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10. 3 03:50~12:10 (21Km, 8시간 20분)
산행구간 : 구룡령(1,013)-갈전곡봉(1,204)-왕승골안부-1061봉-쇠나드리-조침령(770)
날씨 : 청명한 가을
매년 그렇듯 가을이 되니 안팎으로 행사가 많다. 대간 가는 날.. 전남 광주에서 이종사촌의 결혼식이 있단다. 어머님께 편부만 할까 엄청 고민하다. 항상 아껴주시는 이모님의 얼굴이 앞을 가려 먼 길을 나선다. 전날 중학교 동창들과의 진한 전투의 후유증이 가시지도 않은 채... 5시에 일어나 용산에서 아침 7시 KTX.. 예식보고. 2시 KTX로 다시 서울로... 고속철이라지만 새마을보다도 좁은 자리에 왕복 6시간 이상을 버틸라 하니 다리가 뻣뻣하다. 무슨 데모인지 길 막혀 안 오는 버스를 30분이나 기다려 분당에 집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몸은 파김치.. 야속하게도 분당까지 오기로 한 산악회 버스는 일정이 바뀌어 양재로 온다 하니 서둘러 짐 챙겨 양재로 향한다. 정말 바쁘다...
강원 산간지방에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10월에 무슨 한파? 라고 의아해 하지만 전날보다 최저기온이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한파라고 하는데... 이런 날 특히 홈리스들이 저체온으로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단다... 산악회 일부가 향로봉을 가는 날이라 이대장님은 그쪽으로 갔고, 윤대장님이 오늘 일정을 지휘한다. 선수들에게 비교적 원만한 코스라 4시까지 잠을 재우고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출발하겠다는데.... 1시간이 어디냐!? 힘든 몸.. 잠이나 자두자고 애써 잠을 청하는데... 3시 삼봉자연휴양림 입구 명개리휴게소에 불 끄고 시동까지 끈 버스에서 일부 대원들이 벌써 산행준비 하느라 부시럭거리는 통에 잠은 다 달아나고 시원한 공기나 마시자고 버스에서 내리니 0도 정도의 쨍하는 새벽아침에 달도 밝고, 별도 밝다.
03:50 구룡령 출발.. 오랜만에 고어택스 자켓이 거북하지가 않고 맑은 날씨에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기만 하다. 지난번에 내려왔던 약수산 방향 휴게소 뒷사면에서 시작해서 약간 미안하기는 하지만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마루금을 잡았다. 구룡령이 1,013이니 1,089능선까지는 잠시... 길은 원만한 능선으로 갈전곡봉을 향한다. 이 길은 벌써 서너번 했던 길로 갈전곡봉에서 대간길을 버리고 좌회전하면 가칠봉이 나오고 그 아래 엄청 급경사 길로 하산하면 삼봉 자연휴양림이 나오는데... 미국에 있는 선배가 0.1톤이 넘는 하마같은 아들의 극기 훈련을 부탁해 밀고 당기고 등반에 성공해 그 아들놈이 환희에 기뻐하던 길이고... 또 한번은 2002년인가? 우리 애를 포함해 가까이 지내는 친구 애들까지 홍규, 유정, 현도, 정우 등과 함께 삼봉에서 그 험한 가칠봉을 거쳐 구룡령까지 같이 했던 길이다.
평소 주변에 잡복이 많고, 숲속의 길이라 좌우의 조망이 전혀 없는 지루한 길인데... 오늘은 벌써 잡목이 낙엽이 되어 많이 떨어진 상태라 구룡령에서 잠시 올라오니 양양시내의 불빛이 잡힐 듯이 보인다. 길은 발아래 새벽 서리가 있었는지 살포시 젖어있는 상태인데.. 이런 길이 또 쥐약이다. 멋모르고 긴장을 풀고 내리막에서 드러난 나무뿌리를 밟았다가는 꽈당탕... 벌써 몇몇 대원이 미끄러운 길에 봉변을 당한다. 오늘따라 랜턴의 건전지가 다 되었는지.. 불이 희미하다.
05:30 갈전곡봉(1,204)... 반대편 왕승골에서 올라오는 갈전곡봉은 7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정말 만만치 않은 길이지만 구룡령에서 오르는 갈전곡봉은 동네 산 정상 오르기만도 못하다. 게다가 사방도 잘 안 보이는 숲속에 덩그러니 나무 이정표만 가칠봉과 왕승골을 가리키고 있다. 랜턴 건전지도 바꾸고 잠시 숨을 돌린다. 이제 미끄러운 진흙 내리막에 경사가 심하다. 쇠나드리 민박집에서 1박하고 역주행하는 대간꾼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곳으로 오르려면 상당히 힘이 들겠다. 등 뒤로 일출이 시작되려는 듯 약수산 능선이 붉어지고 있다. 오늘 일출은 6시30분, 잡목 숲 가운데 그나마 사진 조망이 가능한 자리에 잠시 이동을 멈추고 일출사진 대기... 준비! 지금이 닷!! 일출은 순간이다. 머리끝이 솟았다가 둥그렇게 올라버려 눈으로 바라보기 힘들 정도가 될 때까지 채 1분이 지나지 않는다. 작년 이맘때도 그러더니 0℃ 정도의 기온에 알카라인 배터리가 전혀 동작을 안한다. 두 개씩 한조가 되어 6개의 배터리 모두 힘을 쓰지 못한다. 오랜만의 일출인데... 낭패다.
06:50 왕승골 갈림길...추색이 완연하다. 이곳이 워낙 색으로 자랑하는 나무가 귀한 탓에 잡목은 소리 없이 벌써 스러져 버려 산이 휑하고.. 빼어난 색을 자랑하는 단풍은 간간히 한 두 그루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가을이 많이 내려앉았다.
산은 물을 가른다. 왕승골 계곡은 조금 아래 약수산 마늘봉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미천골에서 나오는 큰 물줄기와 합쳐저 양양 남대천으로 흐르고, 조금 지나 좌측 연가리골 계곡은 방태천을 따라 내린천으로 흐르고 이 물은 소양호를 지나 북한강으로 흐른다. 다시 대간은 경사를 붙인다. 앞서가던 최대장님과 홍총무님이 노루궁뎅이 버섯을 따고 나서 자랑이 대단해 머리를 들어 참나무 가지만 쳐다보고 가다가 몇 번 넘어질 뻔 했다. 아서라! 쓸데없이 산행이나 열중하지 물심에 마음이 빠져 발이라도 삐끗하면 나만 손해다. 최대장님 뒤따라가다. 정말 애기 주먹만 한 조그만 노루궁뎅이를 발견하고 이건 키워서 내년에 먹자고 그냥 지나치려 하니, 이건 일년생이라며 따라고 성화를 부려 땃더니 얼른 뺏어간다. 누구 아픈 사람 준다나! 나중에 혼자 먹다 들키면 주-- 거--이씨..!!
<자연산 느타리/ 육질이 엄청 쫄깃했습니다>
07:55 무명봉.. 968봉도 지나고 더 높은 봉우리. 지도에는 잡목지대라 해 놨다. 힘을 몰아쉬며 겨우 올라서니 방 빼려다 윤대장님이 다시 막걸리를 꺼내며 한 컵 가득 따라준다. 윤대장님이 막걸리를 푸는 시점은 오늘의 최고봉이거나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를 마치고 이제부터는 비교적 수월하다는 의미이다.
<이쯤되면 고마운 길잡이가 아니라 자기과시용입니다>
08:10 연가리골 샘터... 텐트 서너동은 칠만한 안부에 샘터까지 있으니 야영하기 좋겠다. 이제 1,059봉으로 오르는 힘든 오름길.. 하루에 20여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나드니 은근이 힘에 부친다. 이틀간 잠을 제대로 못자고 좁은 기차와 버스에서 오랜 시간을 쪼그리고 버텨서 그런지 생전 그런 일이 없었는데... 허벅지가 마비되어 쥐가 나려고 한다. 지도에는 단풍 군락지로 되어 있다. 이제까지의 풍광과는 다르게 정말 붉게 물든 단풍이 군데 군데 장관이다.
단풍도 아름다웠지만 조침령 방향에서 팔등신의 늘신하고 도시적으로 이쁜 얼굴을 한 젊은 아가씨가 지 몸 2/3만한 어택을 메고 구룡령 방향으로 홀로 종주를 하고 있다. 우리가 방금 왕승골에서 갈전곡봉의 험로를 보고 온 상태라 나도 어택을 보고는 은근히 걱정되는 데... 어떤 경로로 저런 이쁜 아가씨가 무서움도 없이 홀로 종주를 하는 지... 김과장님이 걱정이 태산이다. 참 이쁘고 볼 일이다. 해가 오르고 날이 풀리니 온도도 올라가고 아까 바보 같던 디카도 이제 다시 작동을 한다. 단풍도 찍고, 하늘도 찍고, 꽃도 찍고, 나비도 찍고...
09:30 단풍군락지를 지나 미천골과 만나는 윗황이로 떨어지는 안부 가까운 곳에서의 식사시간.. 백사장님과 홍총무님의 김밥을 얻어먹느라 내 떡이 인기가 없다. 고량주가 돌고... 포도주가 돌고 그래도 아무것도 못 먹다가 곡기가 들어가니 훨씬 살 거 같다. 내리막은 지난번 양수발전소 부근에서 조침령 내리막처럼 나무를 밖아 길 훼손을 막고자 정비를 해 놨다. 좌측으로는 쇠나드리 부근의 길과 방태천이 보인다.
11:05 쇠나드리 갈림길... 이제 딱 그만 갔으면 싶은 자리에 쇠나드리 갈림길이 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전반적인 길을 머릿속에 구상을 하고 90%정도 진행을 하면 그만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거리가 길고 짧은 게 문제가 아니고 12시간짜리는 11시간, 8시간짜리는 7시간 진행하면 그러는 걸 보면 그때쯤이면 거의 다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는 모양이다. 대충 그런 의미에서 대간 마무리 부분은 심정적으로 항상 힘들다. 지난번 하산길에서와 같이 이곳에도 바보 같은 이정표가 있다. 기왕에 비싼 돈을 들여 이정표를 만들었으면 방향에 거리는 기본인데... 커다랗게 만들어 놓고도 여기가 어딘지, 거기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이쪽 구룡령, 저족 조침령 끝이다. 쇠나드리는 바람불이라고 표기해 놓았는데... 아마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인 모양이다.
이제 1시간 죽었다고 복창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오히려 길이 오른쪽 산으로 틀어지며 도로와 거리가 벌어진다. 고개를 하나 넘자 넓은 안부에 옛 조침령인 모양인데... 예전에는 이곳이 쇠나드리와 서림을 잇는 길이었는데... 지금의 조침령길에게 이름을 양보한 것 같다. 쇠나드리에서 조침령도 다섯 개 정도의 봉우리를 넘나든다. 멀리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 떠 있고 점봉산 뒤로 귀청에서 끝청을 지나 대청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의 장쾌한 능선이 다음 산행을 기약한다. 오라! 나에게!! 간다! 너에게...
11:45 조침령... 지난 산행을 마친 곳과 만나 대간 마루금이 이어졌다. 점봉산 쪽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이 계속 내려오고 있다. 백사장님과 만나 길옆에 풀석 주저앉아 남은 과일과 간식을 하며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꽃과 나비>
12:10 진동계곡... 우리 버스가 기다리는 곳에 홍총무님이 닭백숙을 끓여 놓고 깜짝쇼가 벌어졌다. 대간하며 닭백숙은 처음이다. 거기에 밥까지 넣어 죽까지 한 그릇! 환상이다!! 늦게 온 우리 일행도 맛보게 한다고 최대장님이 일부 남겨놓으라 했다고 먼저 온 대원들이 난리지만... 나는 그런 말에 대꾸할 틈도 없이 먹기만 한다. 입이 한 개라 먹는데 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우리 막내 대원을 소개한다. 벌써 두 달정도 같이 산행을 했는데... 안산 시랑초등학교 5학년 김 종근 군 새벽 1시도 됐다. 3시도 됐다. 한참 꿈나라를 헤메일 시간에 일어나 산행을 나설 때는 그렇게 안쓰러울 수가 없지만 일단 시동만 걸리면 어른 대원에 못지않게 장하고도 장하다. 지금 그 애가 배워야 하는 국어나 산수보다 훨씬 고귀한 우리의 산하와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자립심 그리고 호연지기가 종근이를 더욱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주리라... 종근이에게 항상 재미있는 산행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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