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5. 30 03:45~13:00 (23Km, 9시간 15분)
산행구간: 지기재(260)-신의터재(260)-윤지미산(530)-화령재(310)-봉황산(740)-비재
날씨 : 맑음
오늘은 원래 대간하는 날은 아니지만 지난 3월초에 100년만의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되고 산행접근이 어려워 취소되었던 지기재-비재 구간을 하기로 한 날이다. 그간 미리 다녀오신 대원들도 있고 해서 버스는 오랜만에 한가했고 좀처럼 내 차례가 오지 않는 제일 뒷자리에 김과장님과 단 두 사람만이 앉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게 사단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좁은 의자에 앉아가니 깊은 잠도 이루지 못하고 비몽사몽 가느라 별탈이 없었는데...하루 종일 집안일로 피로한 상태에서 뒷자리가 비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누웠더니 그만 코를 심하게 골면서 혼자만 잘 잤는데... 덕분에 다른 분들은 그나마 잠도 설치게 되어 미안할 따름이다. 3달 만에 다시 오는 지기재의 새벽.. 머리에서 붉고 푸른 빛이 나는 산 도깨비들이 산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
03:45 지기재.. 출발점은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금은골로 향하다가 밤길이라 지나치기 쉬운 우측 야트막한 능선으로 시작된다. 이틀 전 많은 비가 내린 후라 숲은 상쾌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고, 밤새 내린 이슬로 선두는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윤대장님은 투덜투덜.. 하지만 길은 솔잎이 푹신한 게 먼지도 안 나고 경사도 거의 없이 완만한 상태라 선수들은 거의 파워워킹 수준.. 엄청 빠른 속도를 감당 할 수가 없다. 동네 뒤의 야트막한 야산이라 좌우로 큼지막한 묘지가 많기도 하다. 처음에는 무사 대간을 기원하며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건냈지만 점차 수가 많아지니... 자동...
05:03 신의터재(260) 지도상에 지기재에서 신의터재까지 2시간20분 걸린다고 했는데... 1시간20분만에 도착하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어느 게 맞는 건지 당최... 빨리 달리긴 달린 거 같은데... 늘보 공식 찍사인 이헌모선생님의 사진기가 고장 나 오늘은 내 사진기가 인기다.
아직도 어둑한 시각 사진 두어장 찍고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속리산 암릉을 예고나 하듯 간간히 평탄한 바위 슬랩이 이어지고 있다. 날이 새며 새들의 세상이다, 소쩍새도 울고, 삐-- 삐--하는 건 삐삐샌가? 어느 놈은 벌써 알을 놓았는지, 새끼를 지키는 지, 우리가 나무 아래를 지나가도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다급하게 울고만 있다. 앞으로 가시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서는 혹시라도 옻에 민감한 대원들이 스치면서 옻이 오를까봐 계속해서 길쪽으로 잎이 드리워진 좌우의 옻나무 가지를 일일이 꺾으면서 가신다. 또 그 북새통에도 윤대장님은 이쪽 저쪽으로 여린 고사리 줄기를 따느라 바쁘다.
06:10 장자봉(380) 능선인지 봉우린지 잘 모르는 대간길에 잠시 휴식시간이다. 얼핏 지도를 보니 무지개산 못미처 장자봉인 모양이다. 잠시 서서 휴식을 취한다. 오른쪽으로는 아직 보이지는 않으나 남이-상주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참인 곳이라 기계로 돌 부시는 소리가 연신 꽝- 꽝 나는 게 조용한 대간길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한참을 더 가니 발아래로 공사 현장이 지나가는 게... 벌써 설계가 다 나와 있겠지만 제발 대간을 자르지 말고 터널로 지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무지개산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우회를 했고 300-400을 넘나들던 대간이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니 윤지미산이다.
07:40 윤지미산(530) 나뭇가지 틈에 양철 안내판으로 윤지미산이라 해놓고 그 주변에 울긋불긋 표식기를 매 놓아 어디 성황당 같다. 평소 대간을 할 때나 홀로 산행을 할 때 표식기의 고마움을 아는지라 우호적이긴 하지만, 정작 알바하는 구간에서는 어딘지 모르니 함부러 달지 못하고.. 그렇다고 길 다 찾아놓고 아까 헤맨 자리도 다시 가서 달 정성은 부족하고... 남들 다 다는 자리에 虎死留皮 人死留名 이라.. 자기 이름 남기려고 줄줄이 다는 표식기는 좀 그렇다. 이제는 그것도 공해다.
하산길은 묘지의 천국이다. 급한 경사가 이어진 후에 정상에서 화령재까지 한시간정도 걸린다더니 한 20분 정도 내려왔나? 저 아래 임도가 보이는 게... 길이 보이면 벌써 화령재인가 하고 ‘내가 엄청 빠르군’ 하면서 건방을 떨었더니... 임도와 만나 우회전 100여미터 임도따라 내려오다 임도를 버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부터 30분 이리로, 저리로 뺑뺑돌아 결국 한 시간 다 채우고서야 화령재에 도착했다.
08:45 화령재(310)상주에서 보은으로 넘어가는 25번 지방도로로 오늘 구간은 전 구간이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다. 화령재 표시석과 팔각정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우왕좌왕하다가 지도를 보고 좌로 틀어 300-400 미터 내려오니 멀리 감자밭 뒤로 들머리가 보인다. 감자밭에는 처음 보는 감자 꽃이 만발해서 나그네의 감흥을 새롭게 하는데... 강원도에서 3년이나 군 생활을 했는데... 메밀은 봐서 알겠는데... 감자는 처음이다. 다들 그늘에 철푸덕 앉아 740 봉황산에 주눅이 들어 윤대장님의 막걸리를 한 사발씩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감자꽃 필 무렵>
화령재는 6.25전쟁 당시 낙동강까지 밀리던 우리 수도사단이 북한군을 괴멸시켜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을 세운 전적지, 이 전투에서 전 연대원이 일계급 특진한 화령전투의 전적비가 있는 곳으로 당시 부대를 지휘했던 김희준 장군이 집사람의 외삼촌이라 남다른 감회를 느낀다.
<감자꽃>
앞서가던 김과장님이 길을 멈춘다. ‘오디’다 새캄하게 잘 익은 뽕나무 열매 오디가 아주 달다. 약간 빨간 건 시큼하고 산에 와서 별 맛 다 본다. 이제 두 시간은 죽었다. 평탄한 길이라고는 하나 뛸 듯이 16키로를 와서 해발 400을 올려야하니 죽을 맛이다. 능선에는 그늘도 없고 해는 내리쬐고 발밑에서는 열이 훅훅 나고 정말 대간 쉬운 곳 없다더니 길이 수월한 척 하다가 막판에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북쪽으로 톱니 이빨처럼 속리산의 연봉이 실루엣으로 다가 온다
09:55 산불초소...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사방이 잘 보이는 자리에 산불초소가 있다. 계단에 잠시 올라 사방을 살피니 맑은 날이라 전망이 그지없이 좋다. 지나온 윤지미 산이 야트막한 능선사이로 봉긋이 젖가슴처럼 솟아 있는 게 김지미 젊었을때 처럼 산이 이쁘게 보이고...그 곁에는 좌청룡과 우백호가 에우르는 속에 화서면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참 아름답다.
10:35 봉황산(740) 속리산에 가까워지니 서서히 바위가 많아지고 소나무가 좋아진다. 정말 죽다 살아난 오늘의 상봉이다. 정상에는 잡목사이로 정상석만 덜렁 있고 햇빛 한 점 피할 곳이 없다. 좌우를 살필 틈도 없고 살필 기력도 없다. 바람도 없는 날 정상에서 오미터 정도 내려가 그늘진 바위틈에 아무 생각 없이 주저앉는다. 쏟아지는 햇살아래 그늘에 모여 앉아 한참을 쉰다. 막걸리도 먹고 과일도 먹고.. 그 틈에도 봉황산 정상석과 사진도 찍는다. 오히려 산불초소에서는 천황봉 능선이 확연히 보이더니 여기서는 형재봉 능선에 가려 잘 보이질 않는다. 안타깝게도 상주로 가는 고속도로 건설 구간은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파헤쳐지고 있다.
비재로 이어지는 내리막은 여러 구간이 상당히 급경사 구간이라 힘도 들고 다리도 풀려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중원의 고도가 비교적 낮은 구간이라 얕잡아 봤다가 되게 당하고 있다. 벌써 이대장님의 무전으로 선두는 버스에 도착했단다. 한 시간이나 차이가 나고 있다. 비재에 이르기도 쉽지 않다. 내리막이라고는 하지만 봉우리가 많아 힘든 대간꾼에게 막바지 오르막을 자꾸 강요한다.
12:30 비재.. 동관리에서 장자동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로 반대편으로 형재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들머리에 초록색 철계단이 놓여져 있다. 여기서 한 30분 정도 걸어야 동관리 주유소에 버스가 있는데... 20여미터 비포장 말고는 길도 포장도로고 돌릴 곳도 있는데... 왜 버스가 이곳까지 오질 않는지 모르겠다. 계곡이 좋을 것 같은데 나타나질 않아 조그만 실개천에서 맑은 물에 씻고 나니 정신이 든다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0구간(댓재-백봉령/두타청옥산) (0) | 2005.07.22 |
---|---|
제28구간(화방재-피재/함백산) (0) | 2005.07.22 |
번외구간(진부령-향로봉) (0) | 2005.07.22 |
제26구간(도래기재-화방재/태백산천제단) (0) | 2005.07.22 |
제25구간(고치령-도래기재/선달산) (0) | 2005.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