이곳이 처음이지만 다른 분들은 이 재미도 솔솔치 않았겠다..  평소 같으면 3시 정도면 일어나서 등산을 시작했지만 오늘은 군부대에서 인솔장교가 와야 하니 그 사람이 올 때까지 5시까지 늦은(?) 단잠을 이룬다       


05:45 진부령(520) 벌써 날은 훤히 샛고.. 진부령 너머 간성 쪽 능선이 불그스름한 게 일출이 시작될 모양이다. 산울림산악회의 홍식이를 반갑게 만나고 늘보 이대장님과 인솔장교가 오늘의 산행에 대한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나서는 이게 뭔 일이다냐? 지리산초입 중산리에서 한번 대충 한 이후, 오늘은 인솔장교 지휘아래 앉아 번호(?) 서너 차례 엽기다. 엽기!! 사진기도 뺏기고, 카메라폰도 뺏기고...군사지역이라고 단속이 심하다. 이제 출발!! 처음부터 가파르게 산악도로를 시작한다. 나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현리 귀둔 점봉산 자락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25년전 당시 눈이 올 때는 눈 치우고, 비가 올 때는 패인 도로를 보수하기 위해 기상하자마자 그때말로 밥숟가락 입에 들어가기 전부터 도로에 투입되어 도로를 보수하고 1조가 먼저 식사를 하고 교대로 2조에 속해 식사를 하러 가면 추운 겨울 날 다 식은 국에 밥을 먹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를 아십니까!!

    두 주전에 화방재에서 태백산을 넘을 때만 해도 산이 잎 하나 없는 잿빛 겨울산이었는데...봄비 몇 번 내리더니 이곳은 위도상으로도 훨씬 북쪽에 있지만 파릇파릇한 새 옷을 갈아입고 군바리 나무들이 민간인을 반기고 있다. 죽령고개 치고 오를 때 처럼... 늘보와 산울림이 만나니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가파른 경사길에 엄청 속도가 빠르다. 연신 윤대장님이 속도를 줄이라고 소리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울림 대원 두명은 앞으로 내뺀다. 그냥 내빼는 것만도 아니고 좌로 우로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곰취며 나물치를 한웅큼씩 따면서 산행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길은 철저하게 능선을 버리고 도로만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도로를 조금만 벗어나면 지뢰에 6.25때 불발탄이 많다고 겁을 준 상태라 구태여 무리를 하고 싶지가 않다. 칠절봉 능선에 다다르자 좌우로 시야가 트이며 엷은 구름이 인제군 서화에서 고성쪽으로 휙-휙 스쳐간다. 집에서 나오며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 비옷에 우산까지 준비하면서 비오는 산행의 어려움보다도 귀한 금강산 구경을 못할까봐 애가 탔는데... 아직은 맑은 날씨에 간간히 구름만 흐르며.. 금일 금강산을 쾌히 보리라!!


07:35 넓은 공터에 첫 번째 휴식... 군사지역이라 그런지 전봇대마다 노란바탕에 검은 글씨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구호들이 다양하다. 저거 하느라 몇 명이 고생했겠구나 생각하니 얼핏 웃음이 감돈다. 슬슬 고도가 높아져 시야가 트이며 간혹 씩 엷은 구름만 흐르는데... 향로봉은 높고 험준한 산머리에 늘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구름이 걸쳐져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는데... 오늘도 우리의 산행을 위해 이것 저것 보여주느라 구름까지 동원됐나 보다. 길옆에는 그 귀한 곰취가 지천인데... 끝맛이 씁쓰레하게 향이 도는 게 입에 맞는다며 세무사 형님이 연신 몇 개를 입에 문다.


08:25 둥글봉 입구(1,312) 이제부터 본격적인 부대구역. 초병들이 길을 통제하며 전 대원이 모여야만 출입이 가능하단다. 덕분에 휴식시간... 홍식이 가방에서 막걸리가 나오고 소주도 한잔하고 처음 보는 산울림 여자 대원한테 삶은 감자도 얻어먹고...다리쉼을 하는데...  저만치 길이 끝나는 지점에 향로봉이 보이고, 동해바다와 건너편 알프스 스키장이 빤히 보인다. 가을 같으면 단풍이 환상적일 구간이다.  30분정도 휴식에 일행이 모이니 다시 앉아 번호... 돼지가 헤아렸는지 자꾸 한명이 모자란다더니 드디어 출발


09:45 향로봉(1,296) 향로에 와서 보니 향이 다 타 버렸는지... 구름한 점 없이 맑은 날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향로봉에서 원망스러운 북의 산하를 앞에 두고 다시 간절하게 통일의 그날을 염원해 본다. 감사하게도 중대장님이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정복으로 나와 일행에게 사방을 설명해 준다. 향로봉에서 고성재와 삼재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멀리 금강산의 연봉이 아스라이 보이고 무얼 노리는 지... 한가한 솔개 한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남으로 북으로 제 마음대로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반대편으로는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구간으로 귀청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과 반대로 대청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공령능을 넘어 미시령을 지나 알프스스키장아래 진부령까지 장하게 이어지고 있다. 비가 온다더니 지리산부터 우리를 도와 준 대간귀신들이 모두 힘을 모아 이렇게 맑게 세상 사방을 모두 눈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아 !!! 장엄하다.

 

<서북주능에서 향로봉까지/금강산쪽은 촬영이 불가하고

금강산에서 향로봉, 칠절봉, 둥글봉, 사진의 삼봉, 신선봉이 남쪽에 있답니다> 

 

   잠시 부대안의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보니 중대장도 이쁘고.. 인솔장교도 이쁘고, 병장도 이쁘고, 이등병도 이쁘고... 첫사랑(?)에 실패만 안했어도 저만한 아들이 있을 나이가 되니 우리의 최전방을 지키는 늠름한 아들들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제군들 고맙다!!

     더욱이 우리의 인솔장교는 전부 압수한 사진기 주인들의 요구대로 직접 단체사진도 찍어주고... 개인사진도 찍어주고... 일일이 사진기 검사하고... 저사람 점심이나 제대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13:50 진부령... 드디어 도착... 가는 길은 멋모르고 갔다면 3시간에 걸친 같은 길을 되집어 나오는 하산 길은 등산 보다 훨씬 힘든 길이다. 산길보다 마사토 비포장 길이 걷기가 힘이 드는 지... 8시간 반의 행군은 10시간의 산행보다 훨씬 힘이 들었다. 진부령 음식점의 수돗물에 신발까지 벗고 훌훌 씻고 나니 정신이 개운한데... 늘보에서 황태국에 진수성찬을 제공해 더욱 고마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