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37구간(한계령-마등령/공룡능선)

마운차이 2005. 7. 22. 14:46

일시 : 2004. 10. 16 02:30~18:30 (27.7Km, 16시간)

산행구간 : 한계령(920)-끝청(1,604)-중청(1,676)-소청-희운각-1,275봉-나한봉-마등령-오세암-백담사-용대리

날씨 : 청명한 가을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지난 주 직장 산악회에서 대청을 하고 와서는 출근길처럼 막힌 등산로에 고생을 하고 왔다는 소리와 함께... 각 TV 뉴스에서는 오늘이 설악산 단풍의 최고 피크라며 요란을 부리는 통에 이번 등산도 만만치 않으리라 내심 걱정이 많다. 오늘도 우리 버스는 양평을 지나 강원도로 바로 향하는 예정에 따라, 집사람과 아들이 차로 동대문까지 데려다주니 다 함께 광장시장 한 모퉁이에 앉아 떡볶이며 오뎅이며 야간 잔치가 벌어졌다. 잠시 후 이여사님과 재원씨, 김과장님까지 오셔서 간단한 출정식이 치러졌다.            

  

02:30 한계령 출발... 원래 일출 2시간 전에 개방이라 보통 4시까지 통제하고 그 이후에 출입이 가능하다는 데... 최고의 피크이고 워낙 인원이 많으니 아예 통제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설악루를 시작으로 처음부터 시작되는 급경사 계단 길에 다닥다닥 빈틈없이 사람들이 줄지어 가고 있다. 앞도 뒤도 헤드랜턴의 물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진행이 서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경험 많은 등산객 중에는 도저히 이런 행렬에 맞춰 진행 할 수가 없으니 틈이 나는 데로 앞사람을 추월해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하는데... 이러면서 다른 사람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50분정도 되었나? 끊임없이 오르던 능선이 첫 번째 고개 마루를 만난다. 내리막이 시작되자 길은 본격적으로 정체... 많은 부분이 돌투성이의 길이고 암릉에 줄이 매달린 길을 만날 때마다 초행길의 4-50대 아주머니들은 손잡을 데.. 발 디딜 곳을 몰라 뒤로 하염없이 밀리고 있다. 남들에게 방해되게 길을 막고 있다고 뭐라 할 수도, 진행할 길이 남달리 먼 선수라 초반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추월하는 사람을 뭐라 할 수도 없다. 다들 열심히 일하고 가을의 단풍 든 설악산을 찾아 귀한 시간을 잠 안자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04:15 귀청삼거리.. 푹 꺼진 안부에 수십명이 일행을 찾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쉴 생각도 없지만 이럴 때 한명을 추월하면 나중에 1분이 빨라진다. 거의 50명은 족히 될 거 같다. 오르막이 시작되며 좌측으로는 귀청을 지나 대승령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다. 이제 드디어 대간은 서북주능의 등뼈에 올라선 것이다. 너덜이 심해지는 가 싶더니 길이 미끄럽다. 1,400고지의 새벽이라 서리가 무성하고 일부 랜턴 빛에 서릿발을 둘러쓴 키 작은 나무가 허옇게 보인다. 밝은 날이면 멋있었을 텐데... 오른쪽 능선이 천 길 낭떠러지라 그 아래로 오색의 불빛이 보이고 그곳과 연결되어 끝없이 오르고 있는 오색능선의 등산객들 랜턴불빛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일행과 완전히 헤어졌다. 이런 날 한번 간격이 벌어지고 나면 앞 사람과의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뒷사람은 그 간격을 따라잡으러 자연 무리하게 되고 그만큼 산행을 힘들어진다.


    새벽 산행을 하며 사람이 만드는 여러 가지 소음 중에서 본인은 모르겠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배낭에 종을 매달아 시종일관 딸랑거린다. 한 두 번 들을 때는 그렇게 맑을 수가 없지만... 막히는 길에 추월 할 수도 없는데 계속되는 딸랑이는 듣는 이를 피곤하게 한다. 사람 한 길 반 정도 되는 암릉 내리막에 초보산행객들이 주저주저하는 차에 길은 아주 멈춰버렸다. 요번에는 라디오를 크게 틀고 산행을 하는데... 이 주변에서 가장 잘 잡히는 국군방송에 5시 시보와 함께 애국가를 4절까지 듣고 뉴스까지 듣는데도 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괴롭다!! 뒤에서 문대장님이 알음체를 한다. 어! 문대장이면 제일 뒤인데... 10분정도 길에서 지체하다가 외통수 줄 달린 바위를 통과하니 지게차가 워낙 길을 막았던 탓에 그 다음 길은 제법 한가해졌다. 이제부터는 더욱 분발해서 뛰다시피 진행한다.

                             <우리가 온 서북주능/뒤에 가리산 촛대바위가 보인다>

     6시가 지나며 날이 새니 마음은 더 바쁘다. 무전기에서는 선두가 끝청에 도착하였다 하고 기다리다 추워서 먼저 진행한다고 하니 여기서도 30분은 가야 하는데... 이리 저리 사람들을 추월하고 추월 시에는 순간 추진력을 더해야 하니 다리에 무리도 오고 바쁘다 바뻐...

                                                                   <끝청일출>


06:35 끝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 왔더니 끝청에 도착해서 앞을 보니 대청옆으로 막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사진기부터 들이대는데... 점봉산은 운해 속에 숨어있고...그 뒤로 가리산은 촛대봉과 함께 선경인데... 오늘 하루 눈이 시리도록 보여줄 자연의 향연을 미리 예고하는 듯하다. 선두와 30분 떨어져 있으니 다시 부산하게 출발! 저 아래 중청산장에 사람이 가득하고... 대청에서 일출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길에 빼곡하다. 저 사람들 뒤에 섰다간 희운각까지 오늘 중에 가긴 틀렸다. 잠시 숨 돌릴 틈이 없다.

                                                     <중청산장과 대청가는길 >


07:00 중청대피소.. 학교 다니면서 대청을 20번정도 한 것 같은데... 대청을 옆에 두고 그냥 지나치기는 처음이다. 원래 대간길은 이곳에서 대청을 넘어 죽음의 계곡을 따라 희운각으로 가야 하지만 그곳이 통제구역이라 바로 소청으로 향한다. 이제부터는 양방향 지체와 정체... 종근이가 아빠와 함께 간식을 하고 있다. 중청 내리막에서 바라보면 귀청에서 중청에 이르는 서북주능이 장쾌하고 봉정에서 수렴동에 으르는 용아장성이 현란하다. 생긴 모양으로는 용의 어금니 보다는 송곳니가 맞는데...

<용아장성과 운해>


07:20 소청... 소청은 새벽 인력 시장이다. 삼삼오오 일행과 모여 간식도 나누고 일행도 기다리고 그래도 나는 쉴 틈이 없다. 소청의 내리막은 정체의 극치... 조용히 경치를 음미하기는 도저히 불가하고.. 내가 대간 스케쥴에 맞춰 어절 수 없어 피크에 설악을 왔다만... 다시는 휴일에 이런 곳에는 오지 않으리라 스스로 다짐해 본다. 소청에서 희운각 가는 길은 본격적인 정비가 필요한 길이다. 최소 상행 하행은 분리를 해야 하고 각 방향으로  두 명씩 동시에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어야 한다. 붉은 색 철다리가 사람들로 막히자 철다리 아래로 임시 길을 만들었다. 결국 산이 훼손되는 현장인데...그 길 이외에는 엄격하게 출입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무너미고개 아래처럼 산 전체가 흙이 드러나고 훼손이 심각 해 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도 충분히 훼손이 심하다.          

   

08:10 희운각.. 드디어 윤대장님과 김과장님을 만났다. 출발하면서 순간적인 차이가 6시간 만에 상봉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윤대장님이 고생했다며 막걸리를 권해 얼른 받아 마신다. 희운각은 장터... 많은 사람들이 일행들과 모여 식사도 하고 잡담도 하고... 우리 일행 중 선두는 벌써 출발했고 아직도 4시간의 공룡능선이 남아 있어 맘을 놓기는 어려운 상태... 대청에서 내려오는 계곡수를 물통에 가득 채우고 우리도 공룡하러 간다. 대다수의 등산객이 무너미고개 아래로 내려가 천불동으로 향하니 공룡 초입은 벌써 한가하다. 2년여 대간하며 하루 산행중에 우리 일행 말고 다른 이를 한명도 보지 못하는 산행을 80%이상 해왔던 고상한(?) 등산객으로서 오늘 설악 산행은 고행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조금 한가해 지니 살만하다. 사실 한가해 졌다고는 하나 공룡능선의 특성상 줄이 있는 곳이나 병목구간은 상하행이 엉켜 진행이 지연되고 전망이 수려한 바위 봉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천화대 범봉/애국가 나올때 나오는 장소입니다>

 

08:50 신선봉... 희운각에서 시작된 가파른 능선이 추색을 버리고 낙엽으로 뒹구는 공룡 초입에 첫 봉우리... 이제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를 힘든 등산객에게 선물로 보여준다. 좌측으로 이제는 대청보다 귀청이 중앙에서 좌우를 호령하고 용아능과 물 마른 가야동의 수려한 경관이 발아래 훤히 들여다보인다. 공룡을 너머 내설악으로는 천화대의 장관이 범봉에서 점을 찍고 설악골로 잦아들며 꼬리를 사르고... 그 반대편으로 화채봉 능선이 우뚝솟아 대청봉으로 그 기운을 넘긴다.

                              <공룡능선/그 뒤에 왼쪽 끝이 화채봉 오른쪽이 대청, 중청>

     나를 중심으로 한바퀴 모두 설악.. 설악이다. 멀리 울산바위도 꼭 필요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울산에서 출발해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참여하러 가다가 일만이천봉이 다 찼다는 소릴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는데... 요즘 같으면 입사면접도 못해보고 대신 설악산에 취직한 덕에 우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전화위복의 봉우리다.   


    공룡의 위세가 만만치가 않다. 끝청 가까이에서 선두와 만나려 사람들을 추월하기 위해 순간적인 힘을 쓰곤 했더니 다리에 무리가 왔나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면서 다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잠시 멈춰 호흡을 고르면서 다리가 탈이 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천화대길은 우회한다. 천화대가 시작되는 비선대 지나 설악골에서 이어지는 천화대 리지는 바위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다. 언제나 설레이며 기대하는 그 곳을 나는 오늘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공룡의 등이 움푹 꺼지면서 오늘의 하이라이트 1,275봉으로 향하는 급경사 오르막 너덜길을 시작한다.  너덜의 끝에는 바위틈 사이 길로 줄을 기다리며 늘어선 사람들이 내려오는 사람들과 차례로 몇 명씩 오르고 내리고 한다.       

                                                               <누구 찌찌>


10:15 1,275봉 이제 공룡도 절반을 했다. 발아래 세상은 이제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다만 내 마음속에만 담아 둘 뿐이다. 화창하게 맑은 날씨이지만 옅은 운무가 있어 사진도 제대로 나올지 의문이다. 정면에 보이는 귀청에서 중청 지나 이제까지 온 길과 마등령 너머 황철봉 지나 가야할 길이 뚜렷히 잡힌다. 과일과 막걸리로 다시 한 번 힘을 돋운다. 공룡에 들어서면서부터.. 특히 힘이 빠진 경우에는 네발 달린 짐승처럼 걷다가 기다가 갈 때가 더 많다. 네발로 가다 보니 다리에 힘이 빠질 때보다 팔에 힘이 빠질 때가 훨씬 위험하다. 줄잡은 손에 힘이 빠지며 줄을 채기 힘드니 순간적으로 팔에 힘이 빠지며 위험해 진다.  1,275봉을 넘던 분위기로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으니 나한봉. 저 아래 마등령에 모인 사람들이 보이고 무사히 공룡을 마무리 했다는 안도감에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 마등령에 도착한다.   


11:50 마등령(1,327) 가을의 햇볕이 쏟아지고 있다. 속속 모인 늘보 대원들이 새벽부터 이제까지 본인들이 겪었던 무용담을 격하게 엮어내며 즐거워하고 있다. 과일들이 오가고 음식이 오가고 특히 재원씨 친구분이 귀하게 라면을 끓여 뜨끈한 국물을 먹고 나니 온몸이 늘어지는 게 띵호와! 감사합니다.! 김과장님과 마등령 정상까지 올라갔다 와서는 다들 유명한 독수리상 앞에서 단체 사진 찰칵!!

                                                       <마등령 독수리>

           

     예전에는 간이 매점도 있었고 흥청거렸는데... 국립공원이 정비되면서 이제는 흔적도 없다. 이래저래 30분도 더 놀다가 출발이다. 공식 대간길은 이제 마무리고 나머지는 하산길인데... 가까운 설악동 쪽은 단풍인파로 주차장까지 버스가 접근하지 못해 부득이 백담사 쪽으로 하산을 정했는데... 하산 길로는 이 길도 만만치가 않은 거리라 부담스럽다. 

 

<오세암>


13:45 오세암... 긴 너덜을 지나 마른 계곡도 건너고 5살난 어린 동자승의 슬픈 전설에 어린 오세암에 가을이 깊숙이 내려와 있다. 산 위에는 서리까지 내리고 잎이 다 져버린 겨울이지만 오세암에는 붉고 노란 가을이 고즈넉한 적막과 함께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좋은 자리에 지은 절집이라 따사로움이 그렇게 안온할 수 없다. 오세암 아래 영시암이 예전에는 길옆에 표나지 않은 조그만 암자였는데... 이제는 제법 커다란 법당을 세우고 커다란 스피커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부처의 불!” “부처의 불!”

     각종 언론에서 요번 주가 설악 단풍의 피크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정산에서 등산객들이 투덜거렸는데... 수렴동의 단풍을 보니 과연 거짓이 아니었다. 옥색 맑은 물에 붉은 색 단풍이 어우러져 신선의 경지가 틀림없다.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윤대장님 전용(?) 목욕탕에서 씻고 나니 이제사 정신이 든다.    

                                                             <수렴동의 가을>

        

15:40 백담산장... 주먹돌로 아담하게 지어진 산장 앞에서 쟁반도 겨우 들을 거 같은 할아버지가 막걸리며 감자전이며 팔고 있길 레... 차마 갔다 달라기가 뭐해 내가 주방에 들락거리며 소박한 마무리 상을 차렸다. 단풍이 해넘이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는데... 해가 넘어가는 이 시간.. 눈에 넣기가 아까울 정도다. 독일에 있는 친구가 내 산행기를 읽으며 가을이 되면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잎에 일체의 양분과 수분 공급을 차단해 잎이 마르며 색이 변하는 것을 단풍이라 한다는데... 사람으로 친다면 구조조정이나 옛말로는 고려장(?) 하여튼 슬픈 사연을 지닌 단풍이 보기에는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공룡을 하지 않고 봉정에서 수렴동으로 하산 하신 민 선생님이 하산주가 끝나고 자리를 내주셔서 윤대장님과 이헌모선생님, 김과장님과 함께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예전에는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7키로를 항상 걸어서 다녔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요즘은 미니버스가 다녀 힘든 등산객의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워낙 인원이 많으니 10대 가까운 버스가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는 있으나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우리 차례가 올 거 같은데... 일행이 기다리는 곳에 뒤에서 온 일행이 붙으면 자연 실랑이가 일어나고 그러는 사이에도 앞에는 계속 인원이 늘어나는 거 같고. 한 20분 기다렸나? 누군가 뒤에 올 우리팀 막내 종근이 걱정에... 문대장님이 보초서고 뒤에 분들에게 우리팀 막내들이 올테니 우리는 먼저 걸어가겠노라고 양해를 구해놓고 김과장님, 이선생님 등 우리 일행 5명은 용대리까지 걷기로 한다.        

                                                       <추색의 백담계곡>

  

18:30용대리...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마지막 한 시간은 기계적으로 걷기는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상황인데... 그래도 환갑을 넘으신 이헌모 선생님은 잘도 걸으신다. 새벽 두시반에 출발해 16시간의 산행이 마무리되었다. 20년전 불 없는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로 저녁밥을 먹은 이후.. 그 당시에는 거금을 투자해 배터리는 허리에 차고 줄로 머리까지 연결하는 해드랜턴을 샀는데... 오늘도 해드랜턴을 머리에 차고 따뜻한 시래기국에 만찬으로 산행을 마무리한다. 근데... 이거 점심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