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30구간(댓재-백봉령/두타청옥산)

마운차이 2005. 7. 22. 14:36

일시 : 2004. 7. 4 03:45~16:30 (27Km, 12시간 45분)

산행구간: 댓재(810)-두타산(1,352)-청옥산(1,403)-연칠성령-고적대(1,453)-갈미봉-이기령(800)-상월산(970)-원방재-백봉령(828)

날씨 : 태풍(호우)경보, 전 구간 장대비


  늘보가 태풍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두 주전 6월 19일, 미국에서 고국의 태권도 대회 참석차 학생들을 데리고 온 후배를 진천 행사장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강력한 태풍 ‘디앤무’의 영향으로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져 도저히 산행이 곤란해 늘보의 양해를 구해 산행을 포기했었다. 잘한 결정이고.. 평소 20대가 출발하는 동대문에서 그날은 단 두 대만 출발했단다. 그런데... 두 주후 대간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의 하나인 댓재-백복령 구간의 출발을 앞두고 우리가 산행하는 지역이 태풍경보에 호우경보가 발령되고 저녁이 되면서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왠만하면 산행에 나설 일이 아니고, 지리산 지역은 입산이 금지되었지만, 태풍으로 직전 산행이 무산된 상태라 늘보에 연락해 보니 이대장님이 우리 구간은 등산이 가능하다며 계획대로 산행이 진행한단다. 철철내리는 비를 맞으며 재난대책본부(?)에 고발한다는 마누하님의 위협을 뒤로하고 오늘도 나는 대간하러 간다.


새벽 3시 삼척시 하장과 미로를 연결하는 424번 지방도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등산준비를 마친 대원들이 댓재 휴게소에서 끓여주는 라면을 먹고 있다. 나는 여러 사람이 권하지만 평소 대간길에도 잠으로 대신했던 아침식사 인지라 먹는 대신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속으로 산행을 해야 하는 약간 한심스러운 생각으로 기운을 빼고 있다. 물속을 걷다 보면 금방 신발이 젖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신발을 덜 젖도록 하기 위해서 바지 속에다 예전에 쓰다가 놔둔 약간 부드러운 스패츠를 착용해 본다.          

         

 03:45 댓재(810) 댓재 정상의 넓은 광장을 가로질러 깨끗하게 지어진 산신각 옆으로 오늘의 산행이 시작된다. 처음부터 잡목 잎에 머문 빗물이 내리는 빗물과 함께 온몸으로 감싸온다. 특히 비옷으로도 막지 못한 바지 가랑이는 바로 물에 흠뻑 젖는다. 특히 오르막 길이라 이론적으로는 마루금이 좌우로 물을 갈라야 하는데... 대간길이 물길이 되어 길따라 시냇물이 흐르는 꼴이 되었다. 비가 온다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초반이고, 비옷을 입고 있는 상태로 오르막 길, 온몸에서는 열기가 뿜어 나오고 안경은 비와 김으로 쓸 수가 없다. 한 시간 정도 진행 후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5시 정도 되었나 비속에서도 새소리가 아침을 열고 있다. 오늘 길은 잡목과 철쭉이 시종일관 비옷을 잡아당기며 진행을 곤란하게 하고 비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잡목이 이슬을 머금은 날이면 온 몸은 흠뻑 젖게 되어 있다.  6시 1,243봉 끊임없이 이어지는 급경사 오르막 후 나온 봉우리 헬기장에서 휴식을 갖는다. 날이 새 사방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한결 수월하고 음료수에 떡 몇 조각으로 다리에 힘이 살아난다. 


06:25 두타산(1,352) 우리말로 머리를 때리는 산이다. 실제로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 다는 뜻’이란다. 정상에는 커다란 묘지가 우리를 반긴다. 골 때리는 산의 골 부분에 묘지를 써서 발복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한 정성이다. 맑은 날 같으면 동해바다도 보이고 두타에서 청옥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며 전망이 기막힐 자리인데... 신라때 쌓았고, 임진왜란때 삼척 의병이 끝까지 항전하다 모두 죽었다는 역사의 현장 두타산성을 지나 쉰움산으로 이어지는 안내 팻말이 있다. 여전히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사방은 가스로 가득 차 아무것도 볼 수가 없고 주변의 철쭉만 비를 머금고 있다.  


07:15 박달령. 두타-청옥 능선의 완만한 내리막 안부, 두타산 1시간 10분, 청옥산 50분의 이정표가 있다. 박달령부터 이어지는 청옥산, 연칠성령은 모두가 오른쪽 무릉계곡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는 곳이다. 20년 전인가 친구들이랑 입산 금지 기간에 몰래 무릉계곡으로 숨어 들어와 산행을 잘 마치고 나갈 때도 숨어서 나가야 하는 데... 당당하게 걸어 나가다가 관리사무소에 걸려 주민등록 다 신고하고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확인당하고 서야 겨우 풀려났는데... 마지막 순간에 관리사무소 아저씨 왈 “24시간 이내에 산에서 불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는 말에 겁먹어, 동해에 내려와 회도 맛이 없고, 술도 맛도 없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그날 밤에 비가 오는 바람에 무사(?)할 수 있었는데... 그래 저래 나와 두타청옥은 비와 연관이 많은 곳인가 부다.

     입산금지 기간에 몰래 입산하지 맙시다!!!

 

     박달령에서 청옥산 오름길은 너덜이다. 비오는 날의 너덜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또한 비가 오는 미끄러운 너덜에서는 순간적으로 발목 등을 다칠 우려가 있다. 주면에 온 바닥을 멧돼지들이 파헤친 자국이 여러군데 널부러저 있는 길을 지나 가파르게 진행되는 오르막이 확 트이면서 오늘의 상봉 청옥산 정상이다.


07:50 청옥산(1,403)  임진왜란 당시 유생들이 의병정신을 불사한다는 뜻에서 청옥산이라 했다는 산. 두타산쪽에서 올라가는 정상 바로 아래 입구에는 넓은 야영장과 왼쪽으로 샘터까지 갖추고 있다. 정상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어디 앉아서 편하게 쉬기도 마땅찮다. 정상 한쪽에 태양열 집열장치가 달린 통신탑인지? 구조물이 비를 맞으며 을씨년스럽다. 청옥산 하산길 내리막.. 안경을 쓰지 못하니 발 딛을 자리를 정확히 보지 못해 무릎에 충격이 바로 전해지며 무리가 가는 것 같다. 아직 목적지에 절반도 못 왔는데... 오늘 산행이 걱정이다.       

 


08:20 연칠성령정상. 무릉계곡을 힘들게 오른 사람이 청학산 능선에 처음 접하는 곳이라 정상이라 했는 모양인데.. 대간꾼에게는 그저 평범한 능선상의 삼거리.... 발밑에는 취와 각종 풀들이 지천이다. 다섯시간 정도의 폭우 속 산행인데도 신발이 좋아 그런지, 스패츠를 한 덕인지, 아직 신발 속에는 물이 들어오지 않고 뽀송뽀송한 게... 그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길은 다시 경사를 붙이며 고적대로 향한다. 고적대 오르는 길은 바위투성이 길 전혀 주변을 볼 수가 없지만 바위 틈틈이 올라서면 전망이 좋을 자리가 여러군데이다.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08:45 고적대(1,353). 바위길 따라 사방이 트이며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두 평 남짓 바위 봉우리가 정상이다. 높이로는 두타산 보다도 높고 백두대간 상에 몇 안되는 정상을 대(臺)라고 붙인 귀한 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재미있는 게... 고적대는 좌로 정선군, 우로 동해시와 태백시 등 3개 자치단체가 나뉘는 분기점인데... 고적대 이전 까지는 삼척시와 동해시가 경계하고 고적대를 넘으면 정선군과 동해시가 마주하고 있다. 고적대 이전의 정말 험한 바위길이 겨울 같으면 상당히 위험할 구간이지만... 줄 하나 없고, 고적대를 넘고부터 바위에는 흰 줄도 매달아 놓고 길은 통나무를 박아 계단도 정비해 놓고 한걸 보면 정선군에서 제일 대간관리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정선군 고맙습니다!! 고적대에서 이기령까지 6Km는 끊임없는 내리막 초보 산꾼에게 하산 길은 너무 반갑지만 대간꾼에게 하산길은 내려온 만큼 올라야 하니 마냥 반가울 수도 없고 더구나 눈, 비오는 하산 길은 무릎 절단 날 생각에 겁부터 나게 된다. 고도가 낮아지며 비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판초우의 속에서 쉰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이런 날 과감하게 산행을 포기하신 백사장님과, 민선생님의 현명하신 판단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이 구간의 대간길은 서쪽은 완만한 능선이며 동쪽은 대부분 천길 낭떠러지로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그런데 우연히 서쪽이 툭 터진 전망대 바위위에서 털푸덕 주저앉아 막걸리 한잔으로 잠시 다리쉼을 해본다. 두타청옥만을 하러 오신 대원님 두분이 우연히 대간팀과 합류하여 우리와 같이 산행을 하게 되었는데... 두분 오늘 고생이 많으시겠다.

 

<이기령 임도>


11:20 이기령(800) 오른쪽으로는 동해시 이기동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있고 대간 마루금에서 5미터 정도 왼쪽으로는 원방재를 통해 정선군 가목리로 나가는 임도가 있다. 비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폭우로 변해있고 우리의 목적지 백복령까지는 앞으로도 5시간은 족히 걸린다. 말은 안하지만 심정적으로 탈출을 생각하는 지점에 마침 임도까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선두 이숙씨팀은 벌써 상월산을 향해 출발했고, 우리가 이기령에 도착하자 두 번째 팀도 출발하려 하고 있다. 잠시 윤대장님이 의사를 묻는다. 계속 진행이 무식한 결정이지만 여기서 탈출하면 오늘 안 오니만 못하고 다음 번 이 구간을 위해 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우리는 강행한다. 억수같은 비속으로 상월산을 향해 출발..

 

     다리가 고장났다. 왼쪽 무릎이 통증이 심하다. 희안하게도 평지와 오르막은 지장이 없는데... 내리막만 걸리면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더구나 천둥까지 친다.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은 지역이라 번개 맞기가 좋게 생겼다. 아무것도 없는 상월산 정상 부근에는 양손에 스틱을 쥐고 있어 위험하기도 하다.  원방재를 지나며 마지막 탈출의 유혹이 있었지만 아픈 다리를 끌고 계속 진행... 이제는 폭우속에 옷이고 신발이고 다 젖어 버렸고 길도 빗물이 수북이 고여 가려 밟을 수가 없다. 온 세상이 다 물이다. 그 틈에도 이 구간은 잡목이 심한 구간이라 판초우의와 옷을 사정없이 잡아당긴다.


02:10 1,022봉 꾸준히 오르는 오르막 뒤에 헬기장이다. 워낙 잡목이 심한 구간이라 맑은 날이어도 진행하기 힘들었겠다.  병장달기 정말 힘들다. 이렇게 호된 신고식을 거쳐야 영광의 병장진급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작년 4월 고남산부터 시작해 29구간의 워밍엎을 거쳐 정신력과 체력이 단련되어 이 정도의 고행 길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일반 등산은 계곡으로 하산을 하니 내리막의 개념을 잡을 수 있지만, 대간 산행은 능선 마루금으로만 가니 마지막이 제일 힘들고 지루하다. 특히 백복령의 마무리는 상월산이후 10여개가 넘는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대간꾼의 진을 쪽 빼놓는다. 여태까지 잘 오시던 초행길 대원님들도 슬슬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본인이 앞장서 왔으면서 앞에서 본 붉은 색 측량 말뚝이 또 나타나자 지금 우리가 온 길을 다시 돌아서 오고 있노라고 나에게 항의 비슷하게 하시길 레 나침반까지 꺼내 방향을 제시하며  계속 진행 하시게 했는데...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어떻하랴 내가 자초한 일이니.... 마무리를 해야지..

 

     막바지 구간 대간길이 좌로 틀면서 좌측으로 리본이 매달려 있고 직진방향으로는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가지 말라고 해 놨는데... 무심히 정신없이 가다보면 직진하기 좋게 생겼다. 나중에 초행으로 오신 두 분 중 한분이 직진하여 옥계쪽으로 하산해서 고생을 하셨다.


16:00철탑.. 내리막을 도저히 못 내려가니 앞서가는 김과장님이 자꾸 기다리시길레 미안하기도 하여 오르막에선 죄송하다 하고 앞질러 올라가 평지에서 뛰다시피 진행하고 절뚝거리며 내리막은 천천히 내려오고 해서 진행을 맞췄는데... 철탑을 지나 버스가 보이는 자리에서 한참을 마중나온 이대장님과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는다. 잠시 쉬었다 오는 모양이다.

 

<메주와 첼리스트>


16:30 백봉령(828) 눈물겹게 반가운 버스가 우리를 맞는다. 두타산만 산행한 일부 일행은 12시부터 버스에서 기다렸다 하고, 내 뒤부터는 이기령에서 탈출해 대피해 있단다. 다른 한 분은 옥계로 하산해서 어딘지 모른다고 하고, 한 분은 소재가 불분명해 찾느라 난리고... 다행히 이기령으로 하산한 대원들은 주변에 있는 ‘메주와 첼리스트’라는 유명한 전통 장류공장의 도움을 받아 사장님의 배려로 더운 방에서 저체온증을 피할 수 있었고 더운물에 샤워까지 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더구나 뒤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이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빈 창고까지 내 주시니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 평생에 이런 무모한 산행은 마지막이길 바라며... 모든 것이 개인의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지지만, 태풍의 진행통로가 목포에서 삼척이라고 했다. 삼척은 우리의 요번 목적지 백복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이다. 기상청은 이 지역에 우리가 산행하는 시간동안 400m 호우가 내릴거라고 예보했고 실제로 200m가 넘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으며 진행했다. 이런 악천후 속에 산행은 필연적으로 중간에 탈출하는 대원이 발생하고 단독 탈출이나 조난은 많은 사고의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대간하는 사람에게 있어 탈출은 그 이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추가로 필요로 하게 되는 점을 감안.  늘보에서도 여러 대원의 안전과 즐거운 산행을 위하여 만에 하나라도 신중히 결정해야 하겠다. 산행하다 비 맞는 일 많다. 또 적절한 경험과 훈련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해마다 비로 인해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 지역에서 예견된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산행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며... 늘보대원님들과 대장님들(총무님 포함) 모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