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백두산 가는 길(중)

마운차이 2011. 9. 7. 14:47

백두산에 왔으니 이제 천지에 직접 내려가 볼 차례,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다시 차를 타고 산문으로 가지만 우리는 천지를 직접 내려가기로 한다. 일부 적극적인 산악회는 서파에서 이곳 북파까지 9시간의 종주를 감행하는 곳도 있고, 서파에서 종주를 한 후 천지물가 달문에서 장백폭포로 계단을 따라 하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우리 돈 4만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이 촬영 될 때만 해도 북파산문에서 장백폭포 옆 계단을 따라 천지로 오르는 길이 북파의 주 등산로였으나 이 길은 하산 만 부분적으로 개방하고 등산은 일체 폐쇄해 버렸다.

 

 

 

천문봉을 내려와 아까 차에서 내린 건물 옆 난간 한쪽이 열리며 두 명의 현지 등산 가이드가 우리를 천지 물가로 안내한다. 난간을 통과하여 철벽봉으로 가는 길은 잘 부서지는 화산석 길과 끝없어 펼쳐지는 들풀과 잔디의 평원... 간간히 이름모를 백두산 들꽃이 우리를 반긴다. 혹시나 설악산 공룡능선에 있는 에델바이스를 볼까하고 살펴봐도 있을 법은 한데...보이진 않는다. 좌측으로 천지를 내려 보며 우측으로 걷는 평원 길은 선계인가! 불계인가! 신선이 사는 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내 취향의 선녀만 없다.

 

 

 

철벽봉에서 우리 일행은 본격적으로 하구벽 급경사 내리막을 타고 내린다. 주먹만한 돌부터 고도를 조금씩 낮출 때마다 크고 작은 너덜을 조심 조심 내려오면서도 순간적으로 미끄러지며 돌을 굴려 아래 있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북파능선이라 천지를 향하는 내리막은 양지바른 남벽, 천문봉에서의 추운기운이 어느덧 사라지고 따듯한 햇살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잠시 해발로 100m 정도 내려왔는데...봉우리 능선의 잔디는 온데 간데 없고, 이곳은 무릎까지 오는 들풀과 꽃들이 너덜들 사이에서 잘도 자라고 있다. 다 햇볕 덕분인 거 같다.

 

천지와 각 봉우리들 구경하랴, 좌우에 만개한 들꽃 구경하랴, 돌 굴릴까봐 긴장하랴...몸과 마음이 바쁘다 바뻐!, 우리와 같이 내려가는 리바트 직원들도 연신 구호를 외치며 조직의 단합을 도모하고 있다.

 

승사하! 천지의 물이 자그마한 내를 이루어 장백폭포로 이어지는 물가에 도착했다.

우리 민족은 이 강을 천하라고 불렀는데 전설속의 이야기에서 쪽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한자어로 승사하라고도 부른다. 승사하는 룡문봉과 철벽봉사이의 V형 협곡을 따라 북으로 흐르다가 폭포아래서부터 송화강의 원류인 이도백하로 이어진다.

 

 

 

강폭이 좁아 보여도 쉽게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물살이 빠르다. 신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반바지를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접고 한 발 한 발 미끄러지지 않도록 걷는다. 찬물에 발에 마비가 오는 듯 물이 시렵다. 더구나 2m 정도 남기고는 발밑이 푹 꺼지면서 결국 속옷까지 젖고 말았다. 내가 이 정도면 여자분들에겐 보통 일이 아닐 듯 싶은데... 우리 중에 가장 긴 따꺼인, 양쎄너장이 사모님을 업고 건너더니 다시 건너올 줄을 모르는데...그래도 고장 난 땡크처럼 송현 사장은 다섯 번을 왕복하며 여자분들을 업어 나른다. 결국 몇 분이 빠른 물살에 쓸려 넘어졌고 핸드폰을 천지에 제물로 바쳐야 했는데... 해마다 7월쯤이 되면 천지호수의 괴물이 나타났다는 미확인 보도가 뜨곤하는데...그때가 얼음이 녹고 백두산 관광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아마 중국정부의 천지 마케팅이 아닌지..하여간 그 날 천지물에 제물(?)이 몇 명이나 빠졌어도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승사하를 거슬러 천지를 눈앞에 둔 평평한 지대에 이르면 야트막한 둔덕을 넘어 드디어 천지물가 달문에 도착한다. 발이 시려워 잠시 담구기도 어려운 곳에 들어가 배가 부르도록 천지물을 손으로 떠서 마신다. 아! 세태에 찌든 내 몸속에 오욕지정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참내! 사람이란 게 뭔지...천지물로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 놓고 제일 먼저 한 일이라는 게... 점심을 먹는 일이다... 무슨 끝발인지 몰라도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북파산문에서 장백폭포로 오르는 등산로도 폐쇄하고, 주변의 잡상인들과 건물들도 철거한다면서 도, 달문의 쓰러져가는 간이건물에서는 천지물로 신라면을 컵라면으로 끓여주는데...겁나게 맛있다. 술도 몇 순배 돌고...승사하 건너면서 안전사고를 대비해 점심은 도로 건너서 먹자고들 해놓고 막상 컵라면을 끓여주는 천지물가의 유혹을 피할 수가 없었다.

 

 

장백폭포!! 짚차로 하산 한 곳에서 다시 우리는 장백폭포로 향한다. 폭포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아무리 백두산이라 우겨도 오늘 우리가 등산한 곳은 장백산이 엄연한 현실이다. 몇 해전 중국에서 열리는 동계 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우리 선수단이 백두산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체 이런 행동을 난동으로 규정하고 엄하게 금지하고 있단다. 지들은 북경 아시안게임 성화가 우리나라에서 돌때 한강다리를 막고 난리를 쳐놓고는...쯧..아쉬운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천지의 물이 장백폭포로 떨어지는 것 이외에도 백두산이 화산활동이 계속되는 산이라 사방을 붉게 물들게 하는 화산물이 한쪽으로 계곡을 지어 흐르고 있는데...누군가가 그곳에 삶은 계란을 사들고 와 호기심에 먹어봤더니 삶은 계란이 그게 그거지 뭐! 사람 마음이란 게 백두산과 천지까지는 그렇게 감동이 차고도 넘치더니만, 장엄한 장백폭포를 보고도 남의 땅이라 그런지...폭포가 다 그렇지 뭐...ㅋㅋ

 

가이드가 바빠졌다. 우리는 다시 두 시간을 더 타고(지도 : 검은색)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대표도시 연길로 가야 한다. 석양이 물드는 버스에서 우리는 백두산과 천지의 감동을 마음에 담고 술로 뒤풀이...산을 내려와 몸이 으스스 한 게... 고산증 기운도 있길레 감기약을 한 개 먹은 상태에 40도짜리 고려촌 빠이주를 연신 안주도 없이 진미채와 먹었더니 저녁시간 특별식이라고 자랑하는 꼬치구이도 별로고 호텔에서 옆방에서 뒤풀이 하는 것도 별로고 자꾸 눕고만 싶어진다.(계속)

'살아가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산 가는 길(상)  (0) 2011.09.07
다시 시작이다!  (0) 2006.08.03
가을의전설/춘천마라톤  (0) 2005.10.26
템포 런  (0) 2005.10.11
춘천마라톤 대비/장거리연습  (0) 2005.10.04