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7. 18 03:45~13:50 (25.7Km, 10시간 5분) 산행구간:삽당령(680)-석두봉(982)-화란봉(1,069)-닭목재(680)-고루포기산(1,238)-능경봉(1,123)-대관령(840) 날씨 : 비, 비..비 늘보가 대간하는 날 말고는 10년만에 찾아 온 푹푹찌는 여름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 대간을 시작하면서 고속도로 정류장에 나오면 특혜분양으로 말이 많았던 고속도로 옆 파크뷰 신축공사장의 거대한 아파트 구조물이 눈을 막았는데... 어느덧 공사가 끝나 집집마다 불을 반짝이기 시작하니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수직도시가 되었다. 그 위로 중복을 하루 보낸 6월 보름달이 휘엉청 대간꾼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이 얼마 만인가 태풍 디엔무로부터 시작해서 두 달만에 비 안오는 대간길을 나서게 되는데...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건, 태평양에서 일본 열도를 가로지른 제 10호 태풍 남테우른이 우리 나라를 향하고 있다니 이놈의 향방에 따라 우리 산행이 영향을 받게 되는데... 나중에 들었지만 올해 늘보에서 시산제를 걸렀다고 하니 ‘정성이 부족하여 시루떡이 설었나’ 보다.
두 주만에 온 삽당령에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때문인지, 오다 어디서 비를 만났는지 차창에는 물기가 어려 있다. 오늘 하루 험난한 산행 길을 예고나 하듯이 도사급의 대간꾼들은 각자 스패츠를 차거나, 신발에 비닐을 덮거나 일부는 우비까지 입으며 각자 우중산행 준비를 한다. 어차피 이슬 먹은 잡목 숲을 헤치던, 쏟아지는 비를 맞던 신발은 젖게 되어 있으니 처음부터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 일게다.
03:45 삽당령(680) 사방이 조용한 새벽, 안개까지 끼어 좌우 구분이 힘들지만 막상 밖으로 나와 보니 비는 내리는 거 같지는 않고 어차피 젖을 바에야 비옷도 벗는 분위기..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시작되는 들머리부터 벌써 나뭇잎들이 흠뻑 머금은 물기가 온몸으로 전해온다. 허리 차는 산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진행하는 머리쪽 방향으로 지속적인 기계음이 들리더니 거대한 철탑이 나온다. 일반 철탑과는 달리 상주하는 인원이 있는 지 사무실 같은 곳에서 낮은 소리지만 기계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동통신 중계탑 이란다. 간간히 잡목에 산죽이 무성하기는 하지만 대관령이 가까워져서 그러는 지 길이 젊잖다. 오늘은 내리막도 부드럽고 산길도 넓은 게 등산하기가 편하다. 그러나 그런 소박한 기쁨도 잠시... 한 시간쯤 산행이 진행된 후부터 나뭇잎이 비를 만나 산이 후두둑 거리기 시작하더니 사정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비옷을 꺼내고 배낭을 씌우고 후닥닥 잠시 그칠 비가 아닌 것 같아 오늘 하루 가야할 길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무릎도 정상이 아니고 길도 비교적 긴 구간인데... 길은 산불저지선인지 벌목지인지 지금은 잡목만 무성한 길이 죽 이어지고 있다. 지도상에는 벌목지라고 되어 있다. 06:00 무명봉.. 날씨가 맑았으면 동해 쪽 전망이 그만일 바위 전망대에 윤대장님이 앉으며 잠시 휴식하잔다. 따라 오던 재원씨랑 이순자 여사님이 복숭아 통조림을 권해 한쪽 먹고 조금 더 진행하니 선두 일행도 쉬고 있다가 다시 길을 재촉한다. 비가 오는 날을 대비해 안경이 뿌여케 되어... 벗으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고 발딛는 곳도 잘못되어 무릎에 무리가 오곤 하니 안경을 계속 쓸 수 있도록 집사람에게 부탁해 김서림방지제를 구해 안경에 뿌리면서 산행을 했으나 워낙 몸에서 열이 나는 상태이고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으니 제구실을 못한다. 같은 길을 가면서 이 시간이면 바다에서 올라오는 일출도 보고 전망대의 황홀한 비경을 감상할 곳도 많은데... 이렇게 비오는 날이면 아쉬움이 많다.
06:20 석두봉(982) 오르막은 가파르지만 정상 부근은 평범한 대간길중 잡풀이 엄청 자란 풀숲 속에 앞으로 닭목령, 뒤로 삽당령, 이곳은 석두봉이라는 나무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왼편 90도 방향으로 ‘대용수동’ 이라는 팻말도 붙어 있다. 오르막길은 바위길을 가파르게 올랐으나 정작 이정표가 있는 곳은 풀숲, 석두는 돌머리인데... 돌은 안보이고 풀만 보인다. 아마 산 전체가 돌로 이루어진 산인 모양이다. 잠시 전에 쉬었으니 계속 진행... 석두봉 내리막은 커다란 나무들과 간간이 초지 사이로 낙낙장송 소나무가 서 있어 운치가 있는데... 전형적인 대관령의 평원인데, 내리는 비와 더불어 개스까지 심하게 차 그림은 별로다. 그 아래는 고랭지 채소밭으로 아직 무성하지는 않지만 양배추가 싱그럽게 비를 맞으며 자라고 있다.
08:00 화란봉(1,069) 화란봉은 이름도 이쁘지만 화란봉 지나 전망대의 바위와 거기에서 바위와 엉켜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천길 낭떠러지 바위 위에 고고한 소나무의 자태가 위엄이 있기까지 하다. 그 뒤로 전망까지 좋았다면 더욱 멋있었을 텐데... 일전에 비오는 밤티재에서 늘재 사이에 우리 대원들이 공포의 외인구단을 찍었던 그곳과 흡사한 곳이다. 약간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고 대간이 묘지위로 떨어진다. 바로 왼편으로 내려갈지... 묘지 등을 타고 우로 가야 한지 주저하고 있는데... 최대장님이 길을 알고 있으면서 나는 왼편 본인은 오른편으로 돌게 하여 골탕을 먹인다. 다 내려온 모양이다. 무슨 창고 같은데... 푸른 양철지붕의 건물이 앞을 버티고 있다.
5시간이 넘는 산행에서는 비옷은 비를 가리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약간이라도 찬 기운을 막아 보려는 의도일 게다. 어차피 옷과 몸은 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젖게 마련이지만 순간순간 저체온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얇지만 방수 옷이나 우의는 그 역할이 크다. 고어택스 기능이 훌륭한 신발이라도 비 길에 노출되면 10분을 넘기기가 어렵다. 그러나 스패츠만 잘 착용해도 5시간 정도는 잘 버티는데... 5시간이 넘으니 물이 새 들어오기 시작한다. 백사장님과 김과장님은 신발 속 양말 안으로 비닐을 넣어 신발 밖으로 비닐을 싸는 방식으로 5시간을 잘 버텼다고 한다.
08:40 닭목령(680) 삽당령으로 올라가는 35번국도와 강릉(오봉)저수지에서 헤어진 137번 도로(9번 군도)가 대간을 넘어 대기리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 쏟아지는 비로 지도 한 번 볼 수가 없어 주요지점의 통과 시간을 메모해 놓지 못했는데... 길 건너편의 산신각 처마가 있어 얼른 그 아래서 대충 기억나는 대로 시간을 적었다. 대간길 중 산속에 박달령 산신각도 그렇게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데... 왕복 2차로의 포장도로에 붙어 있는 산신각 앞이 후손 없는 묵은 묘 마냥 무릎까지 오는 잡초가 무성하다. 이 동네는 누군가 정성 쏟을 일이 없는 모양이다.
이제 결단의 시간이 왔다. 최대장님과 홍총무님 등 일부는 비 길에 더 이상 진행을 포기한다. 일부 선두는 벌써 고루포기산을 향하여 출발했다. 화란봉을 내려서면서 무릎이 실실 이상하더니 이 비에 아직도 5시간이나 남은 고루포기상과 능경봉을 계속할라면 특단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 같다. 미안하고 죄송스럽지만 백사장님에게 무릎보호대를 빌려 왼쪽 무릎에 싸메고 출발이다. 오늘 이 보호대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감사의 보답으로 백사장님이 닭목령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절대 비밀을 지키기로 한다. 늘보만 안다...
닭목령에서도 대간 진입은 임도로 시작된다. 도로 초입 좌측에 커다란 비닐하우스에서는 우리 대원들과 부산에서 온 대간팀으로 대관령부터 역주행 해 온 대원들이 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500미터 정도 진행 후 길은 두갈래로 나뉘는데... 어느 쪽에도 대간 표시가 없다. 마침 하산하는 부산팀 대원이 내려오는 오른쪽 길로 오르며 혼자 진행하는 상태라 비 길에 대간진입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임도에서 좌측으로 들었다가 우측 숲으로 들어가면 지도상의 맹덕 한우 목장 옆으로 잠시 오르더니 결국은 서너 가닥의 철사줄을 넘어 목장안으로 들어간다. 그중에 한 줄은 노란 플라스틱 절연체로 묶여 있는 게 전기 철조망인 듯 싶은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다시 철조망을 나와 계속해서 오르니 목장 뒷문부터는 좌측으로 틀어 아주 산으로 들어간다. 09:50 왕산 제1쉼터(855).. 이곳이 강릉시 왕산면이라 왕산 제1쉼터라 했는 모양이다. 서로 마주보며 쉴 수 있도록 스텐으로 의자를 만들어 놨다. 관계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먼저 도착한 김과장님과 윤대장님이 쉬고 있고, 나와 백사장님이 합류했다. 나무 이정표에 더 위쪽에 제2쉼터까지 2Km, 닭목령까지 2Km라 되어 있다. 닭목령에서 한시간에 2K 왔으니 한시간 정도 더 올라야 2쉼터가 나오겠다. 막걸리 한잔 후 힘이 났는지 김과장님이 엄청 속도를 높인다. 길도 완만하고 잡목도 없는 길이라 제2쉼터까지 2km를 40분만에 주파했다. 드디어 고루포기산을 향한 마지막 고비 마지막 급경사가 힘겹다. 자꾸 처지면 더 힘들어지니까 김과장님을 추월하여 진행하는데... 정상으로 알면 아니고 또 아니고를 몇 번 점점 힘이 드는 걸 느끼겠다. 12:00 고루포기산(1,238) 정상 아래 산꼭대기까지 임도가 나 있어 가로질러 정상에 올라 비가 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힘이 드니 풀썩 주저앉아 있으려니 하산길 방향으로 김과장님이 올라온다. 어! 아마 임도를 가로질러야 하는데... 임도따라 돈 모양이다. 정확히는 임도가 아니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있는 송전 철탑 가설을 위한 임시 도로라 한다. 원래 이곳은 북쪽으로 선자령, 매봉,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대관령 일대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로는 발왕산, 용평스키장이, 서남쪽으론 노추산, 옥녀봉이, 또한 남쪽으로도 화란봉, 그 뒤의 석병산까지... 실로 그 조망이 정말 너무나 장쾌하다고 하는데 비속의 아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제 내리막.. 보호대를 했지만 무릎에 신호가 오고, 이곳 내리막은 경사도 심하지만 너덜길이라 조심 또 조심.. 일행들은 잠시 눈에서 사라지고 혼자만의 하산 길 하루의 피로가 쏟아져 금방이라도 자빠지면 그냥 죽음과 같은 깊은 잠으로 빠져 들어갈 것 같다. 가파른 내리막이 안부에 이르는 곳이 횡계현.. 발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으나 새로 개설된 영동고속도로의 터널이 지나가는 곳으로 차량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있다. 이제 마지막 능경봉만 남았다. 앞으로도 뒤로도 아무도 없다. 잠시 뾰족한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해본다. 아!! 힘들다.
몸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기운을 모두 모아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능경봉을 향해 거의 무아의 경지를 헤메고 있는데... 얕은 오르막이 우로 틀면서 행운의 돌탑이 쌓여져 있다. 안내판에는 “여러분의 정성어린 마음으로 아름다운 돌탑과 추억을 만드십시오“ 라고 되어 있는데... 얼른 주먹만한 돌을 주워 중간 윗부분에 단단히 올려놓고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해 본다. 13:10 능경봉(1,123) 고루포기산 하산길이 길었고 중간에 지제가 많이 되어 정상에는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이 윤대장님과 김과장님이 계신다. 쓰러지듯 주저앉아 정상주를 받아 먹고 길었던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많이도 왔다. 능경봉 내리막은 대체로 수월하다. 길도 넓고 일부는 비에 패여 물길이 나있다. 거의 다 내려와 임도에서 다시 산으로 건너야 되는데... 앞서가신 이종미 여사님이 임도로 계속 진행하는 바람에 나중에 찾느라 수선을 떨었다. 이제 오늘의 종착지 대간이 제왕산으로 가는 임도와 만난다. 오른쪽 제왕산 방향은 어인 일인지 철문으로 막아 놨고... 왼쪽모서리에는 산불 감시 초소가 콘센트 건물로 있다. 그 옆에 샘물이 호스를 통해 쏟아지는데... 물맛이 어찌나 좋은지... 거푸 몇잔을 먹고 그 아래 흐르는 물로 옷과 신발의 진흙도 닦고 세수도 하고... 13:50 대관령(840)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영동고속도로 준공 기념비가 보인다 비는 계속해서 주룩주룩 내리고 세찬 바람까지 비바람이 거세다. 우리 버스는 닭목령의 탈출자들을 모시고 오느라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지난번 삽당령에는 이번보다 훨씬 거리도 짧았고 날씨도 좋았는데도 마지막 하산길에는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고 왔는데... 오늘은 2주간 푹 쉬었고 결정적으로 백사장님의 무릎보호대 덕택으로 별 탈 없이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백두대간을 하며 국토의 종축 경부고속도로를 만나며 감회가 새로웠는데.. 이제 병장에 진급해 국토의 횡축 영동고속도로 대관령을 만나니 더욱 의미가 되새겨진다. 비를 예상치 못해 비닐로 미리 갈무리를 못해 새로 산 카메라는 하루 종일 내린 비로 고장 나 작동이 안 되고, 그나마 앞 가방 깊숙이 넣어둔 휴대폰은 비 옷 속에 있던 터라 물기를 잘 닦으니 작동이 된다. 2주간 캠프에 간 아들이 돌아오는 날이라 목소리라도 들으려 집에 연락을 해... 하루 종일 비를 맞았다고 하니, 분당에는 비 한 방울 안 왔다며. ‘뻥이지!’ 한다. 내 참!! 뭐 뻥!!! |
'백두대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4구간(진고개-구룡령/동대산) (0) | 2005.07.22 |
---|---|
제33구간(대관령-진고개/노인봉) (0) | 2005.07.22 |
제31구간(백봉령-삽당령/석병산) (0) | 2005.07.22 |
제30구간(댓재-백봉령/두타청옥산) (0) | 2005.07.22 |
제28구간(화방재-피재/함백산) (0) | 2005.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