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8. 15 03:05~11:00 (23.5Km, 7시간 55분)
산행구간 : 대관령(840)-새봉-선자령(1,157)-곤신봉(1,127)-매봉(1,173)-소황병산(1,338)-노인봉(970)-진고개(970)
날씨 : 작열하는 태양
3주째 매주 일요일마다 대관령 행차를 하고 있다. 1일은 대간 산행을 마치고 비오는 대관령에 도착했고... 8일은 평창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횡계에서 출발해 하프코스 반환점이 우리가 있던 휴게소 아래였는데.. 미리 예약된 상태라 무릎이 좋지 않았지만 뛸 만큼 만 뛴다고 시작했다가 10키로 만 뛰고 무릎이 아파 코스를 이탈해 그냥 들어왔는데... 하프 중 제일먼저 들어오는 신기록이라 주최측에서 달려와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MBC는 중계하고, 특별 초청된 삼성야구단의 치어리더들은 골인지점에서 열광하며 응원하고 난리를 치뤘다. 으매 쪽팔리고로....
오늘 다시 대간하러 대관령에 왔다. 짙은 개스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어둠속에 해드랜턴 불빛에 안개 물방울이 바람과 함께 흩날리고 있다. 엄청 춥다. 숨쉬기도 힘든 여름의 한복판에서 겨우 에어컨으로 오후를 버티며 산행을 나왔더니 일부 대원은 바람막이 옷도리를 껴입을 정도로 춥다. 12-3도 정도 되나보다. 인도의 홈리스들이 40도의 날씨가 새벽에 15도 정도로 떨어지면 저체온증으로 죽는 다더니 이해가 간다.
03:05 대관령(840) 양떼목장이라는 팻말을 지나 기상관측소 옆길을 따라 콘크리트 포장길이 들머리 초입이다. 지도에는 국사성황당 옆이라 했는데... 개스와 어둠으로 못 보고 그냥 지나친다. 20분 정도 오르다 왼편으로 등산로로 접어드는 데... 앞 사람들이 여러 명 지나갔지만 이슬을 먹은 잎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도 이슬을 뿌려댄다. 그렇지 않아도 스산한 날씨에 물벼락까지 쓰게 되니... 아! 벌써 겨울을 준비해야 하나 보다. 그래도 길을 부드럽게 고도를 높이며 동그란 접시를 몇 게 붙인 시커먼 중계소 구조물 왼쪽 아래로 길은 진행된다. 아직도 어둠속이라 저층 아파트만한 구조물을 자세히는 볼 수 없지만 개스층을 통과했는지... 구조물 위로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질 듯 가득 차 있다. 지난 수요일인가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지구를 지나며 별동별 쑈를 펼친다고 해서 아들과 같이 보기로 해 놓고 친구들과 술 먹느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아들에게 미안함을 전해본다. 오른쪽 숲 사이로 얼핏 불빛이 비추기 시작하더니... 1,051봉에 오른다. 50분 정도 올랐다. 발 아래 강릉시의 야경이 현란한 네온싸인의 불빛처럼 아름답다. 밤이 화려하다는 라스베가스보다 훨씬 더 영롱한데... 그 위로 강릉 앞바다의 고깃배의 불빛이 이어지고 곧바로 온 하늘 가득한 찬란한 별빛과 합쳐져 별과 불의 오케스트라가 땅과 바다와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참 아름답다 !!
길도 좋지만 대원들 걷는 발걸음도 거의 말로만 듣던 빨치산 수준이다. 대간을 하면서 한 번도 속이 불편한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참고 견디며 아직까지 몸속에 있는 걸 산에다 두고 오지 않았는데... 배낭무게를 줄이려 차에서 내리기 직전, 잠에서 막 깨어난 상태에서 보온병을 두고 올 심산으로 담아온 찬 미숫가루를 한꺼번에 들이켰더니 그게 탈이 난 모양이다. 비포장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는 길옆에 아무도 몰래 스틱으로 땅을 파고 대간과 통(?)하였더니 으-- 시원하다...
04:36 선자령(1,157) 길이 산으로 들어오면 이슬 먹은 싸리와 잡목이 옷이며 배낭을 잡아 당긴다. 쇠로 된 고동색 표시 이정표에 선자령 정상을 알려 주는 데... 좌측으로 잠시 더 진행하자 또 선자령이 나온다. 이정표엔 선자령 나즈목이라는 지명이 나오는 데... 요즘 고속도로 나들목은 들어 봤지만 나즈목(?)은 뭔고? 지도를 보니 고개 마루가 아니고 봉우리인데... 우측은 보현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고 좌측은 횡계초교 삼한분교에서 올라오는 길이 능선이 아닌 봉우리에서 만난다. 날이 새며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특이 하게도 이 시간이면 난리를 치는 새들이 오늘은 한 놈도 우릴 반기질 않는다. 날이 추워지니 늦잠을 자나?
05:30 곤신봉(1,181) 환상의 날씨에 선자령, 곤신봉, 황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둘러싸인 600만평의 대평원을 뒤로 하고 6월 그믐의 아미같은 그믐달이 붉게 물들며 그 뒤로 말간 구름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세상이 온통 붉은 색이다. 어떤 대작에서도 연출해 내지 못할 자연의 선물을 두 팔을 벌려 가슴으로 받아들인다. 행복하다!
이 얼마만인가 지난 4회의 우중산행의 보답을 한꺼번에 받는 기분이다. 대간 신령!, 귀신! 들이어 그동안 비 많이 맞았습니다. 이제 다시는 비 맞는 산행은 없도록 해주십시오! 정말 싫습니다.
뒤로는 드넓은 초원에 간간히 집들만 박혀있다면 바로 스위스와 다를 바가 없다. 정경유착으로 개발시켜 놓고는 제대로 관리가 되질 않아 영화촬영에나 쓰이고 그냥 버려지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무너지는 우리 나라의 축산 현실을 보는 거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수천마리 수만마리 소들이 한가롭게 거닐어야 할 초지에 소는 그림자도 볼 수 없다.
06:00 동해전망대.. 강릉에서 주문진까지의 전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우리는 3시간이나 걸려 걸어온 길을 벌써 관광버스까지 올라와 아마추어 작가들인지 사진 찍기에 바쁘다. 멀리 황병산 방향의 바람골에는 주문진쪽을 바라보고 풍력발전기 4대가 천천히 돌며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이곳은 ‘가을동화’, ‘태극기 휘날리며’ 등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나 영화를 찍은 곳으로 그만큼 풍광은 아름답다. 이곳까지 윤대장님과 내가 이순자 여사님 보다 늦게 왔다는 걸 꼭 써달라고 했는데.. 그만큼 전 대원의 진도가 빠르다. 그 덕에 이 여사님의 김밥 얻어먹느라 싸가지고 간 떡을 남겨와 집사람에게 되게 혼났다. 재원씨의 표현에 의하면 자기는 목동이고 그 앞에 줄지어 가는 대원들은 모두 소들인데...그러다 이 여사님한테 혼났다. 일부 대원들은 지난 일요일에 16시간에 걸쳐 지리산 당일 종주를 해냈다는데... 가히 이 정도면 제정신이 아닌 거 아냐?
06:40 매봉 우회로... 멀리만 보이던 풍력발전기를 지나니 가히 바람골은 바람골이다. 고개 안부에 난 틈으로 동해의 해풍이 산으로 밀려들고 있다 앞으로는 황병산 정상의 군부대 구조물이 보이는 데...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 대신에 왠 부대... 왼쪽 아래는 삼양목장의 우사와 건물들이 가지런히 보이는데... 대관령에서 출발해 선자령 부근에서 멀리 산 중턱에 불빛이 보이더니 그게 저 목장의 불빛이었나 보다...이제부터는 좌로는 초지 우로는 숲의 경계로 대간길이 나 있는데... 길은 이제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속에는 온통 멧돼지의 나라... 사방을 파헤쳐 봄 기근이 여름까지 이어지는 지 뭐 먹을 걸 찾아 파헤친 흔적이 요란하다.
07:40 조용한 대간길에 물소리가 들린다. 황병산 오름길 제법 많은 양의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잡풀속으로 10여 미터 내려가면 만날 수 있을 거 같으나 귀찮아 그냥 진행했더니 몇 걸음 올라가니 바로 길옆에 물이 흐른다. 허겁지겁 허리를 굽혀 몇 모금 마시는데 물 맛이 좋다. .다행히 길을 물을 건너지 않고 좌로 틀어 경사를 높인다.
08:15 소황병산(1,338) 숲으로 이어진 대간길이 다시 초지를 만나 황병산까지 드넓은 평원으로 이어지는데... 황병산은 군 시설물 때문에 통제되니 보고만 지나간다. 새벽 3시부터 시작해 5시간동안 대관령 초지를 따라 둥그렇게 반원을 그리며 대간이 이어진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목장이다. 8월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일부 구간은 해 피할 곳이 없다. 이제 초지는 끝나고 길은 완전히 예전처럼 숲을 찾았다.
09:10 노인봉산장. 소금강 무릉계에서 올라오는 길이 대간과 만나는 길에 호젓한 산장이 있다. 주인은 두달간의 대간종주와 18일간의 대간 마라톤 종주를 했다는 털보 성양수씨.. 약간 맛이 간 털털한 막걸리를 앞에 놓고 잠시 애기를 나눴다. 하기사 해발 1,300에서 맛있는 막걸리를 기대하는 게 어리석었지만 그래도 실망이다. 털보 주인은 등산객의 신고로 산장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던 개를 키울 수 없게 된 걸 무척 아쉬워하고 있었다. 우리 산행이 총 40회로 구성되어 있는데... 놀며 쉬며 그거 하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18일만에 마쳤다니 참 세상에는 놀랄만한 사람들이 많다.
09:40 노인봉(1,328) 오늘의 상봉이다. 사방이 거치를 것이 없다. 학교 다니며 누구나 그랬겠지만 이념과 현실에 괴리속에서 군부정권의 태동에 저항하며 잠시 세상을 피해 소금강산장에서 정말 힘들게 올랐던 산이다. 80년 이었으니 덧없는 세월만 흘러 25년이 지났다. 그때는 지금처럼 제대로 된 산장도 없고 진고개를 넘는 도로도 없고 그랬는데... 그래도 발아래 사방팔방 산천은 의구하다.
진고개에서 이곳 까지도 2시간이 걸렸다는 60세를 넘으신 어르신 세분이 대관령을 가신다는데... , 그 시간이면 일반인들 보다 조금 더 걸리는 시간인데... 야간 산행 준비도 없다고 해서 약간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강행하는 분위기라 우리 걸음으로 7시간 거리라 알려드리고 조심하시라고 하고 탈출구가 여러 곳에 있으니 간곡히 말리진 못했다. 하산 길은 출근시간의 지하철 계단길이다. 관광버스 몇 대가 풀어놓았는지... 시종일관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어 계속 길을 비켜주니 진행이 곤란한 상태... 시간이 딱 당일 산행객들이 올라 올 시간이다.
11:00 진고개산장(970) 오늘은 앞으로 공룡능 등 어려운 산행이 남아 있어 워밍엎 코스로 비교적 수월한 산행을 했다. 몇 번 무릎 때문에 고생해서 집사람에게 부탁해 무릎보호대를 두 개나 사서 여차 하면 쓰려고 배낭에 넣어 왔는데... 길도 완만하고 날씨도 좋아서 그런지 사용하지 않고도 별 무리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먼저 도착한 홍총무님 덕에 양념한 돼지불고기가 하도 맛있길 레 체면 불구하고 여러 점 얻어먹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오늘 처음 늘보에 오신 대원이 늘보 막내인 중구와 함께 선두 이대장님을 추월하여 진행하다, 노인봉 산장에서 길을 잘 못 잡아 소금강 무릉계로 진행하다.되돌아 오느라 전체 일행을 두시간이나 기다리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 난 것으로 하필 중학생인 중구까지 오늘따라 앞서가다 그렇게 됐는데... 단체 산행에서 본인의 역량을 과신한 나머지 전체의 진행을 이끌어가는 선두 대장을 추월하는 일이나, 그로 인해 발생되는 사고나 판단 착오는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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