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10. 31 02:30~14:00 (14.4Km, 11시간 30분)
산행구간 : 미시령(767)-1,318봉-황철봉(1,381)-저항령-1,249봉-1,326봉-마등령(1,240)-금강굴-비선대-설악동
날씨 : 청명한 가을
10월의 마지막 밤...대간이 마무리되어 가면서 한 구간 한 구간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아쉬움을 달래려 한 시간 미리 도착한 방산시장 한 모퉁이 노점에서 각종 전을 안주삼아 이대장님, 김과장님과 조촐한 출정식을 거행하는 차에 곁에 동석중인 취객과 주인아주머니와 술값 8천원을 외상 하자고 시작된 실랑이가 주먹다짐으로 커졌다. 물론 큰돈은 아니지만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벌써 3번째 상습적으로 외상을 하는 취객이 미웠을 테고, 취객 입장에서는 적은 돈으로 분위기를 망친 아주머니가 야속했을 텐데... 불황의 골이 깊어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북새통에도 사진기 달린 최신형 휴대폰으로 경찰까지 부르는 젊은 취객의 아이러니 한 행동에 실소를 금할 수 가 없었다.
뒤늦게 족발까지 준비하신 이여사님과 재원씨와의 2차까지 다 참견하였더니 약간 무리였는지... 휴게소마다 잠에 취해 미시령에 다 도착하도록 깨어나지를 못한다. 뒤늦게 잠에 깨어 버스를 내리려니 호각소리가 나고 일부 대원들이 다시 버스로 되돌아오고 난리가 아니다. 황철봉 구간은 설악산 국립공원 자연휴식년제 제5기 시행에 따라 2005년말까지 3년 단위로 계속 출입이 통제되는 구간이라 입산을 통제하는 공단 직원이 있었던 모양인데... 일부 대원들은 벌써 산으로 들어간 상태에서 나머지만 제지를 당해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대간 산행을 하면서 산불조심 기간과 같이 일시적인 통제와는 달리 자연휴식년제는 장기간 출입을 막는 통에 백두대간 완주라는 결코 쉽지 않은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는 대간꾼들에게는 커다란 장애가 아닐 수 없다. 군사지대인 향로봉도 신원 확인을 위한 소정의 절차를 거치면 통행이 가능한데... 실효성도 없이 대간 길 막아 놓고 알아서 다니라는 행정편의 보다는 각종 산악회나 개인 차원에서라도 절차에 따라 신청자를 받아 일정 인원의 통행을 허용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며 필요에 따라서 환경 보호를 위해 공단 직원의 동행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 직원의 통제에 따를 의향이 있다. 대간하는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긍정적인 검토가 요망된다.
02:35 미시령 정상. 드디어 첩보작전이 감행되었다. 속초 쪽으로 약간 내려선 버스는 불을 모두 끄고 대원들도 랜턴의 불을 모두 끈 상태에서 조용히 숨소리도 죽이며 산으로 스며들어 간다. 어디 간첩영화 찍는 분위기... 움푹 꺼진 사면을 타고 능선에 올라서니 보름을 3일 넘긴 화사한 보름달이 교교히 우리를 비추고 있다. 이 정도면 랜턴 없이도 산행 할만하다.. 달도 밝고. 별도 밝고, 속초의 야경도 밝고..마음도 밝다. 미시령정상을 기점으로 오늘로 설악구간은 마무리되고 다음번은 신선봉에서 시작되는 금강산 구간이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에 향로봉, 칠절봉, 둥글봉, 삼봉, 신선봉이 남쪽지역에 있다 한다.
03:40 슬슬 오늘 산행구간의 특색인 너덜이 간간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1시간정도 완만한 능선이 지나고 우리 나라 최대의 너덜지대라는 황철봉 죽음의 너덜지대가 시작된다.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데... 북행하는 코스라면 마등령 잔돌너덜부터 저항령의 중간너덜 이곳의 큰 너덜순으로 돌의 크기가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남행하는 중이라 커다란 너덜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되었다. 말 그대로 큰 돌은 덤프트럭 1대에 돌 한 개 실으면 딱 맞게 너덜도 크고 틈새도 위험하다. 그래도 이제까지 2년여 우리를 돌보아 주신 대간 귀신들이 보우하사 11월임에도 불구하고 눈도 아직 없고, 새벽 서리도 없고 돌을 밟아도 미끄러지지 않고, 손을 잡기도 좋다. 눈, 비오는 길이라면 위험할 곳이다.
<너덜... 멀리 대원의 해드랜턴이 보인다>
04:10 1차 대규모 너덜지대를 통과했다. 보통 1시간 걸리는 길이라는데... 내리막이 훨씬 조심스러울 거 같고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김대장님을 따라 올랐더니 30분 만에 황철북봉 정상아래 너덜 끝에서 숨을 고른다. 너덜... 지금은 이렇듯 쉬고 있지만 수천만년전 황철봉은 끓어오르는 열정을 참지 못해 화산활동으로 가슴속에 담고 있던 것들을 폭발처럼 토해내서 그게 다시 그만한 세월동안 풍상에 다듬어진 성질 있는 봉우리리라...그래도 지금은 성질이 많이 죽었을 테지....
앉아 있는 중에도 김대장님은 너덜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뒤에 사람에게 랜턴으로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뒤에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앞 팀이 일어나면 힘이 빠진다고 김대장님이 배려하여 잠시 달빛에 비치는 운해도 구경하고 우리 있는 곳과 앞쪽의 신선봉을 비교하며 어느 곳이 높은 지와 멀리 보이는 한 무리의 불빛이 양구라거니... 아니니 하며 환담도 나누니 몸에 땀이 식으며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특히 이곳은 바람골이라 11월이면 벌써 살을 에이는 바람이 무서운 곳인데도 오늘은 바람 한 점 없이 최고의 날씨다. 우측의 울산바위 쪽으로는 소리 없는 운해가 점령군처럼 바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어둠속이지만 달빛에 운해가 장관이다. 우리가 쉬던 곳에서 바로 출발하니 정상의 삼각점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이 황청북봉인 1,318봉이다.
이제 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김대장님 바로 뒤에 붙어 잠시 진행하다가 순간 길을 잘못 들었는데.. 바로 되집어 나오면서 일행들과 거리가 벌어졌다. 어둠속이라지만 달이 밝아 길을 찾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만약 안개가 짙게 있는 날이라면 길 잃어먹기 십상이다.
05:00 황철남봉... 너덜 정상... 이제 모든 일행이 흩어졌다. 바로 앞에 있던 새로 오신 대원님이 진행을 멈추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갑자기 사방이 터지며 대규모 너덜이 나타났다. 조심스레 정면으로 진행 하시는데... 좌우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방향이 아닌데... 희미하게 1,249봉이 왼편으로 보이길 레 진행을 멈추시게 하고 좌측으로 90도 틀어 진행토록 했다. 어렴풋이 바위에 오랜 시간 사람이 밟은 흔적이 있는 것도 같다. 앞서가신 대원님들이 야속하다. 이런 길에는 대오의 마지막 사람은 남아 방향을 알려줘야 하는데... 김대장님도 아까는 불빛도 비춰주고 하더니만... 어둠속의 너덜길이라 리본도 방향표도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특이하게 너덜에 붙은 이끼 같은 것들이 들떠있어 손에 까칠거리며 손과 발을 확실하게 딛기가 겁난다. 오르막도 힘들지만 내리막은 더욱 조심스럽다.
05:45 2차 너덜을 통과하였다. 한참을 기다려 민선생님이 황철남봉에서 이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확인하고... 뒷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라 당부드리고 진행을 계속한다. 군데군데 바람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가지를 펼치고 있는 소나무가 있어 밝은 날 이었으면 볼만했겠다. 저 아래 저항령이 보이고 벌써 1,249봉의 중간을 타고 오르는 우리 선두의 불빛이 보인다.
<황철봉 너덜>
06:10 저항령.. 외설악의 설악동과 내설악의 백담사나 용대리를 이어주는 길의 정상이다. 텐트 여러 동을 칠 수 있는 넓이의 부드러운 금빛 초지가 새벽서리를 맞아 반짝이고 있다.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렸는데... 그 위험한 너덜 길에 물기 없이 안전산행을 하게 해 주신 황철봉 대간 귀신님에게 감사! 또 감사!!... 이곳은 한국동란의 치열한 전투가 치루어진 피의 능선으로 이곳의 전투를 기리며 소공원 입구에는 무명용사비가 서 있다. 6·25의 아픈 상처가 서린 곳으로 이름 없이 쓰러져간 젊은 영혼들을 위한 비이다.
선두는 벌써 1,249봉을 다 가고 있고 뒤로는 민선생님이 내려오고 계신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1,249봉을 향해 너덜 길로 들어선다. 25년전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하도 자주 설악산에 오니 저향령 계곡이 설악동과 만나는 다리 옆 노인정 정자 부근에만 오면 주변의 가게에 사는 놈인지 강아지가 항상 반갑게 알음체를 하곤 했는데... 가까이 민가가 있는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놈 후손이 나를 알아보나? 감회가 새롭다. 너덜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아까 너덜이 집채만 했다면 이곳은 장독대만 하다고나 할까.. 날이 새고 앞이 보이니 먼발치 위에 있는 너덜이 내쪽으로 쏟아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어두울 때는 안보여서 몰랐더니 눈에 보이니 무서움까지 보인다... 내참!!
<울산바위>
06:30 1,249봉 한없이 갈 것만 같던 너덜 길도 20분 만에 올랐다. 황철남봉에서 저항령으로 내려오는 일행이 보이고, 도도하게 버티고 있는 황철봉과 사방으로 쏟아져 있는 너덜들이 마치 이곳저곳 피를 흘리고 있는 상처투성이로 보인다. 그나마 한쪽은 운해가 깊숙이 들어와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지만 운해 위의 세상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반대편으로는 우리가 가야 할 1,326봉이 뒤에 대청봉을 배경으로 어서 오라 손짓하고 있다. 7시가 가까워지며 운해 위로 일출이 시작되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일출을 잡기 위해 순간순간 카메라의 셔터가 분주하다. 장엄한 순간이다.
<운해와 일출>
<운해의 바다>
선두는 바위 능선을 넘어 산행을 시작했지만 후미에 이제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한 대간 일행이 오고 있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 잠시 기다리니... 기다린 보람이 있다. 김과장님 막걸리가 나오고 이여사님 김밥에 산상 만찬이 벌어졌다. 지도상에는 1,249봉을 우회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일출을 보는 기쁨을 만끽하고 만찬까지 즐겼다.
<1,249봉에서 뒤는 1,326봉.. 멀리 대청봉>
1,249봉 하산 길 양지녁에 철 잊은 진달래가 여러 그루 피어 있다. 정신 나간 놈 아냐?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낼 모래면 눈과 서리에... 닥쳐올 가녀린 진달래의 운명에 걱정이 앞선다.
<철없는 진달래>
1,326봉 오르는 길의 너덜은 이제 잔돌로 변했다. 이제는 사람이 많이 밟은 곳은 등산로로 흔적이 뚜렷해 좌로도 우로도 길이 되어 버렸다. 드디어 너덜지대의 대단원의 막이 내리고 있다. 어찌 보면 설악 전체가 크게 작게 너덜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너덜 산행은 그 백미라 아니 할 수 없다.
<성질 많이 죽은 황철봉>
08:50 1,326봉 설악전체를 포함하여 가리산과 멀리 향로봉과 이어지는 군사도로까지 조망되는 설악 최고의 전망대..세세히 빼어남을 자랑하는 봉우리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해가 중천에 올랐는데... 무었이 아쉬운지 황철봉 머리 위로 하얗게 색이 바랜 달이 아직도 버티고 있어 하늘과 땅에 삼라만상이 대간의 마무리를 축하 해 주는 듯하다. 언제 또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겠는가... 가슴이 터질듯이 감격이 밀려온다.
09:20 마등령 삼거리(1,320) 이제 오늘 목표로 한 대간의 종착지에 도착했다. 지난번 산행에서 마등령에서 오세암으로 내려가며... 옛날에는 여러 번 했던 길이지만 대간 산행의 의미가 달라 김과장님과 따로이 이곳까지 왔다 갔다. 두주 만에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마등령은 산행객을 찾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한적하다. 우리 식구들끼리 빙 둘러 앉아 음식도 나누고... 정성주도 나누고... 오늘 다른 일행분들과 공룡능선을 하고 오신 이대장님을 만나 다 함께 기념사진도 한 장 찍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산.
<바위타는 젊은이/봐서는 모른다>
천불동이 가까울수록 단풍이 아직도 장관이다. 금강굴 맞은편의 암장을 오르는 젊은이들의 맑은 구령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어 좋다. 초보가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모양이다. 반대편 중간 미륵봉에는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금강굴이 있다. 집에 고시준비생이 있는 김과장님이 이곳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나도 마음으로 같이 기원해 본다. 금강굴은 소공원에서는 3.6Km 비선대에서는 500m라 많은 단풍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는데... 대학생정도 되는 하마만한 아들과 말만한 딸이 금강굴까지만 가자는 부모와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만 가자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무슨 일이나 ‘뜻이 있어야 길이 있다’고 산에 의미를 두지 못하는 어린 사람에게 등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2:20 비선대.. 재원씨와 둘이서 비선대 다리 아래 훌훌 벗어부치고 씻으러 들어갔다가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예전 생각만 하고 텀벙 들어서는데... 겉으로는 명경지수 맑은 물이 바위에 물이끼가 미끄러워 걸을 수조차 없을 지경인데... 아!! 이곳도 이제는 많이 오염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공연히 서글퍼진다. 어디는 아닐라고... 사람이 이리 많은데...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어 휘청거리는 데... 반대편 초면의 여자 관광객은 그 모습에 웃는다... 무지한 인간 같으니라고...
옛날에 와선대에서 누워서 산수를 즐기던 마고선이란 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비선대라고 한다는데... 오늘은 비선대 입구에 이대장님이 지키고 있다. 우리 대원들이 막걸리 판이 시작되면 길어지니 미연에 막자는 취지인데... 여기서 막걸리로 하느니 빨리 출발해서 대포항의 회로 하자고 대안까지 마련하고 꼬시지만... 물론 뻥이다. 그리고 와선대 아줌마가 우릴 놓아주질 않는다. 우리도 탁탁 털고 못 본채 할 수도 없다. 어찌하나!! 한 잔 하는 수밖에... 그래도 간단히 끝내고 이대장님 먼저 내려간 후에 군량장에서 2차하고 기분이 도도한데... 소공원의 단풍은 아직도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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